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y Pitta
본지가 <인물탐구> 지면을 통해 배우 나승재(61)를 조명하기로 한 것은 그가 대한민국에서 잘나가는 배우이기 때문도, 나눔을 실천하는 착한 사람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길을 오래 걸어가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고 있을 모두를 위한 만남이며 기록이다. 편집자주
배우 나승재를 만난 것은 유난히 긴 겨울의 끝, 먼발치에서 봄 그림자가 설핏 비칠 무렵이었다. 촬영을 위해 넓지도 좁지도 않은 합정동의 스튜디오에 들어선 배우 나승재는 물빛처럼 투명했다. 그리고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매일 조금씩 어디론가 흐르고 있는 잔잔한 강물처럼, 그의 말투에는 긴 여운이 담겨 있었다.
‘돋움소극장’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해돋을 ‘승’자를 쓰거든요. 이 소극장 만드는데 제 전부를 건 셈인데, 간판만큼은 제 마음대로 걸고 싶었어요. 그래서 ‘승’자의 뜻을 가져다 이름을 지었죠. 이 소극장을 통해서 연극판이 더 돋워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그렇게 잘 돋워진 연극계에서 배우들이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공간도, 대중이 연극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소극장 운영 계획이 궁금해요. 이름대로 될 수 있을지가 더 궁금한 거겠죠 구체적인 계획은 조금 더 다듬어야겠지만 우선 매년 어버이날이나 어린이날처럼 가족을 위한 기념일에는 무료 공연을 올릴 생각이에요. 대학로에 들어온 뒤로 가진 건 없어도 어린이날이면 어린이를 위한 무대에 서곤 했거든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배우였고, 배우가 가진 게 연기 밖에 더 있나요. 그래서 그거라도 나누고 싶다, 나눠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죠. 그리고 연극 관련 워크숍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에요. 워크숍을 이끄는 사람이야 매번 같은 워크숍일지 모르겠지만 참여하는 대중에게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워크숍일 거잖아요. 워크숍이 그 사람들의 삶 속에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지는 저도 몰라요. 하지만 조금은 풍부한 일상을 만들어 줄 수는 있지 않을까요. 목돈을 기부해서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겠죠. 그런 나눔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전 그보다 여유를 나누고 싶은 거예요. 저는 배우니까, 배우가 나눌 수 있는 건 물질보다는 연기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은 거예요.
배우 생활이 궁금해지는데요. 어떤 배우셨나요 글쎄요… 다른 배우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전 이걸 안 하면 죽을 것 같았어요. 어설프고 서투른 사람이었거든요. 사회적으로 대단한 지위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집에서도 폐를 끼치면 끼쳤지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다시 말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었는데… 배역을 맡고 무대에 서기 시작하면서 제 가치를 찾게 됐죠. 사람들이 공연을 통해서 제 가치를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그러다보니 스스로도 내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고. 배우 초년생 시절의 전 배우로 사는 게 자랑스러운 사람이었으면 싶었어요.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서 보다 안정된 생활을 꾸려갈 수 있기를 바랐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기가 저 스스로를 찾는 작업이 되더군요.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들이 서투르지 않았을까요. 다들 ‘처음’이잖아요. 아들 역할도, 부모 역할도, 배우나 다른 직업도… 그래요. 하지만 배우는 배고픈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배우를 꿈꾸는 것 자체만으로 서투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것 말고도 제 삶을 제가 살아가는 것일 뿐이니까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럴까, 왜 자꾸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거꾸로 찾아가다 보니 나라는 사람은 무대 위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내 자리를 찾아가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더라고요. 무엇보다 무대에 서 있을 때만큼은 저도 뭔가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20대 후반 무렵으로 기억하는데…. 공연을 마치고 나왔는데, 관객들이 다들 전화하기 바쁜 거예요. ‘지금 공연 보고 나왔는데 한 잔 하고 들어갈 거야’, ‘지금 공연 보고 나왔으니까 차 한 잔 하고 갈게’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지금은 그 때 그 사람들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공연이 관객들에게 잠시나마 어떤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렇게 통화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몇몇 관객들은 극 중 인물과 비슷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어쩜 그렇게 똑같을 수 있냐고 말을 걸어오기도 했거든요. 그런걸 보면 배역을 통해서 사람들의 체험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연기고 연극인 거잖아요.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연기를 통해 내가 나로 존재하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좋아하고, 또 할 수밖에 없는 거구나…. 내가 서투른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건 연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배우라는 직업이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요. 그러니까 지금껏 이 바닥을 못 벗어나고 있죠. 제가 처음 학교 들어가서 첫 연기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배우가 되려는 이유를 하나의 단어로 표현해 보라고 하셨어요. 다들 뭐라고 뭐라고 이야길 하는데, 전 막연하더라고요. 실은 그 전부터 막연하게나마 나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무엇 때문에 배우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명확하진 않아도 쫓아가고 있었던 거예요. 20대 후반 쯤, 생활과 연극이 부딪히기 시작하니까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죽어도 배우를 포기 못하겠는 거죠. 배우를 못하면 죽을 것 같았어요. 수십 번도 더 물어봤거든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으라면 죽을 수 있을까? 무대를 떠나서 내가 살 수 있을까? 누가 저더러 죽으라고 하면 그건 잠시라도 고민할 것 같은데 배우라는 직업은 망설임이 없더라고요. 그 때 알았어요. 제 존재 가치를 만들고 스스로를 찾는 일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이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거였구나…. 막연했던 게 그런 질문 덕분에 명확해졌어요.
배우가 되고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을까요 고집이 세졌죠.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고집을 부리게 되더군요. 그게 또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고집이라는 건 중심인 거예요.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죠. 나와 다른 것에 대해서, 나와 다르기 때문이 틀리다고 하는 게 아니라 다를 수도 있는 거라고 인정할 수 있게 됐어요. 다름을 비난하거나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게 가장 큰 변화죠.
그때문일까요. 사람을 잘 읽어내는 배우로 인정받게 된 건 그런가요. 40년 넘게 배우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수학 공식처럼 명확한 답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사실 여전히 제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는 부분이 많아요. 예전에는 내가 이런 배우구나,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라치면 애써 외면했었거든요. 솔직하지 못했던 거죠.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스스로에 대해 잘 아는 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다름을 인정하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나는 이렇게 다르고 저 사람은 저런 면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 제가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아지더라고요.
이 땅에서 배우로 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고비도 많고 힘든 일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대학 졸업식 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배우는 잘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기다리는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고 잘 기다릴 줄 알아야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고. 다른 배우들이 그렇듯이 저도 생활고에 시달리고 배우로서 고비도 겪었죠. 하지만 그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지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요. 전 배우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사람이니까. 힘든 게 있다면 기다리는 일이었죠. 그런데 잘 기다린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기회를 기다리는 동안 배우로서 내공을 잘 쌓아야 한다고 늘 다짐해도 며칠뿐이고 스트레스 받고, 훌쩍 뛰쳐나가서 지인들과 진탕 마시고 다음날 후회하고…. 그래서 혼자 조용히 속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어쨌거나 혼자서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배우를 포함해서 어떤 일이든….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만큼 힘든 것도 없는데… 정작 무대 위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밝기만 하네요 저에게도 어두운 면이 있어요. 제가 무슨 신선도 아니고 그늘진 부분이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나승재라는 배우를 통해서 전해지는 건 밝은 거였으면 좋겠어요. 즐거워졌으면 즐거워졌지 슬퍼지지 않았으면 좋겠는 거예요. 연극을 영어로 ‘play’, 놀이라고 하잖아요. 놀이라는 건 즐거운 거고, 하면 즐거워지니까 또 하고 싶어지는 거고. 삶을 놀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즐겁겠어요. 그래서 제안하는 거예요. 저도 그렇게 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지만… 아직 살아볼만 하잖아요, 이렇게 살면 살만하지 않을까요? 라고. 희극이라면 직유법으로 비극이라면 반어법으로 말하게 되겠지만…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인생은 놀이’라는 거죠.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가요 아마 다들 겪었거나 겪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기까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고, 배우로서의 내공도 쌓아야 하고, 사는 것도 살아야 하고…. 다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많이 힘들 거예요. 저부터도 그랬으니까. 저 같은 경우에는 멀티태스킹에 능한 사람이 아니라 한 번에 하나씩 밖에 못해서… 공연 일정이 잡히면 거기만 매달려야 해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다들 힘들어도 이 바닥을 떠나지 않는 건 무대가 좋고 배우가 좋기 때문이겠죠. 글쎄요… 저는 다들 그렇게 걸어갔으면 좋겠어요.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건 정말 혼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도 계속 걸어가다 보면 힘이 되는 사람도 만나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만나고, 어려운 사람을 만나 내 것을 나눠주기도 하면서 한 단계 성장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길이라도 걷다보면 다 만나게 돼 있는 것 같아요. 돌아보니 그렇대요. 그러니까 계속… 지금처럼만 걸어줬으면 좋겠어요.
‘Keep Walking’. 배우 나승재가 인터뷰 끝에 남긴 말이었다. 배우로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어찌 힘든 일만 있고 또 즐거운 일만 있을 수 있었겠느냐만, 음지와 양지를 오가는 와중에도 그가 ‘지금’ ‘여기’ 서 있을 수 있었던 건 배우의 길을 계속 걸어왔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당신, 외롭고 힘든가. 그렇다면 주위를 한 번 둘러보라. 당신의 무대 위엔 생각보다 많은 조명과, 소품과… 함께 ‘play’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외로워도 외로울 수만은 없었던 것도, 힘들어도 힘들 수만은 없었던 것도 모두 인생이 한편의 연극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배우 나승재처럼 당신도, ‘Keep Walking’.
excerpts from “FantasticScarPink Tribune” saturday, March 03, 2040
연극배우 나승재는 2015년 1월, 소천했습니다. 그가 편히 쉬고 있기를, 그가 하고 싶던 모든 것을 즐겁게 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기억 속에서 그를 만납니다. 그 만남은 조금씩 뜸해지겠지만 만날 때마다 여전히 슬프겠지요. 깊고 푸르던 슬픔이 투명해질 때까지 사람들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그를 만날 것입니다.
* 세일즈맨의 죽음 [Death of a Salesman], 아서 밀러(Arthur Miller) 作, 6048X4032 pixels
* 여기에 소개된 사진 작품은 현존하는 희곡 작품을 제목으로 차용하였기에,
작품 제목과 원작자의 이름을 함께 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