실제 참혹한 현장을 바라본 목격담 이야기
명절이 되면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얼마 전 하늘로 떠난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잠깐 멈춘다.
숨을 고르듯, 기억을 더듬는다.
고등학생이던 나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들.
우리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부모 손을 놓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공산당과 전쟁을 피해. 징집될까 봐, 부모님이 잠시만 형 따라 남쪽에 있으라며 보냈다고 했다.
첫째 형과 둘째였던 할아버지.
그렇게 두 형제는 그렇게 북에 부모를 두고 생이별을 했다.
아이였던 소년은
결국 남한에서도 군인이 되었다.
그리고 최전방, 철원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평생을 부모님을 그리워했다.
“통일되면 제일 먼저 갈 거다.”
그래서 북과 가장 가까운 강원도 철원에 터를 잡았다.
그곳에서 할머니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버지가 태어나고
그리고 내가 태어났다.
화목한 집이었다.
웃음도 많았다.
그런데 명절만 되면
할아버지는 늘 북쪽을 향해 절을 하셨다.
그리고 조용히 우셨다.
어린 그때는 잘 몰랐다.
절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었고, 눈물은 평생의 기다림이었다는 걸.
어느 날, 전쟁 이야기를 묻다가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들었다.
새벽에 “쿵!” 하는 소리.
눈을 떠보니 우사에 폭탄이 떨어졌다고 했다.
소는 형체도 없이 흩어졌다고.
어린 소녀의 눈에
그 장면은 얼마나 컸을까.
마을로 내려온 공산당군인들이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총을 쐈다고 했다.
임산부의 배를 갈라
아이와 내장이 쏟아지는 장면까지 봤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그리고 할머니가 말했다.
“그게 저기 작은 다리 있는 데야.”
내가 학교를 가려면 건너야 했던
지나던 다리였다.
할머니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씀하셨지만
노인이 된 눈에서는 여전히 소녀의 두려움이 보였다.
아버지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해주셨다.
군사지역이라 훈련이 많았던 철원.
졸음운전이었는지 사고였는지 모르지만
군 트럭이 그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고 했다.
젊은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예전엔 군대에서 죽으면 개죽음이었어.”
아버지의 말끝은 씁쓸했다.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청년.
그의 죽음도, 다리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다리를 지날 때마다
두 이야기가 겹쳐진다.
총성이 들리는 것 같고
젊은 군인의 숨이 멎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느덧 나는 중년이 되었다.
철원에 가면
그 다리를 지날 때면 늘 마음 한편이 무겁다.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는
참혹함을 자주 잊는다.
AI가 발전하고
세상이 더 편리해지고
손 안의 작은 화면으로 세상을 다 보게 되었지만
어디선가는 여전히 전쟁이 계속된다.
인간은 아직도 그 전쟁의 다리를 완전히 건너지 못한 것 같다.
명절이면
북쪽을 향해 절하던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누구도 다리 위에서 울지 않는 날이 오기를.
실제 할머니의 증언에 따른 철원의 다리
하늘나라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