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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Sep 25. 2016

百修洞 三十五番地 이야기

百修洞 三十五番地 斷面圖 · 백수동 35번지 단면도




이 기록은 ‘백수동 35번지’에 들어선 어떤 건물에 관한 것이다.


2007년 준공된 건물은 컨테이너를 이리저리 쌓아 놓은 것처럼 규칙적이고, 불규칙적으로 조성되었다. 2013년 부지를 옮겨 다시 지어졌는데, ‘상자’라는 특이성 덕분에 규칙과 불규칙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어도 이내 자리를 잡았다. 건물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상자’들은 고작 15mm MDF 합판으로만 지어졌다. 건물은 햇빛에 바래 군데군데 제 색깔을 잃어버린 곳이 있다. 몇 번의 장마를 거치면서 조금씩 뒤틀려 부분 부분 아귀가 맞지 않는 곳도 있다. 몇몇 악조건 속에서도 주민들은 지금껏 불평불만이 없다.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건물에 관심 두지 않았다. 주민들은 이따금씩 강제 이주를 당했다. 가족이지만 헤어져야 했고 사랑하지만 이별해야 했다. 그래도 주민들은 불평불만이 없었다. 자신들의 이별을 슬퍼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을 기다려 왔고,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주민들이 ‘가만히 있다’는 것 때문에 겉보기에는 아무 이야기도 없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주민들의 건물이 상기시키고 있는 ‘이야깃거리’를 제외하고도 충분히 들여다볼만한, 들여다보고 싶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니까,


이 기록은 ‘백수동 35번지’에 들어선 어떤 건물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것이다.


한 사람의 주민도 빼놓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한다. 그들의 출신부터 이력, 반려동물에 대한 것까지 모두 기록할 작정이다. 기록은 아이러니하게도 백수동 35번지의 역사이기도 하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이 허름한 건물보다 먼저 백수동이 있었고 백수동은 몇 차례의 난리를 겪으며 지금의 ‘백수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백수동이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한, 마치 몇백 년 된 나무처럼 뿌리내리고 있는 곳의 ‘모든 것’을 보아온 주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기록은 ‘백수동 35번지’에 들어선 어떤 건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회고하는 ‘백수동 35번지’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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