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용 Jul 25. 2023

에어컨을 켜면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장마가 지속되면서 집에 들어찬 습기는 벽지를 울게 했다. 덥고 습한 여름이지만 나는 에어컨을 틀지 않았고, 찬 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는 선풍기를 틀고 침대에 누웠다. '이 정도면 충분히 견딜만하네 뭐'.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에어컨을 거의 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몸에는 에어컨을 켜는 것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학습된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초등학생 때 백일장과 포스터 그리기 주제로 항상 나왔었던 '프레온 가스로 인한 환경오염'과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어컨은 무슨'이라며 혀를 차는 어른들 잔소리 십팔번으로 익숙한 '전기세 폭탄'으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어렸을 때부터 에어컨은 켜는 것이 아니라 구경하는 것에 가까웠다. 맨 처음 에어컨을 구경했던 것은 아버지 차에서였다. 중고차로 샀던 현대의 '엘란트라'에 에어컨 기능은 있었지만, 쓸 수가 없었다. 자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에어컨이 고장 났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유는 다음 중고차를 샀을 때, 이제는 에어컨을 켤 수 있다고 아버지가 내게 자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에어컨이 작동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아빠의 '엘란트라'는 항상 창문을 열고 달렸다.

ⓒ Delaney Van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다음은 학교 교실에서 에어컨을 구경했다. 초등학생 때는 확실히 없었고, 중학교 때는 에어컨을 교실에 설치한다며 공사를 했던 것 같다. 따라서 여름에는 창가 옆이면서도 중간 정도에 있는 자리가 좋았다. 교실을 딱 절반으로 나눴을 때 양쪽 중간 벽에 선풍기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선풍기 밑에는 위아래로 긴 거울이 달려 있었다. 수업 시간에 몰래 만화책을 보다가 거울에 비쳐서 선생님에게 걸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 만화는 포기할지언정 한 여름에 선풍기 바람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 자리는 선풍기 바람과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바람의 더블 역세권이었던 데다, 큰 창문을 통해 내리쬐는 직사광선도 벽에 가로막혀서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었기에 더욱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가서야 제대로 작동되는 천장형 에어컨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에어컨은 작동하지 않았다. 지금은 교실에 어떤 방식으로 에어컨이 작동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에어컨을 틀어주는 날은 '폭염 주의보' 등 에어컨을 켤 수 있는 기준이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에어컨은 교무실에서 중앙 냉방 시스템으로 켜고 껐다. 대부분은 꺼져있었지만, 에어컨이 켜지는 것과 동시에 전교생이 환호를 지르는 것을 보며 우리는 같은 학교 학생이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선생님도 속으로는 우리와 함께 환호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체육 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텅 빈 교실에서도, 홀로 에어컨이 작동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 유용원의 군사세계. All right reserved.

군대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보직은 '소형차량운전병'이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꿀 보직이라 불리는 임무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다. '레토나'라는 차량에는 에어컨이 없다. 겨울에 히터는 켤 수 있었지만, 여름에 에어컨은 작동하지 않았다. 일명 검은색 '호루'(천으로 만들어진 덮개)는 한 여름 뜨거운 태양의 힘을 모조리 받은 뒤, 온전히 내게 전달했다. 차에 달려있는 창문은 단단하지 않았고, 심지어 가방이나 바지에 쓰는 지퍼로 여닫는 구조라서 비가 오면 물이 새기 십상이었다. 젖은 천과 비가 새는 창문은 더운 데다 습하기까지 하다.


내무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강원도 최전방에 위치한 동해안 유일의 'K-9 자주포'를 운용하는 곳이라 보급품도 잘 나오는 편이었고, 새로 지어진 깨끗한 막사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생활공간에는 당연히 에어컨 따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천장에 달려있는 선풍기로 여름을 나야 했다. 종종 선풍기에 날개 없이 머리만 회전하며 시늉하는 선풍기도 간혹 있었다. 또한 군인들은 언제든지 용모단정해야 한다며 엄마처럼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행정보급관도 평소라면 우리를 다그쳤겠지만, 여름에는 활동복 반바지에 국방색 민 소매만 입고 돌아다녀도 혼내지 않았다. 그렇게 무섭기만 하던 행정보급관과도 초록색 고무 호수만 있다면 등목을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전우가 되었다.


이렇게 자라온 탓에 나는 에어컨을 켜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마치 프레온 가스가 내 머리 위의 대기권을 뒤덮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뉴스에서 본 것처럼 전기세가 수십 만 원 나올 것이라 생각했고, 에어컨을 켜고 주행 중인 차는 마치 도로에 기름을 뿌리며 다니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에어컨은 삶을 도와주는 도구라기보다 유용하고 필요하지만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두려운 존재였다.


물론 사무실에 다른 사람들이 있거나, 내 차에 다른 사람들이 타면 나도 에어컨을 켤 줄 안다. 다만 사람들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에어컨을 끄게 된다. 최대한 공간에 남아있는 냉기를 즐기다가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면, 그제야 창문을 연다. 에어컨을 그저 구경만 하면서 살아왔기에 참고 견디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다. 돌아보면 어렸을 때의 성장 환경이 내게 인내심을 가르쳤던 것 같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인내심을 강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제는 에어컨 전기 효율이 개선돼서 온종일, 그리고 한 달 내내 켜지 않는 이상에 엄청난 고지서를 받지 않을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어렸을 때의 성장 환경은, 성인이 되었을 때 삶의 가치관과 방식을 설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에어컨을 켜지 않고 구경만 하면서 자란 나는 환경 보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학교나 군대에서 반 강제로 길러냈던 인내심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도록 했고, 선택의 순간에서 가치 판단을 해야 할 때 오로지 내 편의에만 따르지 않을 수 있었다.

ⓒ Caleb Woods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확실히 에어컨은 내게 두려움의 존재였다. 아마 두려움을 심어주는 데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아무래도 금전적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배운 삶의 방식은 오히려 금전적으로 책정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 에어컨을 켜서 그 순간에 내 삶의 윤택함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에어컨을 켜지 않음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삶의 방식이니 말이다.


누군가는 구두쇠나 삶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삶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방식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 물론 생활에 쾌적함은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추구하는 삶을 살아감에 따른 만족감이 더 크다. 그래서 이제는 알 수 있다. 에어컨을 켜도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켜지 않음으로 인해서 더 큰일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트레이더스 치킨을 다시는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