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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Aug 24. 2024

시디즈 의자연구회  ⟨마케터의 의자⟩ 방문기

우리 각자에게는 '의자'라는 작은 우주가 있죠

팝업스토어가 트렌드가 아닌 본전이 된 시대


'브랜드 팝업 임대'


아마 성수 근방을 걷던 중이었을 거다. 부동산 전면유리에 크게 써붙여진 일곱 글자에 나도 모르게 허, 하고 웃음이 났다. 크고 작은 브랜드들이 성수에 팝업스토어를 여는 것이 어제오늘일은 아니라지만 마주치지 않길 바라던 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느낌이랄까, 순간 불편한 감정들이 한여름의 더운 바람처럼 훅 끼쳤다.  


브랜드 팝업스토어에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이 언제였던가. 거리를 지나다 철거 중인 팝업의 대량 폐기물을 목격했던 그 순간부터? 브랜드의 로고가 박힌 포스트잇과 볼펜이 쌓여 처치 곤란이 되었을 때부터? 아니면 인스타그램 인증 이벤트가 이골이 났을 무렵부터? 확실한 건 마케터라는 직업을 가진 나조차 언젠가부터 브랜드의 천편일률적인 각종 행사들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자 브랜드 시디즈의 의자연구회에 참가 신청서를 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행사의 컨셉이 바로 <마케터의 의자> 였기 때문이다. 많은 직업군 중에서도 마케터의 일과 꿈, 그리고 이들의 작업공간에 필요한 의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는 점이 맘에 들었다. 두 번째 이유는 최근 갑자기 생긴 '의자 욕심' 때문이었다. 작년 집을 옮기며 바꾼 가성비 좋은 의자를 무난하게 쓰고 있지만 쓸수록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가 조립을 엉성하게 한 탓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사정상 재택근무를 하는 내게 좀 더 똑똑한 의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장소는 시디즈의 플래그십 스토어 중 하나인 '시디즈 더 프로그레시브 합정' 으로 당첨되면 의자 구경은 실컷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맘에 드는 의자를 찾으면 무이자 할부로 질러야지. 이런 내 사심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유달리 지치는 화요일 저녁 시디즈로부터 기분 좋은 참가확정 문자를 받을 수 있었다.

  

직장인이라면 유달리 지치는 화요일 저녁, 시디즈로부터 받은 기분 좋은 문자


그래서 행사에 다녀온 소감은 어땠냐고? 회사원에게 소중한 평일 저녁시간을 할애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 시간이었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의자에 진심인 시디즈, 마케팅에도 제법 진심인데?


시디즈가 이번 행사를 진행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그 회사 직원만이 정확히 알겠지만 브랜드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120%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 기회로 시디즈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의자에 진심이고 이러한 진심을 알리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마다하지 않는 브랜드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기 때문이다.


먼저 시디즈의 플래그십 스토어 '시디즈 더 프로그레시브 합정'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합정역 출구와 인접한 건물 1층 전체를 브랜드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꾸민 시디즈의 자본력에 우선 감동했고 매장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시디즈의 제품을 심리스(seamless)하게 체험할 수 있는 체험존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시디즈 더 프로그레시브 합정'에서는 시디즈의 모든 의자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널찍한 공간에 들어서면 시디즈의 스테디셀러 'T90'부터 스툴 '펑거스'까지 시디즈의 베스트제품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교실처럼 책상과 의자가 카운터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는 것도 특이했지만 자리마다 의자가 모두 다른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좋았던 건 책상에 설치된 태블릿 PC였다. 내가 앉아있는 의자의 영문이름이 크게 적힌 태블릿 PC를 클릭하면 내가 선택한 의자의 소재와 특장점부터 가격, 프로모션까지 한눈에 확인이 가능하다. 솔직히 일반인이 의자에 대해 안다면 얼마나 잘 안단 말인가. '의자알못'인 나도 태블릿을 통해 내가 선택한 의자인 '리니(LINIE)'에 대한 정보를 잔뜩 얻었다. 후일담이지만 실제로 앉아본 리니는 헤드레스트가 없고 등받이 각도까지 조절되는 것이 내 맘에 쏙 들었다.


책상마다 설치된 태블릿pc를 통해 내가 앉은 의자의 모든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시몬스가 자사 브랜드를 힙하게 만들기 위해 침대를 숨긴다면, 시디즈는 그와 반대로 의자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확장하는데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매장 전체를 은은하게 채우는 시그니처 향과 그 향으로 제조한 섬유향수부터 의자 전용 청소기, 의자 프라모델까지. 의자를 단순한 사무용 가구로 알면서 살아온 나에게 의자를 위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을 만든 주체가 의자를 만드는 브랜드라 더 관심이 갔다.


의자를 직접 만들고 디자인하는 시팅마스터들과의 즐거운 시간

                    

팝업스토어 현장에서 여러 차례 근무한 경험이 있기에 내부 직원이 고객을 직접 만나는 자리가 얼마나 떨리고 책임이 막중한 지 잘 알고 있다. 내 말과 행동 하나가 내가 소속된 브랜드의 이미지가 될 수 있는 만큼 얼굴 근육에서 쥐가 날 만큼 밝은 표정을 유지했던 기억이 난다. <마케터의 의자>가 뜻깊은 시간이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의자를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는 시디즈의 많은 직원들을 만나고 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행사를 직접 기획한 브랜딩 담당자부터 20년 가까이 시디즈에서 의자를 생산하고 디자인하고 있는 시팅마스터 3인까지, 팝업스토어 기간 동안 고용된 훤칠한 프로모터들보다는 브랜드를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을까.


게다가 단순히 그들의 이야기를 일방향으로 청취하는 것이 아닌 직접 조를 구성해 마케터에게 필요한 의자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여담이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소속된 브랜드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것처럼 보였다. 회사 욕하기를 누구보다 즐기지만 회사가 콜라보한 캐릭터 포스터를 방에 붙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비밀(?)이지만 나도 내가 소속된 브랜드를 아주 조금 사랑하고 있다.


다양한 마케터들과의 네트워킹

마지막으로, <마케터의 의자>라는 행사의 주제처럼 많은 마케터들을 만날 수 있어 뜻깊은 자리였다. 다양한 산업군에서 재직 중인 마케터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흥미로웠는데 직무는 같지만 하고 있는 일의 결은 제각기 달라서 신기했다. 본인을 소개하는 방법도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본인을 'OOO(브랜드명)'에서 일하고 있는 'ㅁㅁㅁ(이름)'이라 소개하기도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본인을 마케팅하는 디자이너라 말했다. 어떤 이는 마케팅에서 데이터는 필수불가결적이라 주장했고 또 다른 이는 마케팅은 철저히 감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반대 의견을 펼치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라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어찌나 다들 똑 부러지는지 개인적으로 자극제가 된 시간이기도 했다.


폴앤마크 CEO 최재웅 강사님과 함께 했던 유익한 강연과 동료 마케터들과의 네트워킹 시간 (남이 바라보는 나는 어떤 동물일까?)

우리 각자에게는 '의자'라는 작은 우주가 있죠

의자는 개인의 우주입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시디즈에서 받아온 팸플릿을 다시 한번 살펴보다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어 그대로 적어본다. 의자는 개인의 우주입니다. 의자는 개인이 점유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공간이자 무한한 가능성이 시작되는 우주입니다. 얼마나 맞는 말인가. 난 무한한 가능성이 시작될 작은 우주에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본 포스팅은 업체로부터 일체의 대가성 지원 없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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