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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Sep 20. 2022

평생을 청년으로 사는 방법

늦은 밤,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전화의 목적은 청년 관련 사회단체 활동을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였다. 내가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해 준 것 자체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생각해 보고 다시 통화하자는 이야기를 나누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평소에 청년에 관심이 많다 생각했고, 나아가 청년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활동에 대한 고민을 하기 전, '청년'이라는 존재에 대해 먼저 고민해야 했다.


청년은 어떤 부류일까? 우선 나는 청년일까. 청년(靑年)의 사전적 정의는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20~30대의 기준은 청년 관련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행정적인 개념이다. 한자어에서도 알 수 있듯 '청년'은 푸른 나이에 있는 사람인데, 이는 마치 새벽에 내린 비로 풀 내음을 한껏 머금은 숲과 같다. 수분을 섭취해서 성장의 동력으로 삼음과 동시에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주변 식물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숲의 식물들이 다양하듯 개성 넘치는 또는 개성 넘치고자 하는 그런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청년이라는 부류를 숫자에 불과한 나이로 분류하는 것이 의미 있을까? 신체적 노화,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햇수는 청년을 분류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청년'이라는 부류는 변화에 대한 가능성과 의지,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신적 성숙과 같은 요인으로 분류할 필요가 있다. 기성세대가 이미 선점하여 유리한 사회구조 속에서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디뎌야 하는 청년들은 불편함과 불균형, 불합리함 등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는 존재여야 한다.


청년이라는 부류를 분류하고 정의하는 것은 그들만의 특징을 파악해 그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서 청년은 개인의 이익만을 쫓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회 전체의 이익을 고민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명확히 구분해서 사회의 이익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 사회의 이익이 우선시 되며 목적이어야 한다. 청년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응당 그러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청년을 분류할 수 있는 요인들이 달라진다면, 청년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또한 달라질 것이다. 소위 마흔 살이 되어 불혹, 쉰 살이 되어 지천명이 되더라도 청년일 수 있다. 반대로 스무 살에도 청년이 아니고, 그저 성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청년이라는 분류 앞에 나이는 사라지고, 변화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성숙이 남는다.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은 적어도 퇴직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청년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인 듯하다. 모든 사회복지사가 청년은 아닐 수 있겠지만, 다른 직종에 비해 청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다시 말해,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은 청년으로 오랫동안 사는 삶일지도 모른다. 먼저 이 길을 묵묵히 걸어오며 청년으로 살아온 선배님들처럼, 나 또한 청년으로서 앞으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민감하고, 반응하고, 고민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다짐한다. 나는 청년 사회복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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