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2, 주인공은 누구일까

by EASY

흑백요리사 시즌2 12화까지 시청 후 작성한 글로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불가피한 경쟁, 그리고 그 안에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보는 내내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데블스플랜2를 보다가 지나치게 분노한 나머지 이탈한 이력이 있다.


그런 내가 어릴 적부터 챙겨보던 유일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요리 서바이벌이었다. 마스터셰프 코리아부터 시작해서 한식대첩까지. 어릴 적부터 엄마가 요리할 때면 옆에서 늘 지켜볼 정도로 요리에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이와 별개로 왜인지 요리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경쟁이 있어도 보는 동안 지치지 않았다. 그 증거로 흑백요리사 시즌 1을 보고 감탄하며 썼던 글을 공유해본다.


요리 서바이벌이 다르게 다가온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흑백요리사2를 챙겨보며 기본적으로 요리라는 행위에는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전제되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선재스님이 잣국수를 만들며 잣이 소화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호박을 함께 반죽하는 마음, 최강록 셰프가 각각의 재료를 서로 다른 간과 익힘을 고려하며 먹는 이가 조화롭게 느끼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같이 요리하는 사람을 늘 먹는 사람을 생각한다. 그래서 경쟁보다는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그 결과물에 감탄하며 프로그램에 집중하게 된다.


또한 요리라는 행위가 가진 창의성이 주는 재미가 크다. 서바이벌의 특성상 탈락과 생존이 결정되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그 과정에서 재료를 창의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의도가 담긴 요리를 한 사람이 주는 감동과 재미가 있어 “떨어졌어도 나는 이 사람의 요리가 감동적이야”라는 나만의 해석과 이유가 존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흑백요리사가 이 방법을 활용하여 흑수저 셰프와 백수저 셰프 개개인의 서사를 굉장히 잘 부여한다고 느낀다.


후덕죽 셰프의 라초면


10화에서 후덕죽 셰프가 라초면을 만드는 과정에서 라초면의 정석적인 요리 방법이 있지만 칼국수 면의 특성을 고려하여 요리 방법을 바꾸는 장면이 요리라는 행위의 창의성과 셰프의 빛나는 순간을 보여주는 정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56년의 경력을 가진 이가 이토록 반짝이는 눈빛으로 “재미”를 말할 수 있는 분야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진심으로 감동적이었다.


전 이제 요리라는 거에 대해서 굉장히 재미난 게 아무것도 아닌 걸 갖다가 조금만 머리를 쓰면은 또 새로운 맛이 나오고 또 새로운 요리가 나오고 그렇게 하는 것이 굉장히 재미가 나요.

- 흑백요리사 10화에서 후덕죽 셰프의 인터뷰 -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흑백요리사를 볼 때면 승자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음식을 먹는 이를 배려하고, 요리라는 행위의 본질에 집중하여 최고의 맛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이가 주인공이라고 느껴진다.


개인의 성격과 신념에 따라 그 방법은 다양하다. 180분 동안 1개의 요리를 만들어 내는 최강록 셰프도 있고, 5개의 요리를 만들어 내는 임성근 셰프도 있다. 복잡한 맛의 레이어를 설계하는 손종원 셰프도 있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내는 최소한의 조리를 선택하는 선재스님도 있다.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면 누구든 주인공이 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이 시험의 결과가, 오늘 1등이 주인공 일 것 같아 불안하고 두렵지만 길게 보면 결국 자신의 색깔을 지키며 신념대로 꾸준히 나아가는 이가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결코 최후의 1인이 아닐 때가 많다. 여러 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흑백요리사 시즌 1에 나온 여경래 셰프의 명언으로 글을 마무리해 본다.

사람들은 요리 서바이벌의 승패를 기억하지 않는다. 남는 건 출연자의 실력과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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