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짜인 구조 속 서사가 풍부한 주인공들
앉은자리에서 4화를 내리보고 도저히 그냥 잠들 수 없어 글을 쓴다.
그가 스스로 갈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본 사람인지는 그의 삶에 녹아 드러난다. 그가 모두에게 알려진 유명한 사람이야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것이 이 프로그램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이다.
알려진 고수이든 재야의 고수이든 끝까지 가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드러난다.
급식의 대가가 선보인 정직한 한판의 급식,
한식의 장인이 선보인 깊이 있는 곰탕 한 그릇,
묵은지라는 낯선 식재료를 마주한 미국 출신 셰프가 선보인 생경한 샐러드 한 접시,
다채로운 요리의 향연 속 젊은 셰프가 선보인 기본기에 자신의 색을 더한 알리오 올리오,
조림의 대명사가 선보인 재료 본연의 맛에 충실한 무조림까지
고수의 음식에는 삶의 철학이 녹아 있고 어떤 어려운 난관을 마주해도 드러난다.
80명 흑수저의 대결에서 설사 60명 떨어지더라도 80명의 흑수저 요리사 각각의 스토리를 다룬다. 마치 성장 만화에서 캐릭터 하나하나에 서사를 부여하는 밑작업과 유사하다. 게다가 비슷한 서사끼리는 함께 편집하여 이 중 누가 생존할지 쪼는 맛이 어마어마하다.
흑과 백의 일대일 대결에서는 흑이 직접 대결대상을 고르게 하여 그들의 패기와 함께 백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한식 중식 일식 양식으로 구분되는 분야의 매칭이 아주 자연스럽게 완료된다.
흑과 백의 일대일대결에서는 맛 본연에 집중하기 위해 심사위원의 눈을 가린다. 2:0으로 귀결되는 심사 결과를 보며 맛이라는 얼마나 원초적이고 정직한지 깨닫게 됨은 물론, 미사여구처럼 느껴지던 맛의 깊이가 실존함을 목격한다. 더 백미는 1:1로 갈리는 순간이다. 맛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때 그 차이가 얼마나 미묘하며 또 견고한지도 보여준다.
심사위원 선정도 탁월하다. 흑과 백의 상징성을 가진 두 고수가 서로의 전문성을 십분 발휘하되, 겸손하고 유쾌하다. 특히 안성재 셰프의 심사평은 근 몇 년간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심사위원 중 압도적으로 좋았다. 자신의 기준이 명확하고 그걸 납득시키는 심사였다.
이 모든 장치들을 통해 결국 흑과 백이라는 계급이 누군가를 구분하고 논란을 일으키는 수단이 아니라 서로를 더욱 빛내는 하나의 수식어처럼 느껴지게 한다.
잘 짜인 구조 속 서사가 풍부한 주인공들이라니 성공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다. 하 다음 주는 합동대결이라니 이 얼마나 스펙터클한 서사인가. 제발 끝까지 이 기조가 유지되는 역대급 프로그램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