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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Nov 08. 2022

쿨하지 못해 미안해

단풍은 떨어졌지만, 나는 악착같이 매달려있으려고 한다.

날이 쌀쌀해지며 가을이 찾아와서 기분 좋았던 것도 잠시, 곧 겨울로 넘어갔다. 이상기후는 겨울을 가만둘 리 없었다. 며칠 만에 다시 여름이 오더니, 다시 겨울이 오기를 반복한다. 가을은 사라졌다. 이상기후에 나무들도 어색했는지 스쳐 지나가는 가을을 받아들여 단풍으로 물들인 나무가 있는가 하면, 초록 잎을 뽐내며 아직은 여름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나무도 많았다.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거리를 걷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는 나처럼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어?


겨울에 나뭇가지 속에 싹을 감추고 있다가, 봄에 그 싹을 틔우고, 여름에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서, 가을에 떠날 준비 하듯 스스로 색을 바꾸고 미련 없이 떠난다. 그것도 매년. 나는 매일을, 매월을, 매년을 단풍잎처럼 미련 없이 떠나보내고 있나? 앞으로는 그러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면 하루라도 더 매달려 있고자 있는 힘을 쥐어짜서 악착같이 매달려 있고자 했을까?


술에 만취한 날이 아닌 날에는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본다. 내 하루는 얼마나 악착같이 살았을까? 다시 말해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내 하루를 얼마나 밀도 있게 살았을까? 요즘은 밀도 있는 삶을 살지 못했던 듯하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일에서 의욕과 동력을 잃었다. 일과 삶의 경계는 무너졌고, 삶에서 마저 의욕을 잃었다. 매일을 쉼의 연속으로 도망갔다. 지금이라면 오히려 미련 없이 떨어지는 단풍잎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난 쿨하게 미련 없이 떠나지 못해.
끝까지 질척거리는 놈이거든.


단풍처럼 난 무언가를 미련 없이 떠나는 존재가 아니다. 내가 만약 나뭇잎이었다면 색도 바꾸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질척거리며 매달렸을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오히려 악착같이 매달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을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발버둥을 쳐보고자 한다. 전략적으로 사회 변화를 위한 행동을 고민하자고 다짐했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 ⓒ 2010. UV. All right reserved.

다시금 내가 마주한 현실을 직시해 보면, 마치 변화된 사회에서 일하려고 했던 듯하다.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겠다 제시했던 청사진은 온데간데없고, 이상적인 사회가 현실이 아님에 도망치고자 했다. 현실을 이상적으로 바꾸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난 단풍이 되지 않고, 그 단계를 건너뛰어 푸른 나뭇잎에서 곧바로 파릇한 새싹이 되어야만 한다. 떨어지는 단풍은 역설적으로 악착같이 매달려있도록 하는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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