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ktail Blues
TV에서 엔터테이너들이 데뷔 몇 주년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들이 버텨온 시간을 동경하곤 했다. 나는 언제 저렇게 시간을 쌓을 수 있으려나, 그런 날이 올까 싶었는데 돌아보니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딱 20년 되었더라. 연초에 그 생각을 하곤 잊고 있었는데 새로 기획한 콘텐츠로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 마침, 만난 이가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어, 지나온 10년을 정리한 영상을 만들었고, 그 이야기를 하다 문득 다시 떠올랐다. 20년이나 되었다는 것.
막무가내로 지냈던 10년이었다.
벗어나고 싶어서 안달이었고, 벗어나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려고 막무가내로 일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번의 실수로 쌓았던 배려를 다 무너뜨렸으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능숙하지 못하고 가진 것 없으니 반집이라도 선점할 수 있는 건 약속 시간보다 빨리 가는 것뿐이었던 그때, 나는 늘 3~40분 미리 도착해 가야 할 곳을 확인하고 함께 가야 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그를 위한 캔커피를 준비해 두곤 했다. 그렇게 쌓은 반집이 한 집 되고 세 집이 되어가는 게 뿌듯했고 그 뿌듯함에 취해 후배들에게 못되게 굴었다.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는 건 핑계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었는데 굳이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건 나도 위계에 기대어 객기를 부리고 싶었던 게지.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런 객기가 먹히지 않는다는 걸 인정했다는 것이다. 인정한 뒤로 단 한 번도 못되게 굴지 않는 것으로 그때 그 못된 짓을 갚고 있다고는 하나, 빚 받을 사람이 받을 생각이 없다고 하면 도루묵인 것을, 언젠가 빚 받을 사람을 만나 정식으로 무릎 꿇을 날이 생기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갚아야 할 것들만 만들다 10년이 지났다.
생존을 위해 살았던 10년이었다.
깔끔하게 똑똑, 10년씩 끊어지는 시간이면 좋았으련만 '시간'은 시간인지라 이 '겹'들은 명료하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막무가내로 지낸 10년의 말미와 생존을 위해 살았던 10년의 처음이 겹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괜찮다고 외치면서 안 괜찮다고 이를 악물었던 시간이었다. 힘들지 않다고 웃으면서 힘들다고 울었던 시간이었다. 막무가내로 지냈던 10년이 생쌀이었다면, 생존을 위해 살았던 10년은 껍질을 깎고, 시리도록 차가운 물의 소용돌이에서 휘몰아치다 건져 올려진 다음 뜨거운 솥 안에서 펄펄 끓으며 밥이 되어야 했다. 전기밥솥이면 취사 버튼 누른 만큼 기다리면 되고, 기다림의 끝을 아니 수월했을 텐데 압력솥도 아닌 가마솥이라 수시로 뚜껑을 열어볼 수도 없고 열어서도 안 되고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어서 이걸 해, 말어, 꽃잎이란 꽃잎은 다 뜯고 이파리란 이파리는 죄다 뜯었다. 마지막 남은 꽃잎도 이파리도 '말어'였지만, 그래서 계속 꽃잎도 이파리도 뜯어 재꼈나 보다. 살고 싶어서. 살고 싶지 않지만 죽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뜯어버린 잎들이 다 나여서 다행이고, 그래서 자꾸 치미는 쌍욕을 이름표처럼 마음에 달아 두었다. 다행인 건 후회하지 않아. 선택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아무리 못났다, 못났다 해도 하나 기특한 건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테니 적당히 무모하게 살 수 있겠다는 것.
앞으로의 10년은 모른다.
알 게 뭐야. 알면 뭐 달라질 것도 아닌데. 아니, 달라지려나. 달라지면 뭐 얼마나 달라지겠어. 어려서부터 누가 앞날을 물어보면 내 앞날은 까맣다고 답했다. 당장 내일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앞날을 어찌 알아. 살던 대로 살아야지 별 수 있나. 할 줄 아는 건 글 쓰는 일뿐이지만 그거 하나 잘해보자고 20년을 쏟아부었고, 그거 하나 잘해보자고 꾸준히 했고, 심지어 성실했다. 성실하게 술만 마신 게 아니라 성실하게 일했으니 '자판기' 소리를 듣지, 내가. 내가 인간미 없을까 봐 지각도 계획적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내가.
이렇게 길게, 나를 칭찬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봤다. 이토록 손발 오글거리는 칭찬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오롯이 나를 사랑하게 될 날도 오겠지. 그러니 계속 살고 싶지 않으니 죽고 싶지 않은 걸로. 기왕이면 기꺼이 살고 싶은 쪽으로 몰아가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