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권한 없는 리더십은 없다고 믿었던 사람
나는 꽤 오래 믿어왔다.
권한 없는 리더십은 없다. 권한이 없는데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하나? 아니면 발휘하더라도
일회성 혹은 높은 분의 권한을 열받은 작은 프로젝트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팀장이었을 때는 세상이 단순했다.
방향을 정하면 움직였고,
우선순위를 말하면 일이 굴러갔다.
속도는 빨랐다.
결정권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강력했다.
마치 리모컨을 쥔 느낌이었다.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바뀌는.
그런데 PM이 되면서
리모컨이 사라졌다.
평가도 안 한다.
인사권도 없다.
주변동료들의 상사도 아니다.
그런데 결과는 내 책임이다.
처음엔 예전 방식 그대로 했다.
방향을 정리해 공유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이게 왜 맞는지 설득했다.
예전 같으면 “네, 알겠습니다”가 돌아왔을 텐데
이번엔 달랐다.
협력은 느렸고,
실행은 밀렸고,
회의는 길어졌다.
회의가 길어진다는 건
아무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내가 믿어온 리더십은
‘권한’이라는 배터리로 돌아가고 있었다는 걸.
나는 계속 사람을 설득했다.
“이게 맞아요.”
“이 방향이 맞습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조직은
사람의 의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모호한 역할.
불분명한 KPI.
정해지지 않은 리듬.
이 상태에서는
누가 옳은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덜 움직이느냐의 싸움이 된다.
그걸 개인 태도의 문제로 봤던 게
나의 첫 번째 오판이었다.
그때부터 방식을 바꿨다.
지시하지 않기로 했다.
설계하기로 했다.
1. R&R을 문장으로 쓰지 않고, 행동으로 썼다.
“협업한다”는 말은 지웠다.
대신 이렇게 썼다.
“매주 금요일 16시까지 피드백 3줄 제출.”
모호함이 줄자
감정도 줄었다.
논쟁은 대부분
정의가 불분명할 때 생긴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2. KPI를 ‘공동 것’으로 만들었다.
마케팅 KPI, 개발 KPI가 아니라
‘이번 프로젝트의 공동 KPI’로.
그리고 물었다.
“이게 당신 평가와 어디에서 만납니까?”
사람은 옳아서 움직이지 않는다.
연결되어야 움직인다.
3. 리듬을 만들었다.
주간 30분.
액션은 두 개만.
오너와 기한은 말로 다시 확인.
리더십은 의지가 아니라
반복에서 나온다는 걸 배웠다.
구조가 생기자
사람들은 덜 예민해졌다.
내가 강해진 게 아니다.
구조가 강해진 것이다.
정보를 공개하고,
합의를 기록하고,
리듬을 유지하니
“왜 해야 하죠?”라는 질문이 줄었다.
움직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사람을 움직였다.
권한이 있을 때는 쉬웠다.
결정하고,
지시하고,
밀어붙이면 됐다.
속도는 났다.
하지만 남는 건 사람의 피로였다.
권한이 없으니
비로소 보였다.
왜 해야 하는지.
이게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실패해도 안전한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진정한 권한 없는 리더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까지 무엇을 하는지.
이걸 연결해 주는 사람이
진짜 리더라는 걸.
이제는 안다.
권한은 속도를 주지만,
구조는 지속성을 준다.
권한은 단기 성과를 만들고,
구조는 시스템을 만든다.
그리고 시스템은
사람이 바뀌어도 돌아간다.
어쩌면
리더의 일은 사람을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움직이게 만드는 판을 까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걸 이제야 배우고 있다.
18년 차에.
권한 없는 리더십은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이 아니라
환경을 설계하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