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책 한 권을 읽었다. 저자의 전작인 <아무튼, 영양제>도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 책도 어찌나 책장이 후루룩 넘어가던지. 글을 '잘' 쓰는 것과 '재미있게' 쓰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매번 느낀다. 책 표지를 훑다가 <우울증 가이드북>이라는 제목과 함께 한 문장이 눈에 띈다. '오늘도 우울한 당신을 위한 아주 쉽고 쓸모 있는 안내서'.
책을 사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읽어도 되는 책인가 싶었다. 나는 10년 차 우울증 환자로서 20대 중반부터 신경정신의학과에 다녔으니까. 흔히 가이드라고 하면 어떤 프로세스가 낯선 이들을 위한 그야말로 안내서가 아닌가.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우스웠다. 내가 모르는 게 생각보다 너무도 많아서. 어쩌면 나는 내 병에 대해 일부러 흐린 눈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회피했던 거였다.
내가 처음 남들과 다르다는 걸 인지한 건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함께 화장실에서 공예용 니스 한 병을 그대로 원샷했었다. 그때의 내가 겪고 있던 힘듦이 평범하진 않았던 것은 맞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우울의 싹은 그때부터 슬금슬금 내 안에서 자라고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 우울의 새싹은 조금 더 자라 고2 여름에 폭발했다. 엄마의 수면제 한 통을 화끈하게 털어 넣은 나는 강남성모병원 응급실에 실려갔고 드라마에서만 보던 위세척을 했다. 살려고 오는 병원에 죽으려고 온 나를 사람취급 않는 간호사의 경멸의 눈빛을 본 뒤로 (사실은 위세척이 너무 고통스럽기도 해서) 그 후로 자살시도를 멈췄지만 그 이후로도 나는 자주, 정말 자주 죽고 싶었다.
정신과에 처음 간 것은 스물넷. 기록이 남으면 취업에 영향이 갈지도 모른다며 길길이 뛰던 엄마 몰래 대학병원 외래를 예약했고 그때부터 약을 먹은 게 벌써 10년이다. 지금은 안다. 눈 감으면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수없이 바라던, 눈을 굴리며 방구석에서 목을 맬 자리만 찾던 그때 어쩌면 나는 누구보다 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내 삶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정신과를 갔던 거겠지.
여하튼 10년을 우울증과 함께했지만 주기적으로 약만 타먹을 뿐 내 병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걸 반성하고 최근에는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다. 타인의 기분보다 내 기분을 더 소중하게 여기려 노력하고, 지금은 잠시 먹지 않지만 우울증에 좋다는 마그네슘도 챙겨 먹고. 몸이 더럽게 피곤해도 주 2회 이상 운동도 간다. <우울증 가이드북>의 저자의 후기에 용기를 얻고 조만간 심리상담도 받으러 갈 예정이다.
항상 생각한다. 이런 각고의 노력에도 결국 내 삶의 끝은 자살일지 모르겠다고. 우울과의 기나긴 전쟁에서 나가떨어지는 순간, 나는 결국은 항복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나는 10년째 이기고 있고,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