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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윤 May 22. 2021

다음 삶이 있다면 좋을 텐데

보통의 사람이라 심장이 몽실몽실 해지는 새해가 되고 첫 출근일.

흔치 않은 맑은 하늘에 익숙하게 하이패스를 통과하고 아무 생각 없이 도로 위를 달린다.

뇌를 거치지 않고 자연스레 좌측으로 끼어들어 신호를 기다리면 전방에 점점 좁아지는 길이 보인다.

한국사 퀴즈에 피식피식 웃게 되는 라디오를 듣다 분위기전환할 겸 평소 즐겨 듣는 음악을 재생한다.

간혹 후렴구도 따라 부르며 신호를 몇 번 더 기다리면 이제 회사까지 얼마 안 남았다.

좁은 골목을 들어가 넘실넘실 과속방지턱을 타고 지나가자 학교 앞 서행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운전을 시작한 이래로,

아니, 운전을 하기 전부터 두려워하던 사건을 마주하고 말았다.

고양이 로드킬.

처참한 현장에 얼른 시선을 피했지만 순간적으로 보이는 사이드 미러 너머의 핏자국이 잔상처럼 머릿속에 남아 떠나지 않는다.

회사까지 도착하는 그 5분 남짓 한 시간 내내 어두워진 생각을 정리해봤다.

사실 나는 너무나 많은 과거에 이 순간을 그려왔다.

‘운전을 하다 로드킬을 발견하면 어쩌지.’

‘만약 내가 교통사고를 내면 어쩌지.’

‘내가 지나가는 응급차를 피해 주지 못하면 어쩌지.’

‘음주운전 차량을 마주치면 어쩌지.’


그래 이 상황은 그동안 그려왔던 상황 중 하나이다.

때문에 두려웠지만 다시 침착해질 수 있었다.


회사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사고가 있던 주변 거리를 떠올리며 120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여기 어디에 위치한 어디로 가는 방향에 1차선 도로인데요,

고양이 로드킬 신고하려 하는데요, 네. 감사합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마주한 맑은 하늘 아래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덤덤하게 신고한 날이었다.

방금 신고한 그 고양이는 이날의 새벽이 아닌 1월 1일의 그 순간 어두컴컴한 좁은 골목 위에서 차게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새해 소원을 채 빌기 전이라 명복이 아닌 소원이라 해야겠다.

그 고양이에게 진정 다음 삶이 주어진다면 이토록 허무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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