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나는 수능을 보기 좋게 말아먹었다.
부모님도 나도 재수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취업이 잘되는 학교를 선택하고 진학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대학 동기들보다 공부를 잘했다.
나는 이 학교에 다니는 게 부끄러웠는데
그 아이들은 내게 “너 영어 잘한다!”라고 말하기를 아무렇지 않아 했다.
또한 나는 과잠 입는 날을 피하고 싶어 했는데
그들은 과잠도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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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때는 이름처럼 꼭 붙어 다니는 질문이 있었다.
“대학교 어디에 다녀?”
대답하기 싫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안 하는 건지, 난 저 질문이 참 싫었다.
특히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오빠가 대학교 이름을 사람 이름 대신 부른 사람이 있었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꼭 상위권에 있는 인서울 대학교 학생만 그렇게 불렀다.
“어이! 고대생!”
“야! 연대생!”
그렇다.
나는 그 오빠에게 절대 이름을 불릴 일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오빠는 조금 더 낮은 부류의 대학교에 다니다가 재수해서 더 높은 대학에 입학한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 네이밍에 굉장히 집착했던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당시 교회 분위기는 은근히 학벌 위주로 그룹이 형성되어 있었다.
물론, 내가 마음에 드는 대학교에 간 것이 아니라서 피해의식으로 기억을 조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때의 기억이 생생한 걸 보면, 얼추 맞지 않았을까 싶다.
ㅡ
나는 술을 먹지 않아서 소개팅과 미팅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개팅이든 미팅이든
학교 대 학교로 진행되기 때문에,
나는 그런 식으로 나의 신상인 대학교를 밝히는 것이 싫었다.
또 대학에 대한 일화로는
해외 유명 대학을 다녔던 남자친구가 나를 지독하게 무시했던 전적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 소개팅이나 미팅에 가면
내가 무시를 당할 거라는 만연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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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대학 동기들이 나에게
“공부를 잘한다.”라며
인정하고 칭찬하는 게 오히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는 무시를 당해놓고
그곳에서는 속으로 ‘너랑 나랑 같겠니’ 비아냥 대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공부를 잘해서 들어왔든 못해서 들어왔든 나는 그 학교 학생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당당하게 본인의 위치를 인정하고
20대의 삶을 누리는 그들이 진정한 위너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타인의 잘남을 질투하지 않고
솔직하게 칭찬할 줄 아는 그 선한 마음까지도
나보다 백억만큼의 가치가 있음을 지금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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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극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그 먼 곳을 오가는 지하철까지도 정말 싫어했다.
내가 이 먼 길을 왜 가야 하며
내가 왜 이 아침이 일어나서 가야 하며
온갖 짜증이 밀려왔었다.
그렇게 한 번만 더 늦으면
F학점을 맞게 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담당 교수님이 나를 불렀다.
“도무지, 나랑 점심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