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蘇顯 · 한소현 · 1981 · Green

Fairy Pitta

by 유정
오셀로 [Othello] ⓒ fantastic scar pink
오셀로 [Othello] ⓒ fantastic scar pink

BREAK up ·BREAK away · BREAK sweat


연극배우 한소현 ⓒ fantastic scar pink


사람이든 사물이든 끊임없이 변화하고 또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겉껍질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알맹이다. 속에 것이 변하지 않으면 외양을 아무리 바꾼다 해도 변화의 빌미를 눈치채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스무 살까지 채워 놓은 알맹이를 가지고 한 평생을 산다.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혹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면서. 배우 한소현(41)은 자꾸 변한다. 자신 안에 든 알맹이를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어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낸다. 무대가 있기에 가능하고, 무대 위에서 보여주어야 하기에 더 어려운 변화. 본지가 이번 호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인물탐구>의 첫 번째 인물로 그녀를 선택한 이유다. 또 한 번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본지가 늘 변화하는 그녀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편집자주




대학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 중 한 분이신데,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정신없어요. 어제 공연 끝나서 잠깐 틈이 생기긴 했는데, 바로 다음 공연 준비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영화 쪽에서는 결혼이나 출산과 별개로 꾸준한 활동을 보이는 여배우들이 있는데 연극계에는 그런 사례가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인지 닮고 싶다는 후배들이 많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남편 잘 만난 덕분인 것 같아요. 자기 일도 바쁜데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요즘은 저보다도 남편을 더 많이 보니까 아이들이 자꾸 아빠만 찾아서 서운하기도 하지만 남편한테나 아이들한테나 늘 고맙고 미안하죠.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잠시 떨어져 있어도 다시 대학로로 돌아오곤 했다’고 하셨어요 사실 아주 연극계를 떠나 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무대를 떠나 있었을 뿐이지 늘 연극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아이들에게 연기를 가르친다거나… 어쨌든 항상 관련된 일을 해왔어요.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사실 제가 수능을 망치는 바람에 웹디자인을 전공했거든요. 당시 IT니, 홈페이지니 하는 것들이 붐을 일으키던 때라 관련 전문대학교에 진학했는데 부모님께 내색은 안 했지만 정말 매일 울면서 다녔어요. 유아교육이나 사회복지에도 관심이 있었으면서 왜 그런 과를 골라 갔는지… 그만두려고도 했었는데 그러면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혀 어딜 가도 인정받기 어려울 거라고, 학과장님이 말리셨어요. 간신히 2년을 버텼죠. 그때는 아까운 등록금, 꽃 같은 청춘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냥 싫었는데 연기할 때 여러 모로 많은 도움이 됐어요. 간신히 졸업하고 연기 학교에 들어갔죠. 2년을 그렇게 보내고 나선 지 너무 행복한 거예요. 제가 운동을 정말 싫어하는데, 수업 중에 몸 쓰는 게 많았는데도 너무 재미있게 다녔어요. 시작부터가 그래서 그런지 자의 반, 타의 반 무대를 떠나 있었던 적이 종종 있었죠.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차선책으로 성우가 되겠다고, 성우 아카데미 다닐 돈을 버느라 잠깐 떨어져 있기도 했었고…. 그런데 결국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계속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기회도 주어지고, 결국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성우 경력이 있으셨어요? 성우 경력까지는 아니고요. 말씀드렸다시피 배우가 되는 걸 반대하셨거든요. 아무나 가는 길이 아니다, 예쁜 배우가 얼마나 많은데 될 수 있겠느냐… 하면서 말리셨죠. 사실 성우도 찬성하셨던 건 아니었어요. 한밤중에 무릎 꿇고 앉아서 성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이것마저 접으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꼭 해야겠으니 말리지 말라고 말씀드렸죠. 조금 놀라셨는지 그냥 알겠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렇게 통보하고 성우 선생님들께 사사 받으러 다녔는데 너무 어리다고 연기를 좀 배워 오라고 하시데요. 그래서 연기 학교에 가서 신나게 공부하고 돌아오니 이젠 나이가 너무 많다고 그러시고. 결국 다시 무대로 돌아왔죠.


ⓒ fantastic scar pink


성우하고 연극배우 하고 뭐가 더 어렵던가요? 성우가 더 어렵죠. 연기는 보고 듣는 것이라 행동이나 표정을 활용할 수 있지만 성우는 목소리에 그걸 다 담아야 되거든요. 까다로운 작업이다 보니까 자연스러워지기가 쉽지 않았어요. 성우들도 예전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걸 추구해서 연기를 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어렵죠. 사실 성우가 목소리 배우잖아요. 사람들은 배우와 성우를 아예 다른 직업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다르지 않거든요. 성우로 잘 풀리지는 않았지만 그때 경험이 연극배우로 서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데뷔는 어떠셨어요? 베일에 싸여 있다고 할까요 2006년에 처음으로 무대에 섰어요. 데뷔인데, 첫 무대가 정말 너무 허술한 거야. 강화도에 있는 어린이 유치원에서 한 달 동안 공연했는데, 아이들이 농장 체험할 수 있게 꾸며진 곳이었거든요. 공연은 거기서 운영하는 패키지 프로그램의 하나였어요. 그러니 제대로 된 무대가 있을 리 없죠. 야외에 조그맣게 무대랍시고 있었는데 등장하고 퇴장할 곳이 없어서 천으로 가려놓고 했었어요. 바람이 불어서 천이 날리면 아이들이 ‘우와- 저기 사람 있다’ 소리치고, 우리는 조용히 하라고 그러고. 그런데도 참 재미있었고,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공연이에요.

요즘이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지만 초기에는 공연과 공연 사이에 공백기가 긴 편이셨어요 요즘이야 말로 공백기가 좀 필요한데 말이에요. 무명 시절에는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본업은 배우였지만 대학원이니 뭐니 학비도 벌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데뷔하고 다음 공연까지 2년이 걸렸어요. <퓨어 플레이>라는 작품이 두 번째 공연이었는데, 성우를 포기한 뒤에 기획자와 안부 주고받다가 참여하게 됐어요. 다시 공연을 하긴 해야겠는데 시작할 용기가 안 났는데, 그분이 함께 하자고 해주신 덕분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죠.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연습 첫날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너무 떨어서 제가 떠는 게 저 쪽에 선 배우들에게까지 다 보일 정도였거든요. 아마 그렇게 긴장하고 떨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예요. 그래도 좋았어요. 그 공연 때문에 배우로서 설렘이 뭔지 다시 알게 됐거든요.

그 설렘 때문에 여전히 무대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매 작품마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계세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소위 파격적인 배역을 맡을 때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해요. 하려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기는 한데 정작 주어지면 생각이 많죠. 내 안에도 그런 모습이 있을까, 없다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어색하지 않게 소화할 수 있을까…. 학교 다닐 때는 올곧거나, 뚝심 있거나, 소신 있는 여자 역할을 주로 맡았거든요. 다방 레지라든가 몸을 파는 여자라든가 하는 파격적인 역할은 좀처럼 주시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학교에서 각자 하고 싶은 역할을 골라 연기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그때 다방 레지 역할을 했었어요.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평소에 하지 않던 것들을 연기로나마 표현하면서 내 안에도 이런 게 있구나 싶었어요. 그때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면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제가 스스로 제약을 두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데, 그럴수록 쉽게 한계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배역이 주어지면 저부터 단속하죠. 미리 한계를 긋지 말자, 제약을 두지 말자, 하면서요. 그게 말이 쉽지, 매번 고민이에요.


ⓒ fantastic scar pink


특정 배역만 주어지거나 혹은 주어지지 않는다는 건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배우들은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사람도 잘 챙기고 늘 활발하고 명랑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물론 그런 부분이 있지만 때로는 냉정하기도 하고, 단호한 면도 있거든요. 생각하지 못했던 제 모습을 맞닥뜨릴 때 많이들 놀라세요. 하지만 그건 배우만 가지고 있는 성향이나 특징은 아니잖아요. 그 차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돼요. 사람들은 제가 야한 영화도 안 보는 줄 아는데, 저 그런 영화도 보거든요? 욕도 못하는 줄 알지만 안 하는 것뿐이지 못하는 건 아니고요. 배우로서든 사람으로서든 저한테 기대하는 것이 있겠지만 배우라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건 물론이거니와 의외의 모습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쓰면서 사람들의 시선에 갇혀버렸다면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맡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다 똑같으면 재미없잖아요.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짜증 날 때도 있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서 또 재미있는 거죠.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씨앗 속의 사과 같은 배우요. 사과 속 씨앗은 셀 수 있지만 씨앗 속 사과는 헤아릴 수가 없잖아요. 제 좌우명이기도 한데, 어떤 사람이든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저는 배우니까, 그래서 지금보다 더 좋은 배우가 될 것이고 또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지금 당장은 뭔가 부족하고 모자라 보여도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배우는 스스로도 다음에 만나게 될 역할을 기대하게 되거든요. 그럼 배우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게 되겠죠. 그런 배우야말로 단순히 연기술만 좋은 배우가 아니라 정말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후배들을 위해서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현재에 충실해야 해요. 지금 주어진 것에 충실하지 않고는 그다음에 주어지는 것도 해낼 수 없거든요. 현재를 충실히 쌓아 가는 것이 배우로서 내공을 쌓는 일이에요. 결국 기회가 왔을 때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생기죠. 저는 과거를 충실히 쌓아놓지 않고서 기회를 달라고 떼쓰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리고 제 잣대에 맞춰 섣불리 평가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저와 안 맞는 사람이라고 해서 비하하지 않고 그저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모르는 척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 fantastic scar pink


배우 한소현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머릿속을 가득 채운 단어 하나가 있었다. ‘break’. 한 계단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매 순간 정형화되는 자신을 부숴야 하고(break up), 틈만 나면 옥죄어 드는 제약으로부터 달아나야 하고(break away),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break sweat) 것이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금 관객과 연출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건, 서는 무대마다 다른 모습의 한소현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모두 ‘break’ 때문이리라. 이대로라면 그녀의 연기 인생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일도 없지 않을까.

excerpts from “FantasticScarPink Tribune” thursday, April 29, 2021


DSC_7958.jpg ⓒ fantastic scar pink



자연 건강 환경 초목 신선 시원 성장 풍족 조화 풍요 건강 기쁨 … 노랑의 따스함과 파랑의 차가움이 만나 열정과 냉정 사이에 세워진 초록


자유와 제약, 떼어 놓을 수 없는 동전의 양면 제약과 자유의 경계에 선, 한소현



- 오셀로 [Othello],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作, 6048X4032 pixels

- 여기에 소개된 사진 작품은 현존하는 희곡 작품을 제목으로 차용하였기에,

작품 제목과 원작자의 이름을 함께 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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