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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ocktail Blues

026 - 소박하다 3

Cocktail Blues

by 유정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당연히 지나고 나면 한 층의 차원이 더 쌓일 거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 '겹'이 '겁劫' 보다 무겁다. 팔이 후들거리고 자꾸 무릎이 꺾인다. 가장 별 것 아닌 겹이지만 지금껏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것이라 억겁보다 무겁다.


소박하게, 쌓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을 쌓았는지 보이지 않아서, 무엇을 쌓고 싶은지 모호해서, 무엇이 어떻게 쌓일지 알 수 없으니 생각할 수밖에. 내내 무거워서 이보다 더 무거운 생이 있을까 싶어서 어떻게든 벗어나 가벼워지려고 그리 애를 썼는데 겨우 반 발자국 내디뎠을 뿐인데 덜컥 겁이 난다. 늘 마지막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은 계속 생겨났고, 마지막이라는 게 시작보다 더 명확한 '첫'과 다름없다는 것도 아는데, 이번에 만난 마지막은 자꾸 새끼를 친다. 대놓고 시작이라고 속닥거린다. 그러니 무섭지. 지금까지의 마지막들은 모두 조용했거든. 그래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내 어깨는 굽지 않았거든. 짖는 개는 겁이 많은 법인데 이 '마지막'은 짖지 않고 빤히 바라볼 뿐이거든. 그러니 무섭지. 언제 어떻게 물릴지 알 수 없거든. 마지막의 날카로운 이빨이 목덜미에 박히기 전에, 피할 수도 없는 눈빛으로 자아 만든 긴장의 끈에 목이 졸릴 지경이거든. 그런데도 나아가지 않을 수 없거든.


그래서 이렇게나 잠은 옅고, 종잇장보다 얇은 잠을 사나운 꿈이 찢는가 봐.

이 모든 것들이 부디, 소박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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