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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Aug 19. 2022

제가 빚어낸 사회복지사로서의 소명은요

변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한다. 누구에게든

전화를 하기 위해 밖으로 잠시 나왔다. 통화를 하다 잠깐 멈춰 선 복지관 차량을 봤다. 그 차량은 모닝이라는 경차인데, 다섯 명까지 탈 수 있다. 그런데 유독 불편한 자세로 뒷좌석 문 쪽에 바짝 붙어 있는 사람이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복지사 선생님이었다. 짐이 많았는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데다 옆자리에는 복지관을 이용하시는 주민분이 타셨고, 그분을 배려하기 위해 몸을 마구 구겨 넣은 선생님의 자세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 선생님의 상황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도 같았을까? 나 또한 사회복지사지만, 하는 일의 특성상 주민분들이나 복지시설의 이용자분들과는 직접 대면할 일이 잘 없다. 중간관리자 이상의 사회복지사들을 만나거나 이전 직장에서는 기업의 임직원들을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사회복지사이지만, 주민들과 호흡하기보다는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과 호흡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민분들과 살닿으며 호흡하는 상황을 직접 보며 내가 가지는 사회복지사로서의 소명이 무엇인지 생각해야만 했다.


내게 특별한 사회복지사로서의 소명이 있어서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던 나는,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반년 만에 찾게 된 일은 뮤지컬 배우였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서울의 차디찬 밤을 견뎌야 했다. 예대에 편입하기 위해 복학한 나는 믿고 따르던 선배의 권유에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 심장을 쿵쾅쿵쾅 뛰게 하지는 않지만, 자그마한 두근거림을 느끼고는 세계긴급구호사 쪽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을 때쯤, 이번에는 후배의 권유로 '사회 공헌' 관련된 분야에 입사를 지원하게 되었고 그게 사회복지사로서의 첫걸음이었다.


졸업식도 가지 않았기에 '사회복지사 선서'조차 해본 적 없는 나는, 늦었지만 이제 와서 소명에 대해 되묻는다. 이전 직장에서 배웠던 사업과 행정업무의 규칙, 사람들과 관계하는 기술, 업무를 진행하며 놓쳐서는 안 되는 가치 등의 경험이 헛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직장의 비전이나 미션과 같은 가치에 대한 고민이 아닌 스스로 지켜나갈 가치와 내게 부여된 책임의식에 대한 고민이다.


'나'라는 사람은 꼭 직업만으로 대변되지 않는다. 30대 성인, 남성, 강아지와 함께 사는 반려인 등 다양한 역할이 내게 부여된다. 그중에서도 하루의 1/3의 시간을 보내는 직업에 대한 스스로의 소명의식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업무환경에서 갈등의 상황이 발생하거나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할 때 기관의 비전과 미션의 가치를 선택의 준거로 삼듯, 직장 입/퇴사뿐 아니라 업무 외의 상황과 시간에서도 '사회복지사'로서의 행동거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명확해지면, 부여된 임무나 일을 대충 할 수 없다. 어떻게든 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하기에 더 많은 성과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가능성만 높아질 뿐 아니라 책임의식에 의해 실패하더라도 응당해야 하는 것을 알기에 계속된 도전이 이어져 결국에는 성공하기 마련이다. 좋은 성과는 금전적 보상과 같은 물질적인 것과 더불어 자존감 상승과 같은 심리적 만족감도 동반한다.


그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작은 행위에 나는 어렴풋이 갖고 있던 내 중심을 명확하게 빚어냈다. "변화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한다. 누구에게든" 이것이 내가 빚어낸 사회복지사로서의 소명이다. 나 또한 그처럼 다른 사람에게 소명의식을 갖게 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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