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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Aug 21. 2023

사회복지사는 제주를 이렇게 여행합니다.

제주 공항을 뒤로한 채, 출구에서 나오면 나를 처음 맞이하는 것은 항상 야자수였다.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만 해도 동남아시아나 하와이 등의 휴양지를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주에서 처음으로 야자수를 보면서 무척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공항에서 나를 맞이하는 야자수를 보며 내가 제주에 왔음을 실감하곤 한다. 야자수를 보면 즐거웠던 제주의 첫 여행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도 하고, 공항에서부터 여행지로 가는 길을 따라 심어진 야자수를 볼 때면 나를 또 다른 경험으로 이끄는 것만 같다.


야자수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 빠르게 월정리로 이동했다. 아침 일찍 월정리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햇살이 눈 부셔 선글라스를 착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시선을 강하게 이끄는 것이 있었다. 하와이안 셔츠와 서핑보드 등을 파는 가게였다. 무채색의 화강암 돌담들은 색색이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와 서핑보드를 더욱더 돋보이게 했다. 라오스에 갔을 때, 샀던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있어서 그냥 지나쳤다. 가게에 들어가면, 내게 필요하지도 않은 하와이안 셔츠를 제주 여행 기념이랍시고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 번이고 다시 시선을 빼앗겼다. 지속가능성을 되새기며 해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Kelly of Pexels. All right reserved.

숙소는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했다. 나는 여행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 속에서는 루틴대로 살아가기에 낯선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과 가치관, 관심사 등을 이야기하며 다름을 마주하는 것은 내게 두근거리는 경험이 된다. 특히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는 레게 콘셉트로 운영되고 있었다. 레게의 본 고장 자메이카를 상징하는 빨강, 노랑, 초록 삼색은 따뜻하면서도 푸른 제주도의 색감과도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레게 특유의 느리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은 여유로운 제주도를 만끽하도록 했다. 그렇게 평소에 즐겨 듣지 않던 레게 음악과 평소에 마주칠 일 없었던 사람들과의 조화로운 여행이 끝났다.


여행 일정을 마치고, 이번 제주 방문의 목적인 워크숍 장소에 갔다. 전국 단위 워크숍을 제주도에서 개최했고 맨 첫 순서인 식전 공연을 기다렸다. 하와이안 셔츠를 맞춰 입은 혼성의 7인 밴드가 무대에 올랐다. 진행자는 그들을 제주도 대표 밴드라고 소개했고, 트럼펫과 드럼, 퍼커션, 색소폰, 베이스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레게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줬다. 물론 노래 가사만큼은 제주어였다.


밴드 이름인 '사우스 카니발'처럼 행사장은 공연 시작과 함께 순식간에 축제가 되었다. 레게 특유의 리듬감은 사람들을 들썩이도록 했다. 곳곳에 레게 음악이 생소한 사람도 있어 보였지만, 그 분위기를 즐기는 것에 하등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 많은 동료 직원들 중에서 나는 유일하게 공연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듯하다. 아마 화면에 나와있는 제주어 번역을 보지 않고서 그 노래를 들었다면, 내가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하와이의 주민들이 하는 전통 공연이라고 속이더라도 나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레게 음악이 하와이 전통 음악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제주도를 대표하는 음악이라고도 볼 수 없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밴드가 들려준 음악에서는 '제주어' 말고 어느 것 하나 제주만의 정체성을 찾기 어려웠다. 안내자의 멘트였던 '제주도를 대표하는'이 공연 내도록 마음에 걸렸다. 제주답다는 것, 즉 제주도만이 가지는 지역성이 궁금해졌다. 내가 공연에 흠뻑 빠지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헤맸던 이유다.

ⓒ Insung Yoon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제주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레게' 문화를 콘셉트로 한 게스트 하우스와 하와이안 셔츠, 열대 지역에서만 자라는 야자수 등에 나는 강렬한 인상을 느꼈다. 돌하르방이나 한라봉, 천혜향 같은 감귤은 제주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내게 다가오는 느낌은 앞선 언급했던 것보다 인위적인 것에 더 가까웠다. 제주도 공공 기관의 캐릭터나 홍보물 등에서 많이 봐온 탓에 너무도 당연하게 인식되거나, 오히려 식상하거나 진부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제주답다고 이야기되는 것과 제주도와 잘 어울린다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꽤 다르게 느껴진다.


이를 마찬가지로 내가 사는 부산에 대입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부산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은 해운대와 광안리 같이 짙은 푸른색 바다와 그 못지않게 강렬한 사투리를 많이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부산에서 바다가 위치한 지역은 단순 크기를 놓고 비교해 봐도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심지어 누아르 영화에서처럼 사투리 억양도 많이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예전에 비할 바가 못된다. 또한 사회가 고령화되어 가는 것과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떠나는 도시를 떠 올릴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이미 드러난 현상이지 다른 지역과의 차이를 바탕으로 드러난 정체성인 '지역성'을 설명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지역성'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다른 시대 또는 다른 공간의 사람과는 다르다고 느끼는 특성이다. 문화나 공동체 의식 등이 포함되는 정체성이다. 시간을 기준으로 보자면 현재는 '부산'이겠지만, 조금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의 '동래현',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와 통일 신라', 삼한 중 '진한'의 그 어느 지역이었을 것이다. 지역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시대 사람들이 향유하는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한국사람 하면 빨간 김치를 떠올리지만, 우리가 쉬이 떠올리는 빨간색의 김치는 최근에서야 먹기 시작했던 것처럼 말이다.

ⓒ 죽어도 자이언츠 of 국제신문, 구구필름. All right reserved.

하물며 동시대라 하더라도 그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에 따라서도 다른 정체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야구'라는 운동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롯데 자이언츠'라는 팀이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것을 부산 사람들이면 아는 것처럼 말이다. 때론 내 삶과 야구는 하등 관계가 없지만, 지고 있다는 사실에 친구들과 함께 분하다고 느끼는 공동체 의식도 포함된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대구에서는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역성은 이렇게 부산사람이라면 특별한 노력 없이도 가지게 되는 공동체 의식이나 문화다.


그래서 내게 '제주도를 대표하는'이라고 스쳐 지나갔던 안내자의 수식어가 워크숍 내내 맴돌았다. 인위적인 지역성 말고, 그 지역만이 공유하는 공동체 의식과 정체성을 찾기 위해 헤매야 한다고 안내자가 내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제주도와 레게, 하와이안 셔츠, 야자수 등은 전혀 관련 없다고만 느껴졌다. 하지만 나에게 제주는 바쁘기보다는 여유롭고, 정형화된 삶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것을 즐기는 삶이 어울리는 곳이다. 가령 화강암이나 귤, 돌하르방처럼 물질적인 상징보다 레게의 자유로움과 하와이안 셔츠의 즐거움, 야자수의 빠름보다는 느림을 권하는 것 같은 느낌이 오히려 지역의 정체성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시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지역성'은 사회복지사에게 부지런히 찾아 나서고 만들어가야만 할 무언가가 된다. 사회복지라는 실천 학문에서 지역성은 복지 서비스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좋은 준거가 된다. 또한 기획된 사업을 진행하는 단계에서는 활용 도구가 되고, 기획과 실행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평가할 때는 측정 도구가 된다. 지역성을 주민들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서,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애정과 소속감을 갖게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야자수들은 다시 나를 맞았다. 이번에는 한층 제주스러움을 풍기면서 말이다. 제주의 지역성을 온전히 느끼도록 해준 레게 문화와 하와이안 셔츠, 야자수를 보며 부산의 지역성을 고민한다. 내게 있어서 여행은 단순히 쉼에서 끝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삶과 다양한 문화, 다른 삶의 방식이 마구 뒤섞이는 시간들이다. 풀 수 없을 정도로 엉켜버렸지만, 풀고 싶지 않은 무언가다. 뒤섞임을 바탕으로 부산의 지역성을 풀어가는 것을 고민한다. 사회복지사는 제주를 이렇게 여행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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