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님과 제 방향성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이직 7개월 차, 회의 후 잠시 남으라던 상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사실 그가 나에게 정확히 어떤 피드백을 줬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 곱씹어보면 대충 저런 뉘앙스였던 것 같다.
그의 요지는 이러했다. 최근 문의가 빗발치는 불안정한 서비스에 대한 거래처의 컴플레인 건은
뒤로 미뤄두고 당장 큰 매출을 가져다줄 수 있는 프로젝트에 집중하라는 것.
너무나도 당연하고 공감되는 말이기도 하면서 순간 울화통이 치미다가
또 실무를 모르는 C레벨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하며 공감도 해보다가.
유명한 축구선수가 대중의 악플에 싸이월드에 올려서 한동안 밈이 됐던 글귀가 떠올랐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
이 상황에 이 말을 내뱉으면 난 권고사직으로 실업급여를 받게 되겠지?
처음 입사해 놀랐던 건 서비스의 너무나도 잦은 오류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빈번한 버그와 경쟁사 서비스와 비교도 되지 않는 노후화된 UI/UX.
내 업무를 인수인계하던 전임자는 처음에는 이런 오류가 곧 익숙해질 거라며
적당히 흐린 눈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마케터였다. 소속된 브랜드의 서비스를 매력적으로 포장하여 세상에 내놓는 것이 업이지만
형편없는 서비스를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건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사기였다.
언제 업데이트된 지도 모르는 리뉴얼 전 브랜드 로고를 교체하고
유관부서를 어르고 달래 불쑥불쑥 나타나는 오류건을 하나하나 개선하고
큰 회사가 이렇게 체계 없이 돌아갈 수 있나 싶나 싶게 0에 수렴하던 프로세스를 하나씩 만들었다.
이것저것 프로모션으로 성과도 내며, 이 브랜드를 정말로 사랑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겨나고 있던 터였다.
회사생활이라는 것은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 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답답하면 대표님이 하세요,라는 말은 결국 삼키고 적당히 타협하는 말로 얼버무리며 회의실을 나왔다.
어떤 브랜드의 사활을 결정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신규 고객일 것이다.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야 냇가가 썩지 않는 것처럼 기존 고객만으로는 브랜드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신규 고객도 고작 큰 숲의 나무 하나가 아닌가?
빼어난 나무 하나를 잘 키운다고 숲이 만들어지지 않듯이
브랜드는 결코 기존 고객을, 혹은 돈이 되지 않는 거래처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성장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작은 씨앗일지라도 결국 그런 변수가 살아남아 고목이 되고 나무가 된다.
일개 실무자가 하늘 같은 대표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리겠냐만은
역시나 이번 회사도, 꽤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