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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시장에는 족발 파는 가게가 5곳 정도 있는 것처럼 닭 파는 가게가 서너 곳 정도 있다. 시장 밖으로 영역을 조금 넓히고 프랜차이즈 치킨집까지 포함시키면 열 곳이 훌쩍 넘겠지만 시장 골목 안에서만 서너 곳이다. 모두 닭을 통째로 튀기거나, 닭강정과 닭똥집 튀김을 판다. 곁들여 떡볶이와 순대, 어묵을 함께 팔기도 하고 닭강정과 닭똥집만 팔기도 하는데 시장 골목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초입에 있는 닭강정 가게에 주로 간다. 혼자 먹기에 양도 적당하고 맛있으니까. 무엇보다 맵지 않아서 좋다. 세상이 지나치게 매워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한 나로서는 맵지 않은 닭강정이 참 든든하고 좋다.
이 날따라 유난히 배부른 것이 싫어서 닭강정과 닭똥집을 모두 먹으려다가 닭똥집만 샀고, 유난히 취하고 싶지 않아서 -혼자 마실 때는 유난히 취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보드카를 마시기로 했다. 바삭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튀김옷도 두껍지 않아서 더 맛있는 닭똥집을 먹는 동안 적당히 배가 부르고 적당히 취기가 오르고, 하루 종일 쌓아 두었던 긴장이 일순간에 풀어진다.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메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간절한 마음에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인터뷰 때문이었다. 청약을 신청했는데 서류 심사와 별개로 인터뷰도 진행하는 청약이었다. 인터뷰만 할 수 있다면 반 이상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인터뷰 대상자가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낯 모르는 조상이 로또 번호 불러주는 꿈을 꾸기라도 한 것처럼 먼지 한 톨만큼이라도 부정 탈까 싶어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인터뷰하는 날, 약속된 시간만 기다렸다. 30분 남짓한 인터뷰 후 통과하게 되면 살게 될 집도 둘러볼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이 곳에서 살 수 있으면 그간 집 때문에 받은 설움을 다 지워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부푼 꿈을 안고, 긴장도 풀지 못한 채로 ㅎ을 만나러 갔다.
ㅎ과 나는 카페에 나란히 앉아 오순도순 일했다. 일 마치고 한잔 하면서 ㅎ이 꾸미고 있는 일의 뒷 이야기도 듣고 온종일 인터뷰 때문에 꽁꽁 묶어 두었던 마음도 풀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서둘렀는데, 약간의 변수까지 무사히 해치우며 일을 마치고 보니 ㅎ은 다시 일하러 가야 했다. 다음 기약하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 급하게 떠올린 저녁 메뉴가 닭똥집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홀연히 떠난 ㅎ을 꼭꼭 씹고, 인터뷰했던 나도 꼭꼭 씹고, 유난히 수납공간이 부족한 지금 집도 꼭꼭 씹고, 어쩌다 한 번씩 어찌 보면 집주인으로서는 당연한 반응 한 번에 몇 날 며칠 마음을 쓰는 나도 꼭꼭 씹고, 쓰잘데 없이 비싼 집값도 꼭꼭 씹고, 쉬지 않고 일 했는데도 대출 없이는 전세 보증금을 만들 수 없는 작금의 통장도 꼭꼭 씹었다. 꼭꼭 씹다 보니 바삭하고 고소한 것만 남고 닭똥집 튀김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