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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윤 Jul 28. 2021

언니, 왜 그랬어요

언니, 왜 그랬어요.

새내기 때였다.

당시 나보다 4살 많은 동기 언니 한 명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서윤아, 화장 좀 하고 다녀.”

“서윤아, 옷 도 좀 잘 입고 다녀.”

“서윤아 힐 좀 신고 다녀.”

“서윤아…”


나보다 4살 많은 언니는 당시 너무나 어른처럼 보였고, 그 언니의 지속적인 재촉에 대학생은 그래야 하는지 알았다.

어느 날은 파우치 가득 화장품을 챙겨 와 화장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눈 화장을 직접 해주는 정성까지 보였다.

그 후로 동기 언니의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 매일같이 뷰러에 마스카라, 립에는 틴트를 바르며

오전, 오후 수업 상관없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힐을 신고 물집 잡힌 발을 질질 끌며 강의실을 찾아다니곤 했다.

그러나 매일같이 그 언니를 마주치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마주친 언니는 기껏해야

“어, 서윤이 왔어?”

가 관심의 전부였다.


또 언젠가는 학교, 친구들, 가족 간의 속상한 일들이 쌓여 반항을 한답시고 핸드폰을 끄고 일주일 동안 잠수를 탄 적이 있다.

하루하루 날짜를 세 가며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을 때 핸드폰 전원을 켜봤다.


‘이 정도면 나를 걱정하는 친구들의 연락이 꽤나 와있겠지?’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하지?’

‘아픈 척을 해볼까?’

‘동기들한테도 부재중 전화 한 통 즘은 와있을 거야.’


설레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들고 기다렸지만 재부팅 후에 울리는 알림은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통신사 광고 문자 1개.

아모레퍼시픽 광고 문자 1개.

오히려 평소보다 광고 문자도 덜 온 셈이다.


일전의 속상함보다는 광고 문자 2개가 나에게는 더 큰 수모와 창피, 상처가 되었다.

그나마 교훈이라 할 것은, 아무도 모르고 지나친 나의 잠수로 인해 다시는 살아가며 관종 짓은 하지 않으리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언니, 그때 왜 나에게 꾸미고 다니라 했어요.

친구들아, 왜 일주일 동안 나에게 연락 한 번 없었니.


이따위 말을 해 무슨 소용인가.

사실, 사람들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덕분에 요즘은 이 불행 아닌 불행을 치트키로 활용하고 다닌다.


이상한 머리를 하고,

이상한 신발을 신고,

이상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

잠시 딴소리 좀 하겠습니다.

아시는 분들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올봄까지 브런치에서 <어느 장 씨와 어느 이 씨가 만나>라는 제목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저의 이야기입니다.

이 글이 최근 목수책방이라는 출판사에서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렇게나 오픈된 공간에 글을 쓰면서도 누가 관심이나 가져줄까 싶었습니다.

마치 비밀 SNS 계정에 글을 쓰는 기분이었달까요.


간혹 공감해 주시는 답글을 발견할 때면 두근거리는 마음에 어찌 답을 달아야 하나 설레발을 치며 글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한참을 붙들어맸습니다.

그러다 이런 표현 저런 표현 덜어내다 보면 성의 없기 그지없는 ‘감사합니다.’만 남아버려,

끝내는 가만히 있자 싶어 지금까지도 먹통, 불통의 글 주인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저의 글을 저만큼이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셨나 봅니다.

어느 장 씨와 어느 이 씨가 만나 꼬마 장 씨 셋이 태어나 자라고, 막내 장 씨가 결혼을 한 시점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하늘색 체크 표지가 더해진 예쁜 책을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조잡스러운 저의 글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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