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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라기 Nov 13. 2020

모여봐요 동물의 숲과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

무한노동의 개미지옥


오랜 공백을 깨고 지난 3월 출시된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리뷰해 보려고 한다.



6월 현재 약 세 달 간 플레이를 했는데 개인적인 총점은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딱 예상대로의 게임이 나왔달까 그렇다. 3DS 버전인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과 모바일 버전인 포켓캠프 등 옛날 버전 컨텐츠를 그대로 가져다가 짬뽕시켜 놓은 수준이다.




최근의 동숲 열풍은 유투버들의 전시와 함께 발매 초기에 화력이 급증하는 경향이 합쳐진 결과로 보인다. 이전까지와는 달리 닌텐도가 주기적인 컨텐츠 업데이트를 예고하고 있긴 한데 과연 유저를 장기간 붙잡아 둘 수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보다 중요한 것은 동숲은 우리에게 즐거움보다는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게임이라는 점이다. 특히 동숲을 플레이하다 보면 자본주의 역사의 태동과 흐름을 경제 수업 때보다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신대륙과 노예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배경은 섬이다. 플레이어가 무인도 이주 패키지에 참여한다는 설정이다. 패키지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너굴' '콩돌이' '밤돌이' 등 세 마리의 너구리들이다.








무인도에 도착하면 집터도 준다. 선심 쓰듯 섬 이름도 정하라고 막 그런다. 아무리 무인도라고 해도 자기네들이 인수했다면 토지 매입에 따른 소유권 이전 등기 및 취득세 납부 과정에서 이름을 붙였을 텐데그런 건 안 알려준다. 매물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거주자가 책임을 물을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의심되는 부분이다.




의심쩍은 구석은 있지만 일단 넘어가서 캠프를 설치하고 좀 자유롭게 살아볼까 했는데 이번에는 이주 비용을 내놓으란다. 이럴 거면 애초에 패키지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왜 돈을 안 받았을까 싶다.





돈이 없다고 하면 너굴이가 '이 섬에 오는 분들은 다들 돈을 안 가져오더라구..' 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며선심 쓰듯, 신용카드 포인트도 제대로 쌓지 못하는 나에게  '마일리지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고 한다.




'마일리지 프로그램' 이란 말 그대로 마일리지를 주는 것인데, 섬에서 낚시를 하거나 과일을 따거나 나무를 베고 하는 것만으로도 적립된다. 섬 생활을 하기만 해도 포인트를 쌓아주는 것이다. 우선은 되게 좋아 보인다. 그리고 이 포인트로 물건도 살 수 있다. 물론 너굴이가 제공하는 상품 내에서다. 내가 하는 행동이 그대로 수치화된다는  점이 석연찮고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지만 무인도라서 다른 유통 경로도 없으니 별 방법이 없다.






며칠 동안 곤충도 잡고 과일도 따 먹고 인생샷도 찍으면서 놀다 보면 무인도 패키지의 본색이 슬슬 드러난다. 삽이나 낚싯대, 도끼 등 무인도 생활에 필요한 도구는 너구리들에게서만 제한적으로 구할 수 있고 들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이라든가 갈아입을 옷, 테이블과 의자 침대 등 사람답게 살기 위한 가구들을 만드는 방법도 너구리들을 통해서만 입수할 수 있다.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행동'을 위해서는 '소비'가 요구된다.





애초에 여유롭고 자유로운 무인도 생활을 하고 싶어서 섬에 왔지만'여유'도 '자유'도 점차 제약을 받는다.그런 한편 너구리들은 '지금 사는 텐트가 아니라 집을 지으면 도구를 더 많이 들고 다니고 물건도 보관할 수 있는 창고도 준다' '가게를 세우면 더 많은 물건을 구해올 수 있다' '새로운 주민들을 정착하게 하면 섬이 더 발전할 것이다'라는 말로 나를 현혹시킨다. 이때쯤 하루의 목적은 '즐겁고 여유로운 생활'이 아닌 '오늘 필요한 물건을 조달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된다.



작당모의중



딱히 섬을 발전시키거나 더 나은 생활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들은 자꾸 '이 섬에는 더 많은 발전 가능성이 있고 노력만 하면 더 좋아질 수 있는데...'라는 뉘앙스로 나를 몰고 간다. 무인도 패키지가 아니라 섬 이주 패키지를 팔았다면 좀더 납득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봉건 사회의 영주들은 약탈을 통해 토지를 지배하고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농민들에게 농기구 한 푼도 보태주지 않으면서 세금을 받아 먹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착취가 계속될수록 농지는 풍요로워진다... 너굴이의 미소를 보며 문득 그런 그림이 떠오른다.






별수없이 일단 작은 집을 마련해 본다. 이때부터 너구리들은 보다 노골적으로 변한다. 건축에 따른 채무를 돈으로 변제해야 하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난 바라지도 않았는데... 돈을 벌기 위해서는 생산 활동을 해야 한다. 낚시나 곤충 채집, 화석 발굴, 목공 작업 등으로 물건을 판다. 분명 집을 짓기 전에는 즐거웠던 '놀이'가 돈을 벌기 위한 '경제 활동'으로 변환되는 순간이다. 가격을 책정하는 쪽은 물론 내가 아니라 '화폐'의 개념을 이 섬에 도입해 온 너구리들이다.




통장도 개설해 주고, 쇼핑몰도 열어 주면서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처럼 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역과 유통 등 모든 경제 활동을 통제하는 것은 너구리들이다. 플레이어들은 철저히 그들의 계산 하에 움직이는 것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경로를 틀어쥐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주민을 위한 집이나 다리, 상점 등 인프라 건설을 도맡으면서 부동산 대출금까지 받아먹는 너구리들은 어느새 무인도 이주 패키지를 운영하는 소박한 자영업자에서 어엿한 자본가로 등극하게 된다. 동물 한 마리 없던 섬은 어느새 박물관과 옷가게, 상점, 등대와 풍력발전소까지 갖춘 관광업의 메카로 발전한다.



뒷소문을 듣고 섬을 찾은 동물들은 사행성 도박을 서슴치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은 플레이어의 무상 노동으로 이뤄진다. 초기 주민 정착을 위한 집터를 마련할 때 너굴이는 플레이어에게 뻔뻔하게도 집에다가 채워 넣을 가구를 요구하면서도 대가는 한 푼도 주지 않는다. 맨 처음 가게를 만들 때도 알아서 자재를 갖고오라고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절벽을 깎거나 하천을 넓히는 등 토목 공사가 가능해지는데 물론 이 때 들이는 노동에 대한 대가도 없다.



흥미롭게도 이런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와 무척 닮아 있다. 물론 실제 사회에서 노동자는 월급을 받는다. 문제는 그 월급이 노동에 비해 훨씬 적은 댓가라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가가 돈을 버는 원리다. 노동자가 하루에 10만큼의 노동을 한다면 자본가는 그 댓가로 5나 6 정도의 댓가를 준다. 그리고 나머지를 가만히 앉아 자신의 이익으로 챙긴다. 동숲에서도 각종 보상으로 플레이어의 노동에 대한 댓가를 치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양은 플레이어가 실제 만들어낸 결과물보다 훨씬 적다. 이를 토대로 섬은 보다 풍성하게 발전하고, 플레이어는 뭔가 부족함을 느낀 채 점점 더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게 되는 것이다. 치킨값은 세상의 발전에 따라 매년 오르는데 우리 월급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원리도 이와 같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이렇게 즐겁게 살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너구리들 또한 무인도 패키지라는 명목으로 힘 하나 안 들이고 허허벌판이었던 섬을 별 다섯개짜리 관광 명소로 만들어낸다. 물론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자신의 노동력이 착취당한다는 사실만 잊는다면...



손 하나 까닥 안 하고 전재산의 5배 넘는 대출금을 받아먹는 너굴


일확천금을 노리고 주식에 빠져드는 플레이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바로 플레이어 자신이 자본가가 되는 방법이다.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가 되어서 다른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해야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물론 동숲에서는 플레이어에게 너굴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도 그런 기회를 갖기란 쉽지 않다. 그럼 어쩌라는 거냐고? 뭐 딱히 어쩔 건 없다.자본주의같은 거창한 원리에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충분히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즐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세상의 많은 규칙들을 한 번 읽어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리뷰를 써 본 것이다. 보다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 라는 책을 추천한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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