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생존하기는 힘들겠더라...

스물한살

by 도무지

해외 선교를 갈 때는 몸을 예쁘게 치장하거나 얼굴에 화장을 해서는 안 되는 규칙이 있었다.

남녀가 섞여서 함께 가기 때문에, 선교에 집중하는 게 아닌 이성과의 만남에 초점이 맞춰질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통 앞머리가 있는 여성들은 앞머리에 뽕을 띄우는 게 생명이다.

그래서 외출을 하기 전, 고데기를 하거나 그루프를 마는 것은 필수 행위이다.

나 또한 앞머리가 있었고 뽕을 띄웠을 때 눈썹을 덮는 정도까지 오도록 길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예쁜 옷을 입지 않고 화장을 하지 않더라도 그루프는 반드시 해야만 했다.

그런데 몽골에서 이마에 그루프를 얹자마자 하지 말라는 지령이 내려졌다.


이게 얼마나 끔찍한 지령인지는 앞머리 있는 사람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거지존에 있는 머리카락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이 지령은 내게 다른 사람들의 눈에 100만 배 못생겨 보이라는 지시와 같았다.

또한 앞머리가 눈을 계속 찌르는데 넘기지도 내리지도 못해서 오히려 더 선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루프가 필요한 이유를 말하고 싶었지만, 괜한 핑계처럼 보일까 봐 나는 군말 없이 그루프를 가방 안에 넣고 전도사님의 말을 따랐다.


차라리 앞머리가 난감할 때가 제일 좋았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한국에서 선교를 가게 되면 보통 지방으로 찾아갔는데,

꼭 교인이 몇 명 되지 않는 힘든 교회에 갔다.

그곳에서 며칠 숙박을 하면 이불도 없이 담요를 덮고 가방을 베개 삼아 자야 하기 때문에 잠자리가 불편한 건 당연했다. 졸졸 나오는 물로 씻어야 하는 불편함은 덤이었고 찬물이 나와 얼어 있었다.

아무리 지방이라지만, 한국은 한국이었다.


몽골은 물이 귀하기 때문에 씻는 거 자체가 불가했다.

머리카락은 기름이 흐르다 못해 떡이 지고 서로 엉켜 놓아줄 줄을 몰랐다.

올리브영에서 물 없이 쓰는 샴푸를 준비해 갔지만, 찝찝한 건 여전했다.

우리는 씻기 위해서 돈을 주고 강에 들어가야만 했다.

새로운 경험에 신이날 법도 한데 그때는 청결하지 못한 상황이 즐겁지 못했다.

특히 여성들은 월경기간이면 강에 들어갈 수가 없는데,

몽골 사람들은 그냥 그런 상태로 들어가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이 만약 예스라면 나는 더더욱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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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식에 있어서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중국에서도 특유의 향신료 맛 때문에 입을 대지 못하는데 몽골도 마찬가지였다.

양고기에서 올라오는 비린맛이 오물거리는 내 입을 막았고

올리브유를 쓰는 우리와는 다르게, 모든 음식에 양기름을 넣어 그 어떤 음식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위가 거부하는데 억지로 먹을 수 없어서 나는 굶기로 작정했다.

어떤 언니는 몽골 분들께서 손님이 왔다고 정성스레 준비해 주신 건데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꾸역꾸역 먹었다가 나중에 토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몇 날 며칠을 초코파이만 먹으며 버텼고 배고픔에 굶주리며

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맛있다며 먹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이후 몽골 양고기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나는 두 번 다시 양고기를 입에 댈 수 없었다.

한때 양꼬치가 유행이어서 함께 먹으러 가자고 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늘 나 때문에 다른 음식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러다 27살이었나 28살 때, 안 좋은 추억을 깨고 싶어 도전한 양고기가 맛있어서 한동안 양고기만 먹으러 간 적도 있긴 했다.

한국에서도 양고기 식당을 잘못 가면 비린 맛이 올라와 못 먹는 경우도 많았지만, 양꼬치는 고춧가루가 웬만하면 비린 맛을 숨겨줘서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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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몽골 자브항에서 선교 활동을 멈추고 다시 수도인 울란바토르로 돌아와야 했는데

자브항을 갈 때는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했지만 돌아갈 때는 봉고차를 탔었다.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을 차로 달릴 때 처음 보는 광경인지라 너무 신기하고 계속 눈에 담고 싶었다.

건물 하나 없고 모래 가득한 사막 같은 모습, 때로는 초원이 펼쳐지고 말과 양들이 자유롭게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게 앞으로 다시 볼 일 없을 거 같다는 생각에 그 순간이 참 소중했다.

몽골은 유목민이라 게르라는 집을 통해 옮겨 다니는데, 사진으로만 보던 게르가 눈앞에 나타나기도 했다.

몽골 사람의 시력은 엄청나게 좋다지만, 아마 그때의 내 눈은 호기심에 한없이 반짝여 그들보다 더 시력이 좋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광경이 좋은 것은 한때였다.

차는 분명히 앞으로 가고 있는데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내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은 똑같은 것이다.

잠을 자다가 일어나도 똑같고 친구들과 수다 떨다가 창밖을 봐도 똑같고,

그렇게 72시간을 봉고차에서 보냈다.

몽골은 도로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길마다 덜컹거리는 정도가 정말 심각했다.

허리는 부서질 것 같았고 잠을 자더라도 깊게 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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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은 고도가 높다.

우리가 있는 곳은 그중에서도 더 높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귀가 멍멍한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비행기가 이륙할 때 멍멍해지는 것보다 10배는 더 멍멍했던 거 같다.

시간이 지나서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멍멍하다는 것을 쭉- 인지할 수 있는 상태였다.

몽골 사람들은 계속 이런 고도에서 있기 때문에 불편함을 못 느낄 텐데,

문득 한국에 데려와 귀가 뻥 뚫린 걸 경험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니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 축복인 것 같다.

최근에 읽었던 책 <당신은 설명서도 읽지 않고 인생을 살고 있다> 중에서 이런 말이 있었다.

누군가 얻는 이득에 대해 불평할 때마다, 내가 누리는 이득에 대해 불평할 사람을 생각해 보라고.

어떤 사람도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고.

그러니 위를 볼 때는 돌을 던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목표를 확인하기 위해서,

아래를 볼 때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여유가 된다면 가끔 가능한 선에서 손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몽골 사람들이 내가 살아가는 생활을 봤다면 돌을 던지고 싶었을 텐데,

나는 그 당시 내가 갖고 있던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며 불평만 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순간에 내 위치를 감사히 여기며 손을 더 내밀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스물한살의 나이에는 어려웠던 이해가, 지금은 가능하다는 게 신기하다.

만약 내가 지금 그때를 회상하지 않았더라면 많은 난관이 있었던 몽골이라고만 생각했을 테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나의 관점을 바꿀 수 있는 전환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지금 이 글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몽골에서 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다음 글에서는 몽글몽글하고 좋았던 일을 적어보려고 한다.


**스무살은 적어 내려 가는 게 참 쉬웠는데 스물한살은 왜 이리 어려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이 브런치북을 기다리는 구독자분들이 계시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조심스레 전해본다.

그래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 조각난 기억을 더듬어 퍼즐조각 맞추듯 잘 맞춰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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