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서윤 Nov 18. 2021

쭈구리의 길

그런 날이 있다.

지난 시간이 너무나 치욕스러워 아침부터 밤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날.

요즘의 나는 그 치욕 속에 깊이 빠져 헤매고 있다. 

특별한 계기나 사건이 있었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아득해진다.

마치 허상과 싸우고 있는 듯한 느낌. 허상과 싸우는 것이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몇 해 전의 일이다. 코앞에 다가온 동생의 결혼식을 가네 마네 할 정도로 친동생과 사이가 심각하게 틀어진 기간이 2년 가까이 되었다.

누군가 무슨 일이 있냐고, 뭐 때문에 싸웠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텅 빈 정신으로 명분 없는 전투를 나 홀로 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러나 나는 안다. 동생과 나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원인과 자잘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단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쌓여 결혼식을 가네 마네 했던 것이었다.


지금의 나를 치욕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내가 해왔던 언행들, 나의 모자란 태도, 사람들의 시선, 나의 부족함을 인지한 순간들.

수많은 바늘들이 모여 여기저기서 나를 찌르고 있다.


내 친구는 나의 모자람을 알 때가 어른이 된 순간이라고 한다.

또 누군가는 나이가 들면 그 모든 것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덤덤해지는 순간이 온다고 한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어리게 살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나의 치욕에 덤덤해질 수 있다면 어른이 되는 길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더 예쁜 아이와 덜 예쁜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