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서울병이래, 그것도 말기."
-서울병 말기입니다.
컴퓨터를 가만히 보던 의사가 말했다.
음성의 높낮이도 없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나는 그 병을 그저 이마에 난 여드름쯤으로 생각했다.
-근데… 서울병이 뭐죠?
내가 묻기도 전에, 마치 수백 번 같은 질문을 받아온 사람처럼 의사는 바로 대답했다.
-서울병은 서울을 어떤 이유로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 생기는 심각한 우울감입니다.
하긴, 나는 지금 동거를 이유로 서울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우울한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이게 말이죠.
의사는 이제야 시선을 나에게 돌리며 말을 이었다.
-다들 떠나기 전까지는 몰라요. 하지만 떠나고 나서야 서울에서 누렸던 것들이 생각나면서 큰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환자분은 지금 서울을 떠나면 큰일 납니다.
-네? 큰일까지요?
의사는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려보였다.
서울병 환자의 증상: 잦은 회상, 불면, 공허감, 자기부정, 관계 회피.
낯익은 단어들이었다. 가만, 이건 원래 예전부터 느끼던 감정 아니었나?
-서울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에요. 사람들은 그곳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면서 살아왔거든요. 서울을 떠난다는 건, 그 정체성을 한 번 벗는 일이에요.
서울의 중요성을 알리는 서울의 의사.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창밖을 보았다.
복잡한 거리에 버스가 지나가고, 신호등이 바뀌고, 누군가가 배달 오토바이를 몰고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 평범한 풍경들이 갑자기 너무 서울 같아서, 그게 또 이상하게 서글펐다.
갑자기 나는 그를 사랑하지만, 확신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집으로 가는 일, 함께 살아보는 일, 잘할 수 있을까?
나는 진단서를 반으로 접어 가방에 넣었다.
병원 문을 나서니 햇살이 유난히 눈부셨다.
회색이라 생각했던 서울의 하늘은 푸르고, 뜨거웠다.
-나 서울병이래. 그것도 말기.
그는 의사에게 들었던 설명을 전해 듣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병은 앓아야 낫는 거잖아?
-응, 그렇지.
그는 갑자기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 웃음을 보며 따라 웃었다.
그래, 저 웃음이 날 낫게 할 거야.
서울병이든, 사랑이든, 결국 앓아봐야 낫는 거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