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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Sep 22. 2023

아빠, 백화점 가는 데 크록스는 좀 아니잖아요.

내 자격지심을 아빠에게 투영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가기를 원하는 아빠와 정시에 딱 맞춰 도착하는 것을 원하는 아들이 처음으로 백화점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물론 우리 둘의 의도라기보다 동생네 가족이 백화점으로 장소를 선정한 덕분이었다. 11시 30분이 약속 시간이었고, 백화점까지는 우리 집에서 차를 타고 10분이면 도착 가능하다. 100일 잔치 이후, 오랜만에 보게 되는 조카와의 만남이 신나서였을까. 11시에 출발하자고 주장하는 아빠의 이야기를 못 이기는 척 따르기로 했다. 차가 여러 대 움직일 필요 없으니, 아빠가 집으로 데리러 오기로 했다.


나는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일어나 토요일 루틴인 집안 청소와 빨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와 약속했던 시간보다도 10분이나 늦었다. 왜냐하면 장마 기간이라 실내 건조를 하게 되면 빨래에서 냄새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얼른 빨래방에 가서 건조기를 돌려야 했고, 이왕 건조기를 돌리게 된 참에 이불 빨래도 했다. 결국 건조기 돌린 세탁물을 정리하고 나니 10분이 늦었다. 심지어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기 위해 맞춘 나와의 약속조차 더 일찍 도착한 아빠는 10시 50분부터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10분밖에 안 늦었지만, 의도치 않게 20분이나 기다리게 한 죄인으로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차를 향해 달려가며 생각했다. 아빠한테 변명을 늘어놓아서 아예 말문을 막을까, 11시라고 했으면서 왜 10시 50분부터 와서 20분이나 기다리면서 사람을 미안하게 하냐며 쏘아붙여야 할까, 능청스레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뗄까 등 몇 가지 전략을 구상했다. 그러나 차에서 기다리다가 심심했는지 밖에 나와있는 아빠를 보면서 나는 구상했던 전략에 없었던 말을 뱉어야만 했다.

문제의 하얀 크록스

"아빠, 백화점에 가는데 크록스가 뭐꼬?". 하얀 반 소매 셔츠에 남색 슬랙스, 심지어 그 복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아저씨들 전매특허인 파란색 등산용 조끼까지는 그래도 이해한다. 그런데 하얀 반 소매 셔츠보다 더 새 하얀 크록스는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제수씨도 이제는 어엿한 우리 가족이 되었지만, 우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물놀이 갈 때나 편하게 신는 크록스를 신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장소도 주말 저녁이면 아빠랑 둘이서 항상 가는 돼지 국밥집이 아니라, 무려 백화점인데 말이다.


"왜? 바람도 잘 통하고 편하기만 하고만". 그때부터 내가 10분이나 늦은 것은 하등 중요치 않아 졌고, 아빠가 크록스를 신고 백화점 가는 것에 대한 핀잔이 이어졌다. 나는 평소라면 주말에 절대 입지 않았을 셔츠도 입고, 면도도 말끔히 하고 나섰기 때문이었을까. 백화점에 아빠랑 밥 먹으러 처음 가는 데, 심지어 제수씨도 오는 데 크록스는 웬 말이냐며 속상함에 울분을 백화점 가는 내내 토로했다.

ⓒ Mostafa Meraji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하지만 내 울분이 무안하도록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아빠의 크록스와 함께한 점심 식사가 끝나고, 백화점 옥상의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백화점 지하 식당에서부터 옥상에 있는 카페까지 아빠의 크록스는 백화점을 이리저리도 누비고 다녔다.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워서 나는 크록스를 신은 아빠한테 막걸리를 한 잔 하러 가자고 했다. 사실 나는 평생을 고되게 목수 일만 해 왔던 아버지에게 더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는 열망에 항상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아빠가 종종 집에서 혼자 마시는 싸구려 막걸리 말고, 프리미엄 막걸리를 파는 곳에 데려갔다.


'역시 크록스에는 막걸리가 어울리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막걸리 집에 들어갔다. 웃긴 사실은 막걸리 집에 입장하면서부터 나는 더 이상 아빠의 새 하얀 크록스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막걸리도 와인처럼 향이 중요한 술이라서 와인 잔이나 전용 잔으로 따라 마시면 사발이나 밥그릇보다 더욱 향이 잘 피어오른다. 그곳은 프리미엄 막걸리 전문점답게, 직원들의 응대와 막걸리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백화점 직원들처럼 격식 있고 친절하며 상세한 설명도 함께였다. 실제로 백화점에서 먹은 점심보다, 이후에 먹은 막걸리가 더 비쌌다.


이 사실은 나를 혼란케 했다. 평균적으로 한 병에 이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막걸리가 즐비한 이곳은 아침부터 울분에 차 있던 내 기준에 따르면 크록스와 어울리지 않아야만 했던 것이다. 막걸리는 전통적으로 만백성의 술이기에 언제나 편하게 신을 수 있는 크록스와 어울려야 할까, 아니면 한 병에 이천 원이 아닌 이만 원이나 하는 고급 제품이라서 백화점에 가까울까. 어느 것 하나에 어울린다고 치더라도 아침에 터뜨렸던 내 울분은 정당하지 못한 것이었다. 제품의 높은 가격이나 쾌적한 공간, 그곳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의 특성과 옷차림, 직원의 서비스 등으로 아빠의 크록스를 판단했던 내 기준의 하찮은 경계가 순간 와르르하고 무너졌다.

ⓒ  Freestocks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아빠한테 토로했던 울분이 사실 내 자격지심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옷차림에서 시간과 장소는 중요하다. 그러나 백화점을 제 집 드나들듯이 가는 사람들은 감히 추측컨대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백화점도 동네에 있는 슈퍼들처럼 크록스를 신고 가는 것이 하등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크록스를 신고 백화점 가는 것이 실제 문제였다면, 아마 입구에 있는 안내자가 입장 자체를 막아섰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평소에 백화점을 자주 가보지 않아서, 더군다나 점심만을 먹으러 백화점에 가본 적이 없어서, 내 복장이 백화점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눈에 띄게 달라 혹시 이목을 끌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자격지심이었다. 백화점에 판매하고 있는 제품과 서비스가 고급스럽고 내 기준에서는 비싼 데다가 판매하는 점원의 격식 있는 복장과 응대에, 내 모습이 아닌 거추장스럽고 거짓된 모습으로 감추려 했던 듯하다.


심지어 나는 못난 내 자격지심을 혼자 삼키는 것도 모자라서 아빠한테 투영했다. 마치 아빠가 나인 양, 아빠를 내 멋대로 평가하고, 나에게 쏟아냈어야 하는 자격지심을 아빠에게 전달하고, 아빠를 울분의 제물로 삼았다. 실제로 바뀌어야 했던 것은 나였는데 말이다. 자격지심을 극복하기 위해 일부러 크록스를 신고, 면도를 하지 않고서 백화점에 갈 이유는 없다. 하지만 온전히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나니 외모나 겉치레로 아빠나 다른 상대를 바라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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