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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라기 Nov 13. 2020

추천 리뷰 3) 궨트

적당히 살아도 괜찮은 이유


최근 궨트 온라인을 열심히 하고 있다.



궨트 온라인은 컴퓨터로 하는 카드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넷플릭스에도 있는 위쳐3라는 RPG 속 미니게임이었던 궨트가 너무 인기를 끌자 위쳐 제작사가 궨트를 따로 출시했다. 현재 PC와 플스4에서 플레이할 수 있고, 모바일 버전도 검토중이란다. 다른 유저랑 카드게임을 하는 게 싫다면 궨트 게임에 스토리를 입힌 <쓰론브레이커>를 하면 된다.


북부 왕국, 닐프가드, 스코이아텔, 스켈리게, 괴물의 총 다섯 가지 세력으로 카드가 나뉜다. 한 세력을 선택해서 카드 덱을 짜면 된다. 일러스트도 기깔나고, 연출도 괜찮고, 더빙도 잘 돼 있고, 세력 간 밸런스도 훌륭한데 단점은 유저가 너무 없다. 한국 유저가 올린 유투브 동영상 조회수도 절망적으로 낮더라. 뉴비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게임이라 그런지 고인물들이 알아서 추천 덱도 올려주고 카드 정보 정리해둔 사이트도 만들었다.흥해라 궨트.





플스 유저들 중 의외로 PVP(유저 간의 경쟁 플레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카트라이더 시절부터 부르짖었던 매너겜과 스겜을 지켜주는 플레이어가 많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재밌자고 하는 게임인데, 꼭 스스로는 즐거움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괴롭혀야만 재미를 느끼는 모자란 분들이 훼방을 놓고는 한다.  지하철에서 일부러 다른 사람을 밀치고, 카페에서 나올 때 들어가는 사람 생각 안하고 힘차게 문을 밀어버리는 인간들이 이런 부류에 속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궨트는 이런 분들이 날뛸 만한 요소가 없다. 고의적으로 상대방을 방해하는 플레이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직하게 상대의 승리를 방해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더불어 여러 번의 밸런스 업데이트를 통해서 입문자도 차근차근 실력을 쌓으며 레벨을 올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물론 카드 게임이다 보니 레어 카드를 많이 가지면 유리하겠지만 카드는 게임을 열심히 하다 보면 쌓이게 된다. 좋은 카드가 많을수록 AI가 또 그만큼 전력이 빵빵한 실력자를 찾아 대전시켜 주기 때문에 어떤 단계의 유저라도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쫄깃쫄깃한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세력 간의 스타일도 가위바위보처럼 각기 다르기 때문에 플레이하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세력의 덱으로 전투를 펼치는 즐거움도 있다.


내 카드에 써 있는 숫자들을 합해 상대방보다 많으면 이기게 되는 단순한 룰을 기본으로 다양한 변형을 적용하기 때문에, 원리는 단순한데 상성이 복잡한 매력이 있다. 한마디로 재밌다! 카드 일러스트라도 구경한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입문해 보시라.




궨트에서 인생을 추구하면 안되는걸까



하루견과 까먹는 것 마냥 꼬박꼬박 궨트를 하는 이유는 물론 재미있어서다. 이길 때도 있지만 당연히 질 때도 있다. 질 때보다는 이길 때가 쪼금 더 재밌으니까 좋은 카드는 뭘까 하고 고민한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궨트 전세계 서열 1위가 되기란 힘들 것이다. 그러니까, 해보자고 하면 못할 것은 없겠지만 그게 나 혼자 주인공인 세계관의 게임 속에서 1등을 하는 것보다는 어려울 거란 말이다. 어딘가에는 나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궨트에 투자하는, 혹은 요령 좋은 사람이 있을 테고 내가 아무리 좋은 카드를 가져도 이길 수 없는 덱도 있을 거다. 실제로 궨트를 할 때 3판 2선승 가운데 두 판을 연속으로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도 큰 문제는 없다. 나도 딱히 지구최강 고인물이 되기 위해서 궨트를 계속 붙들고 앉아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재밌어서다. 불리한 상황에서 아슬아슬하게 이겼을 때의 기쁨이나 말도 안 되는 신박한 플레이에 탈탈 털렸을 때의 감탄도 즐겁다. 이걸로 딱히 뭘 성취해 보겠다는 것 보다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다투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어중간한 재능은 잔인하다는 말이 있지만, 어중간하면 또 어떤가 이 말이다. 나 같은 어중간한 인간이 있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올려다보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물론 게임이야 그런 맘이 먹어지지만 현생에선 그게 잘 안 되긴 한다.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면 초조하고 가만히 있는 나는 내려갈 것 같고 막 그렇다. 어쩌다가 나보다 밑으로 가 있는 사람을 보면 안심이 되거나 괜히 걱정해주는 척 하면서 사실은 안 올라왔으면 하는 나쁜 맘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생각들은 의외로 나 자신을 괴롭혔던 것 같다. 1등은 한 명 뿐이니까 되기가 퍽 어렵다. 어려운 만큼 즐거운 일이긴 한데, 그렇다고 안 된 걸 가지고 세상 끝난 것마냥 좌절하다 보면 그 좌절했던 시간이 되게 아깝다. 왜냐면 아무도 그 시간을 보상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PC방에서 롤 한시간 하면 포인트라도 쌓이는데, 혼자 투덜거리고 있는 시간은 시급으로도 안 쳐주고 알아주지도 않는다. 불평은 딱 나를 위로할 수 있을 만큼만 하는게 좋았었다.




다들 바빠서 그런지 내 기분을 신경 써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알파고도 아닌데 하루 종일 행복회로 돌리며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적당할 수밖에 없다. 뭔가 이루고 싶다면 열심히 해야겠지만 그 열심이라는 것도 내가 뻗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적당히 해야 하고, 적당히 기대하고, 적당히 실망하고 또 훌훌 털어낸 다음 일어나서 움직이는 게 좋다. 그래야 나를 도닥여 주고 위로해 주고 또 다음 퀘스트에 대비해 나를 보호할 힘도 생긴다.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나는 내 안위가 최우선이라 그냥 이렇게 산다. 먹고 살기 힘든데 나 자신에게까지 잔인하고 싶지 않다. 적당히 재밌는 게 좋다는 말이다. 대충 살아도 괜찮다고 자기합리화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것 같긴 한데, 사실 맞다. 요즘은 대충 살면 안 된다고 괜히 시비 거는 세상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걱정이다. 그것보단 적당히 해도 1등할 수 있는 분야를 각자 찾아보자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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