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ASY Sep 08. 2024

굳이 영주로의 주말여행

팀원들과 점심을 먹으며 굳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https://kuziproject.oopy.io


한 팀원은 이미 굳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 한 팀원은 이번에 새로 신청한다고 했다. 나에게 굳이 프로젝트를 하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모르겠어요.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요즘 진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몰라 고민이 많았다. 집에 돌아와 몽생이에게 굳이프로젝트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러곤 어느새 한 3주 정도가 흘렀는데 지난 일요일 갑자기 굳이 프로젝트로 영주에 가자고 했다.


영주는 연애시절부터 종종 가볼까 이야기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굳이 영주를..? 하며 늘 조금 더 유명한 관광지(속초, 경주, 부산 등)를 택하다 보니 가보지 못했다. 코로나와 임플란트 등으로 갑작스러운 노화를 느끼던 그는 마음 한편 있던 영주로의 여행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그렇게 굳이 영주로의 주말여행이 시작되었다.



금요일 밤 10시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예약하고 영주역 앞 7만 원짜리 숙소를 예약했다. 알토호텔이란 곳이었는데 가격대비 아주 훌륭했다. 맥주 두 캔을 들이켜고 오래간만에 라면볶이를 먹으며 우리만의 굳이 프로젝트를 위해 영주에 도착했음을 실감했다.

 

푹 자고 싶다는 마음에 알람도 맞추지 않고 잠들었다. 눈떠보니 9시 40분이었다. 깨끗하게 씻고 퇴실시간에 맞춰 영주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부석사로 출발했다.


부석사 앞 자미가라는 식당에 들러 산들 정식을 건강하게 먹었다. 영주가 콩으로 유명한지 청국장 집이 많이 보였는데, 블루리본이 있길래 이 식당을 선택했다. 굳이 부석사까지 와서 맛본 산들 정식은 정갈하고 맛있었다.

부석사 앞 자미가 산들정식

꽤나 가파른 산기슭을 오르다 보니 천왕문이 보였고 부석사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니. 그 뒤편 이렇게나 멋진 경치가 펼쳐졌다. 다른 사찰과 달리 종각(범종각)이 중앙에 위치하여 압도감이 느껴졌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성당에 느껴지는 성스러움과 압도감이 있는데, 부석사는 그 이상이었다. 범종각안양루로 이어지는 길에서의 경치와 구조에서 뿜어지는 압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경치보다도 더 압도적인 것은 무량수전 그 자체였다. 그 흔한 화려한 문양하나 없이 오롯이 나무로만 지어진 단출함 그래서 더 뚜렷하게 느껴지는 배흘림기둥의 유려한 선형이 주는 무게감이 있었다. 무량수전 안에 앉아 우리 가족의 건강을 빌며, 이 아름다운 문화재가 잘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어쩌면 익숙한 이 문구가 우리를 영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기분 좋게 내려오며 홍옥도 구매했다. 부석사 초입에는 사과를 판매하는 소상인이 많았다. 홍로, 아리수, 홍옥과 같이 그냥 사과가 아닌 사과의  품종으로 쓰인 문구를 보며 “아 사과의 고장 영주에 왔구나.” 느낄 수 있었다. 아삭하고 신 맛의 사과인 홍옥이 생경하면서도 좋았다. 백설공주 사과라고 불릴 만큼 예쁜 겉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홍옥

부석사에서 내려와 무섬마을로 향했다. 둘째 날 우리의 숙소이기도 했다. 전통가옥이 많은 이 마을에는 민박의 형태로 제공되는 숙소가 많은데 우리는 그중 김한직 가옥에 머물렀다. 내부는 현대화되어 방마다 에어컨과 tv가 설치되어 있다. 물론 방은 매우 좁고, 딱딱한 바닥, 공용화장실은 어쩔 수 없다. 한옥마루에 앉아있으면 사방으로 뚫린 창으로 바람이 오고 가 시원함과 편안함이 느껴져서 굳이 에어컨을 켜고 싶지 않았다. 이르게 짐을 풀고 홍옥을 먹으며 낮잠을 잤는데, 이 시간이 참 좋았다.


적당히 더우면서도 적당히 시원한 느낌이 자연스러웠고 기분 좋았다.

한숨 자고 일어나 무섬마을에서 유명한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생각보다 무서웠다. 한 번 시작하며 되돌아갈 수 없다는데 두려움이 컸다. 사실 안 건너고 싶었는데 굳이 프로젝트이니 굳이 가야 한다는 몽생이를 따라 건넜다. 중간중간 마주 오는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설치된 중간 다리에서 휴식하며 완주(?) 하니 꽤나 뿌듯했다.


굳이 프로젝트를 이래서 하는 거구나.
하고 싶어서 시작하지 않아도,
굳이 해내면 뿌듯하고 추억이 된다.
외나무다리

저녁에는 다시 시내로 나갔다. 한우가 유명하다고 하여 식육식당을 찾았다. 중앙식육식당이라는 로컬 맛집을 찾아갔는데 정말 관광객은 우리뿐이었다. 갈빗살과 안창살을 3인분이나 먹고 백세주도 혼자 1병 마셨다.


한우는 어디에나 있지만, 굳이 영주까지 와서 열심히 검색하여 성공한 맛집에서 먹는 한우는 달랐다. 그냥 기분이 조크든요^^

중앙식육식당

얼큰하게 기분이 좋아 산책을 할 겸 걷다가 굳이 로또를 샀다. 내 생에 내 돈으로 산 첫 로또였다. 힐링로또라는 가게명도 마음에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 작은 우리 방에서 qr일괄 확인이 아닌 굳이 번호를 하나하나 동그라미 치며 확인하니 4등이 두 개나 당첨되었다! 10만 원이나 벌었다. 대박이라는 말은 연달아 외치며 3평 남짓되는 작은 방 안에서 맥주를 들이켰다.

굳이 영주로의 주말여행은 그렇게 마무리되어, 아침 일찍 다시 청량리로 향하는 중이다.



굳이 영주를 가야해? 이번 주 내내 몽생이에게 한 말이었다. 일은 바쁘고, 마음도 여유롭지 못했다. 올해 내내 그렇듯 건강도 썩 좋지 못했다. 그냥 집에서 푹 자는게 훨씬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굳이 영주에 가서 더 능동적으로 쉬고, 에너지를 얻었다. 무엇보다 큰 깨달음도 얻었다.


덜어냄으로써 더 아름다워진다.


무량수전의 소박함이 보여준 아름다움, 전통가옥에서의 불편함이 주는 편안함. 화려하고 편안한 곳에서 살아가며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굳이 소박하게, 굳이 불편하게 살아가며 오히려 더 아름답고 편안할 수 있다.


굳이 영주로 떠난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 바쁜 일상과 무더운 날씨에 지쳐 건강을 잃어가던 나(우리)에게 준 깨달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면하지 않고 목소리 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