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y Pitta
어떤 배우 A : some actor A
· dramatist fantastic scar pink
· cast some actor A, scar pink & clown(a.k.a. actor A)
시간을 알 수 없는 밤. 한강시민공원. 산책로 옆으로 난 잔디밭에 헤드 랜턴을 쓰고 앉아 있는 some actor A. 무엇인가 읽고 있다. 그 옆에 드러누워 있는 clown(a.k.a. actor A). 무대 오른쪽에서 개와 함께 산책을 나온 scar pink 등장.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개가 some actor A쪽으로 다가간다.
some actor A (흠칫 놀라며) 오우, 웬 개가!
scar pink (겸연쩍은 듯) 죄송합니다. 우리 개가 좀 별나서요.
some actor A 개가 별나게 잘 생겼군요. (개가 자꾸 냄새를 맡자 버둥거리며) 흔치 않은 종인 것 같은데….
scar pink (머리를 긁적이며) 네, 와이마르너라고… 독일어로는 바이마르너라고 하는데….
some actor A (scar pink의 말을 자르며) 그나저나 진정 좀 시킬 수 없을까요? (자꾸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 개의 얼굴을 밀치며, 그러나 싫은 기색은 아니다) 왜 이러는 거죠?
scar pink (머뭇거리며) 혹시… 주머니에 뭐… 먹을 게 있나요?
some actor A (알겠다는 듯 주머니를 뒤져 비닐봉지를 꺼낸다) 이것 때문이겠군요. 우리 코코 주려고 했던 건데… (봉지에서 큼지막한 뼈다귀를 꺼내 개에게 내미는데 정작 개는 냄새만 맡으며 scar pink의 눈치를 살핀다)
scar pink 그럼 키우시는 개 주세요. 우리 앤 괜찮아요.
some actor A (별거 아니라는 듯) 안 주면 울겠는데? 괜찮아요. 우리 코코는 또 얻어다 주면 되니까. 자, 너 먹어. (뼈다귀를 개의 코 앞에 잠시 대었다가 무대 왼쪽으로 던진다. 뼈다귀가 그린 궤적을 한동안 바라보던 개가 다시 슬픈 표정으로 scar pink를 올려다본다)
scar pink (잡고 있던 목줄을 놓으며) 그래, 가라 가. (개가 쏜살같이 뼈다귀를 향해 달려간다. 개, 퇴장)
some actor A (깜짝 놀라며) 어이쿠, 곰이라도 잡으러 갈 기세로군요.
scar pink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some actor A 옆에 앉는다) 저 녀석이 먹는 걸… 좀 많이… 좋아해요. 근데 뭐 읽고 계시는 것 같던데 본의 아니게 방해가 되었군요.
clown(a.k.a. actor A) (여전히 드러누운 채로) 시 쪼가리 읽어 봐야 돈이 나오나 여자가 나오나!
scar pink (흠칫 놀라며) 저분은….
some actor A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냥 아는 놈인데 신경 쓰지 마세요. 밤바람이 선선하기에 나왔는데 또 그냥 나오기는 뭣해서 시집 한 권 들고 나와 읽고 있던 참이었어요.
scar pink 아… 그럼 혹시… 시인이신가?
clown(a.k.a. actor A) 시인은 개뿔! 배우는 소뿔?
some actor A 배우예요. 연극을 하죠.
scar pink (some actor A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다 헤드랜턴 불빛에 눈부셔하며 뒤로 물러난다) 오우, 배우시군요.
some actor A (헤드랜턴 스위치를 끈다) 네, 배우예요. (쑥스러운 듯 웃는다)
scar pink (능글맞게 웃으며) 연식이 좀 되신 것 같은데요?
some actor A 좀 됐죠. 2001년에 대학로에 데뷔했으니까. (주위를 둘러보며) 그런데 개는 안 찾으러 가셔도 되나요?
scar pink (쿡쿡거리며 웃는다) 그 녀석 먹을 만큼 먹고 나면 돌아올 거예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며) 그나저나 당신에 대해 좀 알고 싶어 지는군요.
some actor A (scar pink가 담뱃불을 붙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제가 궁금하신가요?
scar pink (연기를 내뱉으며) 그럼요. 배우를 이렇게 가까이 본 것은 처음이니까요. (some actor A에게 담뱃갑을 내민다)
some actor A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며) 배우도 뭐, 그냥 사람이에요. (scar pink가 내미는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중학교 때 선생님께서 극장엘 데려가셨어요. 그때 처음으로 연극이란 걸 보고 아, 이런 게 연극이구나 싶었죠. 그때부터 시험 끝나는 날이면 늘 연극을 보러 갔어요. 그게 여기까지 온 거고.
scar pink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흐음… 저도 어릴 때 연극을 보러 다녔으면 지금쯤 배우가 됐을까요?
some actor A 모르죠.
scar pink 대학로에서 군밤 팔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이없다는 듯 웃다가 some actor A를 바라보며) 당신은 어떤 배우였나요?
some actor A (과장되게 큰 소리로 웃으며) 게으른 배우였어요. 시작했을 때는 안 그랬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나태해지고 게을러지더라고요. 운동도 열심히 안 하고 배우 훈련도 안 하고, 죽기 살기로 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운동화 끈을 만지작거리며) 그래도 지난 10년간 어떤 배우였느냐… 물으신다면… 목하 고민 중인 배우였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clown(a.k.a. actor A) 배우가 아니라 달인일세! 포장의 달인이야!
some actor A (누워 있는 clown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소곤거린다) 그렇다고 다 까발릴 순 없잖냐. 내 포장 니가 해줄 것도 아니잖아, 안 그래? 엉? (헛기침을 하며) 그래도 최근 1~2년은 열심히 살았어요. 그게 구체적인 결과로 드러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그런 노력들이 주는 소박한 즐거움을 다시 맛보고 있달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그런데 배우로 산 게 10년이라고는 하지만 오래 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눈을 감으며) 1년에 공연 두 편씩만 들어간다고 그러면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가거든.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배우로서 풀어야 할 숙제는 늘 있었으니까, 그거 좀 어떻게 해보려고 하다가 문득 돌아보니 10년이 지나 있더라고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은 거지.
scar pink (뭔가 생각났다는 듯) 아, 그럼 희곡 같은 것도 많이 알겠네요? 뭐 추천할만한 거 없어요?
some actor A (의외라는 듯) 희곡은 알아서 뭣에 쓰실려구?
scar pink 그러니까 그게… 연극을 향한… 소소한 애정이랄까?
some actor A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아… 애정…?
scar pink (잔디 몇 가닥을 뜯으며) 애인이 대학원을 다니는데… 문창관지 극작관지… 희곡으로 리포트를 써야 한다나 뭐라나… 자꾸 작품 고르는 걸 도와달라고… (조금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꾸 공돌이한테 그런 거나 시킬라 그러고….
some actor A (scar pink가 귀엽다는 듯 웃으며) 애정은, 애정이네. 어디 보자…. 그렇지, 부조리극인데 해롤드 핀터의 <관리인>하고 에드워드 올비의 <동물원 이야기>라는 작품이 있어요. 인간 소통의 부재를 다룬 작품인데 직접 공연을 해선지 인상적이더군요. 누구나 소통의 부재에 대해서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소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고려하지 않고 살아가요. 그러면서 소통이 안돼서 답답하다느니, 미치겠다느니, 사람들이 몰라준다느니…. 소통하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나 감내해야 할 것이 있는데도 그런 걸 안 하고 살아요. 이 작품들을 통해서 그런 걸 다시 생각해보고 고민해 볼 수 있어서 전 좋았거든요. 그리고 인간 실존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도 너무나 간단명료하게 풀어내는 거지. 그런 거 보면 정말 작가라는 사람들 대단하구나 싶기도 하구요.
scar pink (어느새 노트를 꺼내 적으며) 부조리… 실존….
some actor A 충분한 것 같아요? (제 무릎을 치며) 아, 그리고 이건 내가 한 번 해보고 싶은 건데, 아… 작가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인터넷 뒤져보면 나올 건데, 제목이 <집>이라고, 하우스지, 하우스. 집이라는 공간이 과연 어떤 공간이어야 되느냐, 뭐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집의 모습은 어때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인간다움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느냐! 뭐 요런 작품인데 전 보고 되게 신선하더라구요.
clown(a.k.a. actor A) 그런 걸 뭐 생각해 본 적이 있어야지. 집은 집이지, 뭐 어쩌라고? 그게 자네의 질문 아니었나?
some actor A (누워있는 clown의 무릎께를 힘주어 잡으며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야, 쫌!
clown(a.k.a. actor A) 표정이 왜 그래? 웃어! 다 웃고 살자고 하는 얘기라고.
some actor A (크게 한숨을 내쉬곤 헛기침을 한 뒤) 아무튼 이런 물음을 갖게 되는 것 자체가 연극이 주는 소득인 셈이에요. 사실 예전에는 왜 그런 것들에 대해 질문을 하는지, 그런 물음이 왜 필요한지도 몰랐는데 연극을 하면서 채워지더라고요.
scar pink (노트를 재킷 주머니에 넣으며) 그런데 아까 소통 어쩌고 하던 게 인상적이던데, 소통에 전제되어야 할 게 뭐죠?
some actor A (먼 산을 바라보며) 어떤 예를 들면 좋을까요…. 내 친구 중에 나보다 더 어려운 친구가 있어요. 정말 누가 봐도 그 친구가 나보다 어렵다는 건 사실이에요. 사실을 넘어선 진실이지. 제가 어려울 때 그 친구가 여러 모로 도움을 줬어요. 돌이켜보면 그 친구는 자기 삶의 한 부분을 베어준 거였어요. 한없이 미안하고 또 고마운 일이죠. 사실 삶의 한 부분을 베어준다고 해서 삶의 근간이 흔들리거나, 막말로 골로 가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다들, 그럴까 봐 미리 겁부터 내요. 소통이라는 건 삶의 한 부분을 함께 나누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에게 필요한 걸 나눠주는 거 말예요. 그게 정말 나한테 필요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거든. 중요한 건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걸 나눠준다는 거지. 그리고 상대가 나한테 내가 필요한 걸 줄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수 있다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요. 막상 그런 부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또 산다는 게 워낙 수월치 않으니까.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못 만들게 되는 것도 있긴 한 것 같은데….
clown(a.k.a. actor A) 고통도 리듬을 타면 음악이 된다던데? 미숙 씨가 그랬어.
scar pink (some actor A의 어깨너머로 clown을 넘겨다보며) 오우, 리듬!
some actor A (누워있는 clown의 뺨을 후려치려다 말고 어금니를 물며 속삭이듯) 넌 너무 가벼워.
clown(a.k.a. actor A) 넌 너무 무거워.
some actor A (체념한 듯 한숨을 쉬며) 그래, 난 너무 무거워. 나도 가벼워지고 싶어. (눈을 깜빡거리다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허리를 곧추 세우며) 그런데 혹시 비아그라 먹은 참새 수컷 얘기 아시나?
scar pink (깜짝 놀란 듯) 참새 수컷이 뭘 먹어요?
some actor A (scar pink 쪽으로 바투 다가앉으며) 참새 수컷이 비아그라를 낼름 주워 먹었네? 그거 먹고 참새가 뭐라 그랬을 것 같우?
scar pink (중얼거리듯) 글쎄… 알 듯 말 듯하네요….
some actor A (과장된 목소리로) 독수리 년들 다나와!
clown(a.k.a. actor A) 어이쿠, 저럴 줄 알았어. 위악은 위선만 못하다고 그렇게 얘길 해도…!
some actor A (뜨악한 표정의 scar pink의 눈치를 살피며) 그게… 그렇잖우. 같이 울어주면서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옆에서 주절주절 되도 않는 우스갯소리를 지껄여줘야 되는 사람이 있고. 응? 난 유머와 눈물 사이를 좀 유연하게 오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소박한 바람이랄까? (제 어깨로 scar pink의 어깨를 슬쩍 민다)
scar pink (멋쩍은 듯 과장되게 웃으며) 아무렴요! 저도 그게 소원인 걸요! (먼데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아, 우리 애가 먹을 만큼 먹었다는데요.
some actor A 아, 가보셔야죠. (쑥스러운 듯) 그런데 담배 하나만 더….
scar pink (주머니에 넣으려던 담뱃갑을 some actor A에게 담배 몇 개비를 내밀며) 얼마든지.
some actor A 고맙습니다. 살펴 들어가세요.
clown(a.k.a. actor A) (일어나 앉아 장난스레 거수경례를 하며) 살펴 들어가십쇼!
scar pink, 무대 왼쪽으로 퇴장. 일어나 않으며 some actor A의 손에서 담배 한 개비를 빼앗아 든 clown(a.k.a. actor A)과 some actor A가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첫 모금을 내뿜으면 암전.
* 피의 혼례[Bodas de sangre],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 作, 6048X4032 pixels
* 여기에 소개된 사진 작품은 현존하는 희곡 작품을 제목으로 차용하였기에,
작품 제목과 원작자의 이름을 함께 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