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사귄 친구들에게 사기를 당했다.

스무살

by 도무지

사기를 당했다.

술을 안 먹는다고 생각했던 친구 5명은

사실 술을 굉장히 좋아했다.


“너네 왜 나 속였어?!!

너네 술 안 먹는다고 내가 있는 방으로 왔잖아!! “


그들은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듯

변명거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친구 사귀고 싶어서 그런 거야.”

“나는 그날은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어.”

“나는 조용한 공간에 있고 싶었어.”

“나는 원래부터 너랑 같이 있었잖아.”

“나는 옆방에 뭐 가지러 갔다가

너네 얘기하길래 잠깐 앉아본 건데? “


두둥-

이렇게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낼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왜 갑자기 나를 속였냐고 따졌냐고?

내가 따지던 그 공간도 다름 아닌 술집이었으니까.


친구들은 매일 학교가 끝나면

술을 마시러 가자고 했다.

물론 그 자리에 술을 먹지 않는 나도 종종 참석했다.


나에게 술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술을 먹지 않으면 서운한 티를 그렇게 냈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워낙 목소리가 크고 재잘재잘 떠드는 성격이라

술을 먹지 않아도 취한 것처럼 놀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안주가 너무 맛있어서 가끔은 내가 먼저 술집에 가고 싶어 하기도 했다.

세상에, 일반 식당보다 맛있다니.


우리는 술을 마시러 갈 때면

오픈된 공간보다 늘 룸을 찾아갔다.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할 때면

세상 순한 여자인 척 목소리를 변조해 가며 주문을 했고


이곳이 내 세상인 양 떠들썩하게 놀고서

술집을 나올 때면

세상 힘이 센 남자처럼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물론 친구들이 토를 하거나

술주정을 하고 정신을 못 차릴 때면

뒤처리를 하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아이스크림 안 먹으면 집에 안 가!!!!!!”

“메로나… 메로나… 메로나….”

“나도!!!!!!!!”


병나발을 불며 저런 정신 나간 소리를 할 때면

나는 나가 아이스크림을 사 오거나

다 같이 데리고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였다.


“나 집에 갈 거야!!!!”

친구가 소리를 지르면


“야 막차 끊겼어. 집에 어떻게 갈 건데!!!”

나는 화답한 후,

친구 어머니에게서 울려온 전화기를 붙들고

“네 어머니~ 저 00이 친구 도무지에요~ 지금 00이가 많이 취해서~ 택시 타고 가야 할 거 같은데, 집 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렇게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집주소를 받아내곤 했다.

나중에는 내 메모장에 이들의 주소와 부모님 연락처 모음집까지 있었지만.


보통 우리가 가진 술자리에서는

앞으로 있을 미팅이나

클럽에 가는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술을 안 먹는 탓에

이 나이 먹도록 미팅을 가보지 못했다.


하, 지금은 술을 먹는데 진작 먹고 해 볼 걸 후회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게 다 추억이고 재미인데.

그리고 미팅은 학생 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던가.


또한 클럽도 마찬가지였다.

일전에 이야기해서 알겠지만

나는 수학여행 때마다 매번 장기자랑을 나간 이력이 있었다.

그만큼 나는 춤에 일가견이 있다는 뜻이었다.


춤에 있어서 만큼은 메타인지가 뛰어났던 나는

클럽에 가면 얼마나 행복하게 몸을 흔들어 재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하지만 보수적인 여자, 나 도무지는

클럽이라는 곳에 갈 수 없었다.

혹여나 안 좋은 일이 일어날까 겁이 많은 탓도 있었고

부모님이 나를 신데렐라처럼 키운 것도 있었다.

(21시만 되어도 전화에 불날 것처럼 전화가 왔다.)


내심 미팅이나 클럽을 다녀온 친구들이 부러우면서도

나는 남자친구가 있으니 쟤네들보다 낫다며 합리화를 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계속 친구들과 추억을 쌓지 못하고 어울리지 않아서, 다시 혼자가 되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술 먹고 클럽 가고 미팅 가고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20대 초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지만,

나는 어쩐지 이 모습들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제가 대체 뭐였을까?





이전 04화내가 대학 MT때 했던 미친 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