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炳浩 · 박병호 · 1983 · Brown

Fairy Pitta

by 유정
로빈슨 크루소 [Robinson Crusoe] ⓒ fantastic scar pink
로빈슨 크루소 [Robinson Crusoe] ⓒ fantastic scar pink

an exclusive INTERVIEW 01

Date 2011. 04. 27. 19:00~19:55

Interviewee age 29, male, actor

Interviewer fantastic scar pink


연극배우 박병호 ⓒ fantastic scar pink

배우가 된 건 언제부터 대학로에 들어온 건 19살 때다. 배우 하겠다고 들어왔는데 여러 가지 사정도 있었고, 인연이 잘못 풀려서 기획, 홍보, 스탭을 하면서 밖으로 돌았다. 배우로 무대에 섰던 건 25살 때가 처음이었는데… 제대하고 나서도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바로 뛰어들 수 없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배우 활동은 올해부터 시작이다.

첫 무대는 어떻게 서게 됐을까 이모가 배우다. 일본 활동을 많이 하셔서 그쪽에선 나름 알려진 분인데, 일본 작품을 한국에서 하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당신이 기획, 제작, 연출을 한 공연에 날 세워주신 거다. 사실 휴가 나왔을 때 잠깐 했던 거라서….

지금도 활동하고 계신가?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이모는 활발하게 잠적 중이시다.

흠…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 없었다. 어머니는 목사가 되길 원하셨는데… 아버지가 항상 하셨던 말씀이, 하나는 미안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이 못나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살라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배우 하겠다고 했을 때도 아쉬워하는 기색은 보이셨어도 안 된다고는 안 했다. 중학교 때부터 하루 세끼를 제 때 먹어본 적이 없고 학비나 용돈을 받아본 적도 없을 정도로 형편이 안 좋았다. 난 괜찮은데… 부모님은 많이 미안해하셨다. 그래서 내가 뭘 하겠다고 했을 때 집에 손 벌리는 일이 아니니까 반대를 안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하필 가난하다고 소문난 배우가 됐다 물론 돈 많이 벌어서 집안을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가난해 버릇하니까 돈에 대한 욕심이 안 생기더라. 돈을 꼭 벌어야 되나, 싶은 거지. 먹고사는 데만 지장 없으면 된다. 그것만 잘 돼도 굉장히 행복하다. 돌아갈 집이 있고 하루 세끼 밥만 먹을 수 있어도 행복한 삶이다. 그게 어릴 때부터 계속된 것도 있고, 아버지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라고 하셨으니까 그런 쪽으로는 깊이 생각 안 했던 것 같다. 좋은 배우가 돼서 돈을 많이 벌고 싶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돈 벌어야 되는데, 하면서 안달하지는 않는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지만 정말 하루 한 끼도 못 먹을 정도가 되면 딱 필요한 만큼 일해서 번다.

생활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해 사는 것 같다 제대하고 나서 2년 동안, 정말 생존의 문제였다. 꿈은 둘째치고 일단 살아남아야 했다. 입대하고 한 달 만에 집이 없어졌으니까. 제대하니 돌아갈 집이 없었다. 그래서 기획일 할 때 알던 사장님 사무실에서 한 달 정도 생활하면서 돈을 벌어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러고 한 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알코올 중독이셨는데, 그날도 술 드시고 계시던 거처에서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옆방 사는 사람이 하루 지나서 발견했다. 죄책감이 컸다. 안 그래도 의지할 데가 없었는데 사람마저 없어졌으니까.


ⓒ fantastic scar pink


차라리 군대에 있을 때가 좋았겠다 카투사를 가서 정말 편했다. 시설이 워낙 좋으니까 여름에는 오리털 이불 덮고 자고 겨울에는 속옷만 입고 잘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꿈이 있기 때문에 편한 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생존이 우선 아닌가 꿈은 나한테 생명줄이고 당연한 거다. 배우가 되겠다는 꿈이 없었으면 그렇게 살지 못했을 거다. 꿈이 있으니까 죽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마지막 희망이다. 나는 당연히 꿈처럼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당연한 꿈이 있으니까 나도 당연하게 생존하고 있는 것 같다. 꿈 때문에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도 못 찾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거. 어디 가서 허튼짓하지 않는다는 거. 꿈이 없었으면 나도 없었을 거다. 사실 군대도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꿈 때문에 간 거다.

꿈 때문에 군대를 갔다고? 어쩌다 중학교를 강남에서 다니게 됐는데, 강남 애들은 당시에도 선행학습을 하고 왔다.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 않나. 나는 영어 첫 시간에 ‘Hi’를 왜 ‘하이’로 읽어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왜 그렇게 읽어야 되는지 안 가르쳐 주더라. 그렇게 읽으면 된다고만 하는 교육방식이 싫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때 영어를 놨는데, 고3 때 브로드웨이라는 꿈이 생긴 거지. 당시만 해도 한국 공연의 한국 배우로 가는 것보다 미국 배우들과 당당히 겨뤄서 배역을 따고 싶었다. 그러자니 영어를 잘 해야 되지 않나. 그때 친구가 카투사라는 게 있는데 거기 가면 영어를 배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카투사 지원 조건이 신체검사 3급 이상, 토익 점수 700점 이상이었다. 그때부터 죽어라 공부해서 6개월 만에 700점을 만들었는데 문제는 눈이었다. 안경 벗으면 뵈는 게 없는 시력이어서 수술을 하고 오지 않는 이상 안 된다더라. 마침 군대는 가고 싶은데 신체 조건이 안 되는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슈퍼 강군 만들기 캠페인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사연을 올리면 채택해서 지원해주는 방식이었다. 올라온 내용이 전부 어디가 안 좋은데 군대 꼭 가고 싶다는 얘기만 있어서 내 성장과정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8페이지에 걸쳐 써서 지원했다. 안 뽑을 래야 안 뽑을 수 없었을 거다. 그래서 라식 수술받고 지원했는데 카투사는 자격 요건이 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추첨하는 방식이다. 안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있었는데 될 거라는 믿음 하나로 지원했고 합격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그런 건가 안 된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모순이긴 한데 정말 현실적으로 안 될 만한 것 까지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 기준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걸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불가능까진 아니지만 어렵거나 힘든 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자꾸 물고 늘어져서 되게 만드는 거다.


ⓒ fantastic scar pink


낙천적인가 보다 아니, 낙천적인 척하는 거다.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아마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 않았을까. 삶 자체가… 그랬으니까. 가난하다는 것에 대해서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상처를 많이 받았다. 고등학교 가서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좀 편해지기는 했지만. 스무 살의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내가 너무 무섭더라. 이게 나야? 싶을 정도로 무서운 인상이었다. 그때 안 되겠다, 웃자, 웃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밝은 사람은 아니어도 밝은 척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때로는 도가 지나쳐서 욕먹기도 하는데, 그래도 우울한 것보다 이게 나은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잘 잊어버리는 걸 배운 것 같기도 하고. 상처를 잊어버리는 게 숙달되면서 애써 잊으려 하지 않아도 잊게 되는 것도 있고. 문득 생각나서 후벼 파기도 하지만 또 뒤돌아서면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자, 그럼 돌아서서 다시 연극 이야기를 해 보자. 올해 배우로 무엇을 했나 주로 몸 쓰는 쪽으로 풀렸다. 몸 쓰는 것이나 춤을 좋아하다 보니까 지난해 말에는 무술 관련 공연을 했고, 지난주에는 즉흥 춤 페스티벌에 참여했었다. 지금은 작품을 준비하고 있고. 준비하고 있는 건 야외공연인데 결국 몸 쓰는 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티프만 따온 <앨리스>라는 공연인데, 여섯 마리 토끼 중 하나다. 토끼 중 막내고, 왕따고, 실수하고, 사고 치고… 굉장히 활발해서 혼자 뛰어다니는 토끼라 죽을 것 같다.

그래도 몸 쓰는 일이 좋다고 하지 않았나 어릴 때부터 가만 앉아 있질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몸 쓰는 게 좋았다. 그리고 지금은 많이 고쳐졌는데 똑같은 일이나 연습을 6개월 이상 지속하질 못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배우는 6개월 이상 작품 할 일도 없고, 항상 움직이고 새로워서 선택한 거다. 거기다 발레하고 재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움직이면 이런 모습이 나오고 또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니까 몸에 관심이 생기고 집중하게 되고 몸 쓰는 게 재미있어진 거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꿈은 뮤지컬 배우가 되는 거지만 지금은 한꺼번에 다 발전시킬 수 없는 상황이니까. 몸이라도 잘 만들어서 몸 잘 쓰는 배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몸을 잘 쓴다는 건 뭘까 예를 들어 내가 물을 마시고 있을 때 컵이 없더라도 저 사람이 물을 마시고 있구나,라고 알 수 있게 움직일 수 있다면 몸을 잘 쓰는 거겠지. 더 나아가서 저렇게도 뛸 수 있구나, 할 수 있으면 몸을 잘 쓰는 게 아닐까. 일반적인 움직임을 잘 소화해도 잘하는 거지만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 독특한 움직임도 보여줄 수 있어야 몸을 잘 쓴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배우가 드물다더라.

어떤 배역을 해보고 싶은가 그런 거 없이 기회가 닿는 대로 하려고 했는데 사람이다 보니 어떤 배역을 해보고 싶다는 게 생기더라. 뮤지컬 배우가 꿈이다 보니 <마리아 마리아>의 예수라든가, <헤드윅>이나 <헤어스프레이> 같은 무대에 서고 싶다. 주연에 대한 욕심도 있었는데 요즘은 좀 더 개성적인 배역을 찾게 된다. 내가 키가 훤칠하다거나 준수한 외모를 가진 게 아니라는 걸 나도 알고 있으니 오히려 주연이 아니더라도 개성이 확실히 부각될 수 있는 배역에 관심이 간다.


ⓒ fantastic scar pink


배우로서 무얼 보여주고 싶은가 뭘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해봤다. 그런 건 있다. 몸 잘 쓰는 배우라는 말을 듣고 싶다. ‘박병호? 몸 죽이게 쓰는 배우!’ 그런 말을 듣고 싶다. 그리고 나만의 독특한 색깔을 갖고 싶다. 멋있는 색이기보다는 특별해서 가치 있는 거. 좀 어린 생각인 것 같긴 한데 주변 사람들이 ‘나 박병호 알아’라고 했을 때 ‘우와- 진짜?’ 그런 반응을 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연기 말고 잘하고 싶은 게 있나 요즘에 생각하고 있는 건데 나는 성향이 ‘강강강강’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너 그러다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춤이든 연기든 노래든 ‘강약 중강 약’이 있어야 보는 사람도 편안해지고 재미있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내재돼 있던 게 터져 나와서 제어가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에는 ‘약(弱)’을 쓰는 법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있다. ‘강강강강’에서 ‘강약 중강 약’이 될 수 있게, 그렇게 되고 싶고 또 그래야 될 것 같아서 노력 중이다.

뭐가 그렇게 쌓여 있었길래 19살부터 대학로에 나왔는데 어쩌다 보니 10년을 밖으로만 돌다 이제야 배우라는 타이틀을 걸게 된 거 아닌가. 얼마나 답답했겠나. 그게 한꺼번에 터져 나오려고 하니까 자꾸 강해졌던 것 같다. 차분해지니까 넓게, 깊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좋다. 한 발자국 물러나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이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올해 계획은 5월에 <앨리스> 말고는 딱히 없다. 계속 연습이지 뭐. 삶을 더 치열하게 사는 법, 더 치열하게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거다. 그러다 작품이 들어오거나 좋은 작품이 있으면 오디션을 보기도 하겠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럼 연습 안 할 때는 뭐하나 집에서 운동하고 춤추고, 책을 보거나 대본을 분석하거나 발음 연습을 하거나…. 할게 많아서 뭘 해야 될지 못 고르는 건 있어도 할 게 없어서 못하는 건 없다.

그럼 언제 쉬나 자면 된다.


DSC_7404.jpg ⓒ fantastic scar pink

안정 편안 인내 나무 가죽 무게 지루 엄숙 풍부 참회 좌천 물질 … 봄을 기다리는 겨울의 나무. 뿌리로 봄을 그리며 가지에 잎을 키우며 칼바람으로 스스로를 다잡아 마침내 봄. 겨우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듯 겨우내 품었던 잎들을 틔워낸다 제 어미를 닮아 인내할 줄 아는 갈색.


단단한 몸속에 수백, 수천의 잎을 키우는 박병호




- 로빈슨 크루소 [Robinson Crusoe],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作, 6048X4032 pixels

- 여기에 소개된 사진 작품은 현존하는 희곡 작품을 제목으로 차용하였기에,

작품 제목과 원작자의 이름을 함께 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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