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피해자(문동은)가 여러 번 죽으려고 시도하다가 (살려고) 복수라는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이루고, 이루었으니 다시 죽으려고 하다가, 다시 목표를 세워서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다시 세운 목표는 타인(주여정)의 목표였다. 삶의 동기가 될 만큼 중요한 타인, 즉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표를 이뤄주기 위해 자살을 멈춘 주인공은 사랑이 동기인 삶을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 옆 자신의 목표도 이어가기로 한다. 가해자들로 인해 끊겼던 목표 : 건축학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므로 드라마는 해피엔딩이었다. 가해자들이 합당한 벌을 받아서가 아니라, 상실했던 자기 삶을 다시 찾았으니.
복수의 끝은 용서라는, 가해자가 만든 공식을 피해자에게 가르치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복수의 끝은 공허라는 공식은 따르는 작품이었다. 나는 그 공식이 옳은지 그른지 모른다. 복수에 성공해본 적이 없다.
피해를 입은 적은 있지만 복수를 행한 적은 없다. 혼자 가라앉히는 편이었다. "용서하면 평안해진다" 류의, 가해자들이 쓴 책을 읽으며 나를 달래려니 감정의 결들이 온통 꼬여버렸다. 내장이든 감정이든 꼬이면 아프다. 가해자가 입힌 상처가 아픈 건 둘째 치고, 당한 내가 멍청해서 멍청해, 멍청해, 스스로를 할퀴면, 할퀴인 상처가 또 아프고 더 아프고 더 오래 아팠다. 남에게 입은 상처와 나에게 입은 상처는 시너지를 일으켰다. [더 글로리]를 보면서, 남에게 입은 상처가 더 크면 문동은처럼 행동하고, 나에게 입은 상처가 더 크면 김경란처럼 행동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문동은은 김경란에게 말한다. 그 체육관에 더는 서 있지 마.
김경란의 가해자들이 다시는 체육관에 들어올 수 없도록 문동은이 쫓아냈으니 체육관은 이제 안전하다. 하지만 그곳은 당하던 시간들이, 당하기만 했던 김경란 본인에 대한 혐오들이 웅웅 울리는 공간이다.
문동은은 김경란에게 말한다. 그 체육관에 더는 서 있지 마.김경란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체육관이 아닌 곳에 서면 된다.불가능하다 싶도록 어려울 거다. PTSD는 평생 갈지 모른다. 김경란의 뇌는 자꾸 익숙한 곳이 편한 곳이라는 착각을 유도하며 체육관으로 들어가자고 할 것이다. 그러니 김경란은 체육관보다 익숙한 곳을 만들어야 한다.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체육관 밖, 걸어도 걸어도 계속 드러나는, 무한하도록 뻗어 있는 면적만큼, 충분히 가능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