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벽난로4K>가 주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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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수분이 날아가 잘 마른 것이 좋다. 참나무나 자작나무를 일품으로 치지만, 잡목이라도 잘 말랐다면 크게 상관은 없다. 벽난로 바닥에 재가 깔려 있다면 더 좋다. 잔가지와 신문지, 마른 나무껍질들을 그러모아 쌓은 뒤 장작을 얹어 준다. 고체 연료를 한두 개 정도 집어넣고 불을 붙인 후 허리를 굽혀 기다리다 보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쪽나무가 타오른다.
이토록 사치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벽난로라는 것을 즐길 수 있다. 나무보다는 전기가, 숲보다는 아파트가 익숙해진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얻기 힘들어진 기회다. 서울의 수많은 원룸들은 싱크대 밑에 세탁기를 집어넣고 뉴욕의 월세 300만원짜리 아파트는 오븐에 옷을 집어넣어야 할 만큼 좁다. 벽돌을 다독여 만든 난로와 사람 키만큼 높이 쌓은 장작과 불쏘시개 같은 것들은 우리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
겨울을 나기 위한 도끼와 화로가 없어도 괜찮다. 누군가는 TV로 누군가는 태블릿으로 또 누군가는 스마트폰으로 벽난로를 ‘재생’할 수 있다. 넷플릭스의 ‘벽난로4K:가상의 따뜻한 자작나무 벽난로’는 제목 그대로 차곡차곡 쌓인 자작나무 더미가 벽난로 속에서 기분 좋은 소리와 불길을 내며 타오르는 모습을 한 시간 남짓 동안 정직하게 담아낸다.
벽난로4K에는 자막도, 나레이션도 없다. 카메라 워크도 없다. 영상은 벽난로 밑바닥에서 작은 불길이 치솟는 시점부터 시작해 이윽고 장작 전체에 불이 붙어 펄럭이다 나무가 조금씩 검게 변해 ‘새 장작을 넣어야 하나’ 싶은 지점에서 끝이 난다. 벽난로에 불을 붙일 준비를 하고 장작이 모두 타버린 뒤에는 검댕 청소를 위해 안락의자에서 몸을 일으켜야 하는 전후 과정은 생략했다. 그것은 벽난로4K를 재생했다가 뒤로가기를 터치하는 우리의 동작이 대신한다.
거실에 있는 커다란 TV에 벽난로 4K를 재생하면 마치 심사숙고 끝에 최적의 장소에 설치한 벽난로가 훌륭히 제 역할을 해내는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멀리 앉아 있어도 장작이 타들어가고 불길이 춤추는 기분 좋은 소리가 즐겁다. 그렇다고 무조건 큰 모니터만이 벽난로를 실감나게 만든다고 속단하지 마시라. 아이폰 12 미니 정도 크기의 액정만 있다면
아무 문제 없다. 거치대 위에 올려두고 쳐다보면 이게 또 꽤 그럴듯하다. 일할 때 집중력을 높여주는 백색소음으로도 좋다.
우리는 모니터 너머로 보는 익숙한 것들에 새로운 반가움을 느낀다. 바닷속 동물들과 세계의 음식 다큐멘터리로 우리는 세상을 체험한다. 때로 그것들은 직접적인 경험보다 더 생생한 감각을 가져다 준다.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느끼는 우리의 감상이 거짓이 아니듯 벽난로4K가 느끼게 해 주는 경험 또한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디지털 노마드라는 직업을 부여 받은 밀레니얼 세대의 특권이다. 오늘 우리의 경험은 언제든지, 어디서나 축적할 수 있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던 노래를 ‘음원 차트 역주행’시키고,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했던 패션을 불러와 ‘뉴트로’를 만들며,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도 얼마든지 관찰 가능하다. 이처럼 넓은 세상을 유목민과 같이 떠돌며 살아가는 과정 또한 우리의 경험을 구성하는 ‘진짜의 삶’이다.
유목민들에게는 지친 몸을 뉘일 수 있는 게르가 있듯 우리에게도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한다. 수많은 컨텐츠 속을 향유하다 때로 힘이 들면 둘러앉아 휴식할 수 있는 벽난로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 그대로 벽난로 영상을 한 번 감상해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기 전에 틀어 놓고 ‘불멍’ 한 편 때리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의 쓸데없는 고민들도 함께 태워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