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y Pitta
· dramatist fantastic scar pink
· cast some actress A & scar pink
한적한 공원, 오후. scar pink가 벤치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 scar pink의 옆에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한껏 옹크리고 앉아 있다. some actress A가 무대 왼편에서 등장, 도도한 걸음걸이로 걸어와 scar pink의 옆자리에 앉는다. scar pink가 읽고 있는 신문을 자꾸 흘끔거리는 some actress A.
some actress A (궁금해 못 참겠다는 듯이 scar pink 쪽으로 바투 다가앉으며) 오늘 신문에는 어떤 소식이 실려 있죠?
scar pink (귀찮다는 듯이) 어제 신문하고 크게 다를 것 없는 소식들이 실려 있죠.
some actress A (갸우뚱한 표정으로) 그럼 내일도 신문을 볼 건가요?
scar pink (some actress A로부터 조금 물러나 앉으며) 당연하죠.
some actress A (신문에 얼굴을 파묻을 듯 가까이 대고 내용을 읽는 척하며) 내일도 오늘과 똑같은 소식이 실릴 텐데?
scar pink (some actress A로부터 조금 더 물러나 앉으며) 매일 읽고 싶은 칼럼이 있으니까.
some actress A (scar pink 쪽으로 가까이 다가앉으며) 그 칼럼은 무슨 내용이죠?
scar pink (노골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아가씬 뭐하는 사람이길래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 거요? (들고 있던 신문을 구기듯이 접으며) 난 조용히 신문을 읽고 싶은데 댁이 지금 방해가 되고 있단 말이오.
some actress A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반색하며) 사실 전, 여배우랍니다.
scar pink (의외라는 듯) 여배우? (some actress A를 미심쩍은 듯 위아래로 훑어본다)
some actress A(허리를 곧추세우며) 네, 맞아요. 전 여배우예요. (먼 산을 바라보며) 실은… 제가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거든요.
scar pink (황당한 표정으로) 여배우라더니, 음악가 집안은 또 뭐요?
some actress A (scar pink의 말은 무시한 채 손가락을 하나씩 꼽기 시작하며) 어머니, 아버지, 언니, 삼촌, 고모,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 음악가랍니다.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래서 의지와 상관없이 음악을 시작했죠. (다시 먼 산을 바라보며) 어쨌든 가풍에 따라 전 바이올린을 배우게 됐어요. 바이올린은 아버지가 하던 악기라 따로 살 필요도 없었거든요. (양손을 기도하듯 모아 턱 밑에 대고) 사실은…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어요. 전 춤추는 게 좋았거든요. (부끄럽다는 듯) 제가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격이라서요. (벌떡 일어나 scar pink 앞을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며) 책을 읽을 때도 방안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읽을 정도였으니까요. (홱 몸을 돌려 scar pink를 바라보며) 어쨌든 제가 자꾸 춤추고 싶어 하니까 어머니께서 음악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셨어요. (고개를 외로 꼬고) 하지만 전 바이올린을 선택했답니다. (scar pink와 눈을 맞추며) 우습죠? 제가 생각해두 우스워요. 어쨌든 바이올린은 지금도 하고 있어요. (먼 산을 바라보며) 집안 형편이 좀 어려워서 대학은 음악교육과로 진학했지만요. 그게 제겐 큰 선물이었어요. 지금도 바이올린 레슨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거든요. (살짝 고개를 숙이고 킥킥대며 웃고는) 그런데 그 선물을 받고도 대학 생활 내내 놀았답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신나게, 제대로 놀았죠. (scar pink 옆에 털썩 앉는다) 그러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뮤지컬을 하게 되면 춤추고 노래하고 다 할 수 있으니까요.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으니까요. (발끝으로 땅을 가볍게 차며) 그래서 대학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올라와서 스물여섯에 배우를 하게 돼요. (수줍은 듯 속삭이듯이) 제가 부산 출신이거든요.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올라왔는데 마침 아는 분의 소개를 받아서 오퍼레이터로 참여하게 됐죠. 그런데….
scar pink (some actress A를 향해 손을 내저으며) 잠깐, 오퍼레이터라구요?
some actress A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아, 그게 조명이나 음향의 콘트롤 부스를 담당하는 건데요. 어차피 저는 초짜니까 그냥 거드는 정도였죠.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아무튼, 그렇게 공연에 참여하게 됐는데 글쎄! (킥킥거리다가) 여배우가 부상을 당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대타로 들어가게 됐지 뭐예요. (이제 깔깔거리며 웃다가 scar pink와 눈을 맞추며) 운명이라는 게 참 재밌죠?
scar pink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뭐, 그런 얘기야….
some actress A (한숨을 쉬며 팔짱을 끼며) 연기에 ‘연’ 자도 모르는 사람이 4개월 동안 공연을 한 거예요. 고문이 따로 없었다니까요? (벌떡 일어나서) 연출이 시키는 대로 (로봇 흉내를 내며) 오른쪽으로 돌아서 멈춰! 웃어! 팔을 흔들어! 이렇게 로봇처럼 움직였어요. 그렇게 신고식 아닌 신고식을 하고… 극단에 정식으로 입단을 했는데 그만!
scar pink (이제야 호기심이 조금 생긴 듯 some actress A를 바라보며) 그만?!
some actress A (짧게 한숨을 쉰 뒤) 극단에 침체기가 온 거예요. (다시 벤치에 앉으며) 극단 전반적으로 쉼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그때만 해도 무대만 올라가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긴장하고, 연기도 안 되고…. 그때 한 선배가 그러더라구요. 하고 싶은 연기가 뭐냐고, 연기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고. (아득한 눈빛으로 먼 산을 바라보며) 그게 제가 받은 첫 번째 숙제였답니다. 그래서 극단에 일이 없어도 힘들지 않았어요. 연기에 대해서, 또 배우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였거든요. (수줍은 듯 고개를 외로 꼬며) 그래서인지…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제야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벌떡 일어나 유리창 닦는 시늉을 하며) 차고에 있는 자동차 유리를 닦는 기분이랄까? (제자리에서 달리는 시늉을 하며) 사람이 뭘 배울 때는 몸으로 먼저 배우고 나중에 이론을 정립하기도 하고, (책 읽는 시늉을 하며) 머리로 먼저 배운 다음 몸으로 부딪히기도 하잖아요? (동의를 구하듯 scar pink를 돌아본다)
scar pink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야… 그렇죠.
some actress A (활짝 웃으며) 저한테는 극단 침체기가 몸으로 배운 걸 정리하는 시간이었던 거예요. (망설이듯) 사실… 저는 연기가 너무 좋고 매력적이라서 배우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거든요.
scar pink (의외라는 듯) 에? 그건 좀 모순적인 것 같은데….
some actress A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죠? 음… 그러니까… 전… 제가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제가 제 맘대로 안 되는 기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scar pink를 바라보며 동그랗게 뜬 눈을 두 번 깜빡거린다)
scar pink (당황스러워하며) 아, 아뇨. 없는데….
some actress A (갸우뚱한 표정으로) 저도 제가 좀 이해가 안 되는 구석이 있긴 한데, 암튼. (갑자기 말이 빨라지며) 제가 몸을 움직였을 때, 움직이는 순간에는 잡생각이 없어지더라구요. 뭔가 깨닫기 위해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즐길 수 있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말예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뭔가 즐길 수 있다는 건 축복이지 않겠어요? 전 저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거예요. 그걸 하기 좋은 게 연기라고 생각했구요. 그냥 나를 무대에 던져놓으면 제 안에 있는 경험, 표정, 감정을 가지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으니까. (멍한 표정으로 갑자기 말을 멈춘다. scar pink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 갑자기 some actress A의 말이 다시 빨라진다) 홍대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배경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무를 연기했어요. 그때 제가 배우라는 직업을 원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죠.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거야. 내가 뭔가를 해서 그들과 공감할 수도, 그들을 움직일 수도 있는 거지. 그걸 알고 나니까 정말 행복해지더라구요. (설레는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는 some actress A, 그런 그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scar pink.)
scar pink (고개만 돌려 왼편에 앉아 있는 some actress A를 바라보며) 그런데 배우가 연기에 매력을 못 느낀다는 건 생소하군요. 좋아하지 않으면 힘을 것 같은데.
some actress A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건 배우에 대한 환상이 없다는 것일 뿐예요. 혹시 모르죠. 제가 연기를 잘하게 돼서 사람들이 보내는 박수갈채나 환호를 받게 되면… 절 온전히 사랑해준다는 데, 당연하다는 듯 빠져들게 될지도 모르죠. (차분하지만 빠르게) 어떤 걸 해볼 필요가 있는 건 그걸 이해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요? 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으니까. 연기에 목숨을 바치는 배우도 있어요. 그건… 고통스러울 거예요. 저는 그만큼 고통받고 싶지 않거든요. (손가락으로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제가 이기적인 걸 수도 있어요. 그냥 제가 생각하는 배우의 스타일인 것뿐이에요. 다르게 생각하는 배우도 많을 거구요. (scar pink의 무릎에 놓인 신문을 바라보며) 그냥 내가 지금 살아있는지를 매번 확인하는 작업인 거예요, 연기는. 살아있어야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scar pink (짧게 한숨을 쉬고 먼 산을 바라보며) 살아있다라….
some actress A (한 손으로 제 목덜미를 감싸며) 어떤 사람을 마주하고 앉았을 때 그 사람이 제 눈을 바라보고 있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게 바로 살아있는 거죠. 하지만 저조차도 그런 여유가 없을 때가 있어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걸 볼 때 정말 괴롭답니다.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some actress A) 사람들이 여유를 찾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마음에 얹힌 굳은살을 떼어내고 싶어요. 배우가 된 이유 중에 하나죠.
scar pink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당신이 보기에 난 살아있는 사람 인가요?
some actress A (scar pink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흠… 그런 것 같군요. (수줍게 웃는다)
scar pink (some actress A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당신은 어떤 사람 인가요?
some actress A (한 손으로 볼을 감싸며) 배우랍니다. (수줍게 킥킥대며 웃고) 전 계속 배우로 살 거거든요. (두 팔을 활짝 벌렸다가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배우라는 껍데기가 너무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걸 다 가지고 있으니까.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진 채 설레는 표정으로 scar pink를 바라본다) 사람도 많이 만날 수 있구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음껏 움직일 수 있구요. 또 그 사람들에게 뭔가를 주고 또 받을 수도 있죠.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고 난 후 가볍게 한 번 폴짝 뛴다) 그리고 배우가 아닐 때의 모습과, 배우일 때의 모습이 같길 바라요. (기도하듯 손을 모아 한쪽 턱 밑에 가져다 대며) 다르지 않기를 바라요.
scar pink (some actress A 쪽으로 바투 다가앉으며) 당신, 배우라는 직업을 즐기고 있는 것 같군요.
some actress A (수줍은 듯 고개를 외로 꼬며) 그런가요? (scar pink의 눈을 다정하게 마주 바라보며) 아직은 배울게 많은 배우인 걸요.
scar pink (some actress A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우리 커피 한 잔 하러 갈까요?
some actress A (장난스럽게 킥킥거리고 웃으며) 그러다 술도 한 잔 마시게 되고?
scar pink (짓궂게 웃으며) 그렇게 된다면야 나는 좋고.
some actress A (밝게 웃으며) 어떻게 되는지 한 번 가 볼까요?
scar pink (일어서서 some actress A에게 손을 내밀며) 가실까요?
some actress A (scar pink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서며 환하게 웃는다) 가실까요?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는 붉은 하늘을 뒤로하고 scar pink와 some actress A 퇴장. 암전.
-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Look Back in Anger], 존 오즈번(John Osborne) 作, 6048X4032 pixels
- 여기에 소개된 사진 작품은 현존하는 희곡 작품을 제목으로 차용하였기에,
작품 제목과 원작자의 이름을 함께 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