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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Aug 16. 2022

하고 있는 일이 재밌는 사람이 어딨나요?

네, 그게 바로 접니다.

회의가 끝나고, 다음 회의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우연히 두 회의가 모두 겹치는 사람이 있었다. 두 번째 회의는 직접 주재하다 보니, 그에게 회의 장소에 어떻게 이동하시냐 물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신다기에 내 차로 함께 가자고 이야기했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정적의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팀장님은 하시는 일이 잘 맞으세요? 재밌나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답했다. "저는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재밌는걸요? 재밌어서 하는 거예요." 그는 그래 보인다고 이야기하며, 어떻게 일이 재밌을 수 있냐며 놀랐다. 그는 하는 일이 재미가 없다고 했고, 하고 싶은 일 자체가 없다며 하고 싶은 일을 얼른 찾겠다고 말했다. 논쟁하고 싶지 않아서 굳이 거기에 반박하지 않았지만, '재밌는 일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하고 싶은 또는 재밌는 일이, 자신이 하고 있는 또는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것과 불일치할 뿐이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기 싫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책을 읽으며 몰랐던 지식을 새롭게 아는 것을 좋아한다. 때로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마치 지식인이 되는 느낌을 받아서 그 자체를 좋아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지식을 아는 것과 지식인이 되는 느낌을 받는 것은 직업, 즉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나는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과연 없는 사람일까?

세상일이 다 그런 거야.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이 어딨어?
돈 벌어서 가족 먹여 살리는 것처럼,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


꽤나 사회경험을 했다는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단순히 버티라는 말. 돈이 많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영국 황실의 엘리자베드 여왕도, 부산역 앞에 매일 술 드시는 노숙자도, 사회복지 일을 하는 나도, 하루가 24시간인 것은 같다. 돈이 많다거나, 권력을 가지는 등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는 있어도 25시간, 아니 단 1분을 더 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세상을 사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과 내가 하는 일을 버티고 버텨 견디고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1/3의 시간을 즐겁고 하고 싶은 일로 채우며 사는 것. 나는 여기서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2/3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휴일을 제외하고, 생각해 보면 1/3은 잠자는 데 쓴다. 1/3은 일하는 시간이고, 1/3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만약 후자의 삶을 택한다면, 내 삶의 1/3은 잠을 자고, 1/3은 하기 싫은 일을 해서 돈을 벌고, 1/3만이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노년기나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아동기, 휴일 등의 변수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변수가 있기에 제외한다.


1/3은 내게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충전의 시간으로 쓰고, 2/3의 시간을 내가 행복해지는 데 쓰는 삶이 더 좋다. 이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운 것은 어떻게 내게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 벌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아닐까?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라는 비현실적 이야기는 삼가고자 한다. 대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1/3의 시간을 돈벌이 수단과 연결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내 취미가 단순히 넷플릭스나 예능을 보는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냥 보는 것에서 끝나선 안된다. 넷플릭스와 예능과 같은 프로그램을 내가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서 PD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또는 보고 평론을 써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브런치나 블로그 등에 올리다 보면 문화 평론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과 재밌는 일과 하는 일이 연결된다.


나는 낮에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사회를 바꾸는 일을 하고, 밤에는 일상의 경험들을 에세이로 써서 사회를 바꾸는 일을 한다. 때론 그림을 그려서 내가 가지는 감정을 세상에 내보이기도 한다. 나는 때론 사회복지사였다가, 에세이스트였다가, 화가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고 싶고 재밌는 일을 돈 벌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용기를 갖고 도전할 때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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