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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Sep 05. 2022

'누칼협', '각자도생'이 관통하는 사회

사회복지사를 그만두는 친구를 보며

주변에 사회복지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니, 늘 많았는데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뿐일까? 전공 살려서 일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고 하지만, 대학을 함께 다니며 전공을 같이 한 친구 중 유일하게 한 명만 사회복지사로 근무해왔다. 이제는 그마저 떠나갔다. 대게 사회복지 일을 그만두고는 공무원 준비를 하거나, 자영업 또는 현장직 등 전공과는 무관한 일들에 뛰어들고는 한다. 그도 현장직으로의 미래를 선택했다.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이나 현실을 알아 적극 말리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결국 사회복지사를 포기했다. 그는 몇 번의 이직을 하며, 계속 하향되는 삶에 염증을 느끼며 이번에는 다른 삶을 찾았다. 함께 전공했던 친구 중에, 그 누구보다 꾸준히 사회복지사로서 일을 잘 해내리라 생각했건만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더 이상 말릴 수 없게 되자, 나는 마지막 설득의 카드로 그를 비난하고 조롱했다. "와이프 보기 부끄럽지 않냐?", "비 오는 데 밖에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니도 알제? 니가 선택한 거고, 후회하지 마라". 어떻게든 말리고 싶었지만, 결국 최악의 수를 두었으면서도 말리지 못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복지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몇 안 되는 타인을 위해 고민하는 일이다. 남들과 경쟁해서 내 파이를 키우기보다는 파이를 어떻게 하면 함께 나눠 먹을지에 대한 일이다. 비록 대기업에 비해 근무환경이나 노동에 의한 임금은 열악하지만, 일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성장시키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선한 영향력이나 공동체성보다는 자본, 즉 돈과 같은 유형 자산이 우선되는 사회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자본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님은 인류가 지나온 역사의 무수한 사례를 통해 증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의(ism)'와 같이 끝나는 이데올로기는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이를테면 자본주의가 활발히 전개되면 그로 인한 부작용들이 발생하며, 다시 사회주의가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식이다. 그렇기에 자본주의가 우선시되는 사회임에도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고유하다.


누칼협 : 누가 칼 들고 협박함?

최근 '누칼협'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데,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신조어가 아닌가 싶다. 개인이 선택했으니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이슈가 되는 주식, 부동산 등 투자와 관련해서 더 활발하게 쓰인다. 청년층의 영끌(영혼을 끌어모으다) 투자에 대해서도 비난이 많다. 개인의 선택은 책임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청년이 영끌 투자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 또한 선택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보아야 한다. 단순히 결과나 현상만을 놓고 이야기해서는 개인의 책임이니, 사회에서 개입이 필요 없다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회를 변화해서 소속된 개인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나의 사회복지사로서의 소명은 아직 견고하지 못한 듯하다. 친구의 퇴사 고민에 했던 이야기들을 보면 말이다. 나는 친구에게 '누칼협' 또는 '각자도생'해야 한다 내몰았던 것과 다름없다. 그뿐 아닌 구성원 모두가 사회 보호 아래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사회의 변화를 꾀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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