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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주 Sep 03. 2021

헤엄

일기

무선 이어폰 배터리가 다 되었다. 유선을 챙겨 올 걸 그랬다. 조금 불편하다. 더 외부와 격리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작은 회사에 지원해 볼 것 같다.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 쓰자니 두렵고 싫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을까? 그러나 그런 준비란 없다. 무엇이 두려운지 더 정확히 알아야겠다고 느낀다. 사람이 무서울까? 실패하는 것이 무서울까?


최근 물에 갈 기회가 있었다. 첫째 날에는 튜브를 꼭 붙잡았다. 튜브에 누워서 하늘을 보며 떠다녔다. 친구에게 수영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친구는 이런저런 자세를 보여주었고, 내 자세를 보며 이런저런 것들을 고쳐보라고 일러주었다. 잘 되지 않았다. 나는 물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빠질까 봐 고개에 힘이 들어갔다. 친구는 튜브를 타고 일자로 앞으로 눕는 법과 뒤로 눕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일자가 잘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러 번 해 보니 나쁘지 않았다. 물장구를 쳐 보아도 여전히 어디론가 나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았지만, 적어도 튜브를 타고 있으면 매우 안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지 않을 것 같았다, 왠지. 부력이 느껴졌다.


둘째 날은 수영장이었다. 튜브가 없는 대신 깊지 않았으므로 나는 앞으로 뒤로 여러 번 누워 보았다. 몇 번 해 보니 힘을 뺄 수 있었다. 몇 초 간 떠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기서 팔과 다리를 움직이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수영을 배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몇 번을 더 하면 말이다. 가만히 몇 번을 하면. 오늘 안 되면 내일, 그런 식으로.


몇 달 전 “Through the Tunnel”을 읽었다. 소년이 수영을 하는 이야기였다. 이국의 해변에서 한 무리가 놀고 있었다. 그들은 잠수하여 저 밑의 터널을 통과하여 돌아오기를 곧잘 했다. 소년은 그 정도로 수영을 잘하지 않았다. 무리는 그를 반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금세 그들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잠수해서 터널을 두드리기를 여러 번, 호흡이 부족해서 되돌아오기를 여러 번 한 후 소년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밑에서 오랫동안 몸을 움직여 터널을 통과하는 일. 그는 홀로 했다. 어머니는 그저 호텔에서 기다렸다.


나는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딘가로 상승한다는 감각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대단한 방향 같은 것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그런 믿음과는 별개로 저런 서사의 진실도 존재한다. 무언가를 어떻게든 해내게 되는 일이.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수영을 못하는 나를 압박하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서 몇 번 시도하면 나도 할 수 있으리라. 내게 필요한 것은 그저 물에 몇 번 더 가는 일이다. 좀 더 자주 가 보려고 한다. 즐거울 것 같다.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느낄 뿐이다. 그런 것들은 어디서 언제부터 왔을지 생각한다. 어릴 적 부모의 실망과 체념, 나는 잘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들이나. 그러나 역시, 그것들에 모두 뒤집어 씌우기에는 너무 단순하다. 죄책의 소재를 찾고 싶지 않다. 그때는 지나갔고 여전히 그렇게 느끼는 것은 지금의 나다. 누군가 나를 비난하고 있다고, 그것이 너무나 무섭다고. 그 누군가가 나다. 내가 나를 비난한다. 망설이고 포기하는 것도, 비난하는 것도 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가만히 혼자 두면 해낼 수 있는 일이 꽤 많을지도 모르겠다. 몇 번 잘 되지 않아도 누군가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물에 잘 뜨지 않아도, 무서워서 금방 튜브를 잡아도, 잠깐 떴다가 다시 가라앉아도,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은 채로 같은 동작을 반복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몇 번을 더 했다. 그래서 별 달리 나아지지 않았을 지라도 괜찮았다. 내 친구들은 나를 그렇게 부릅뜨고 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내게 그랬다.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최근 며칠은 그런 나날이었다. 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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