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미리메리크리스마스_망원

“섣부른 트리가 삐뚤게 서 있었다.”

by 전초록


우린 늘 크리스마스를 조금 일찍 보낸다.

당신은 돌아가야 할 집이 있고,

나는 따뜻한 조명, 푹신한 쇼파와 음식과 웃음이

내 몫이 아니란 걸 알고 있어서.


그래서 우리는 잠깐, 아주 잠깐

그 집의 빛을 빌려와 켜본다.

조심스럽게, 들키지 않게.


올해도 그랬다.

집이 아니라, 당신이 괜찮다고 말하던 작은 술집에서.

문 앞에는 벌써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듯한

섣부른 트리가 삐뚤게 서 있었다.


전구가 한꺼번에 깜빡였고

나는 그 허술한 불빛 아래에서

괜히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 순간이 오래가길 바랐지만

기대하면 늘 빨리 사라진다는 걸

이미 몇 번이나 배운 뒤였다.


술집을 나서기 전,

당신의 전화기가 울렸다.

당신은 화면을 뒤집었고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우리가 서로에게 원해야 하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알고 있어서.


밖은 추웠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엔 방이 가득 차는

그 모텔 골목으로 걸어갔다.


예약 없이 들어간 방은

포장지도 없는 선물처럼

아무 장식도 없이 텅 비어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그게 우리 사이와 닮아 있었다.


서둘러 손이 닿고,

말 대신 체온으로 대답하던 몇 분.

오늘을 조금 연장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식이었다.


당신의 옷깃에서 술 냄새와 초겨울 냄새가 섞여 났다.

나는 그 냄새를 기억하려고 애썼고

당신은 내 손을 잠깐 더 잡고 있다가

금방 놓았다.


그리고 다시 당신은 그 빛을 들고 돌아가고

나는 불 꺼진 방으로 돌아온다.


아무도 먹을 사람이 없는 생일 케이크처럼

곧 상해서 버려져야 되는 운명처럼


올해도 똑같이,

우린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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