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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Nov 10. 2022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복지관 안에 장난감 도서관이 있다. 그곳은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대여하여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돕고, 나아가 자원의 무분별한 소비를 막아 환경파괴를 막는 역할도 한다. 장난감 도서관은 장난감 대여뿐만 아니라 실내 미끄럼틀이나 트램펄린과 같은 놀이 기구도 있어서, 아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는 공간 또한 제공한다.


나는 한 아이가 장난감 도서관으로 신이 난 듯 달려가는 것을 지켜봤다. 그 아이는 스크린 도어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뒤를 돌아봤다. 엄마가 뒤따라오는 도서관 선생님을 보자, 선생님은 먼저 들어가도 된다 말했다. 그제야 아이는 장난감 도서관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 아이는 고작 2~3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였다.


그저 멀리서 지켜본 것이 전부이기에 2~3살 밖에 안된 아이가 어디까지 이해하고 행동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아이는 엄마 또는 선생님의 허락을 기다린 듯했다. 아이가 똑똑하다고 칭찬해야 하나? 자기중심적 생각을 해야 할 나이에 사회의 규칙이나 질서와 같은 것을 이른 시기에 깨우쳤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해야 할까?


나는 늘 외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는 각자가 가지는 고유의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아이의 상황을 대입해 보면, 아이는 앞으로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이 될 것이기에 사회 규칙과 질서를 빨리 이해한 것은 박수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럼에도 행위를 보며 고민되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가치를 선택함에 있어 마치 절대적 진리를 토대로 판단하는 듯하지만, 때론 진리가 진리로써 작용하지 않을 때가 많다. 모든 명제는 상황이 가지는 특수성 앞에 보편적이기 힘들다. 예를 들면 상황을 판단하는 데 있어 '가치'는 내비게이션 같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분명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가면 최소한의 시간을 담보할 것이 분명함에도, 내가 아는 길이 더 빠를 것이란 착각에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 대개 내가 고집해서 간 길은 느리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길이 빠르다. 비록 내 '가치'가 틀렸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곤 한다.


아이가 도서관 앞에서 기다리는 장면을 보고 고민했던 것은 '내가 평소 생각해왔던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책임에 대한 가치'와 '영유아기 때만 가지는 포근하고도 하얀 순수함에 대한 기대'가 충돌해서였지 않을까? 물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이에게 선택해 달라고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을 보고 내 삶의 내비게이션을 조절해 볼 수 있다.


삶에서 내비게이션은 계속해서 수정할 필요가 있다. 실제 내비게이션 또한 실시간 반영으로 끊임없이 최적의 길을 찾는다. 절대 진리라 생각했던 것이 언제나 바뀔 수 있음을, 틀렸을 수 있음을, 사라질 수 있음을 언제나 견지해야 한다. 내 고집대로, 내가 아는 것만, 자주 해왔던 선택만 반복하면 더 이상 좋은 길로 내 삶을 주행해 나갈 수 없다. 비록 초행길일지라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가치의 선택지를 넓혀야지만 오늘과 같이 아이가 내게 준 귀한 선물을 또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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