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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Jun 15. 2023

하기 싫은 일일수록, 적극적으로 합니다.

나는 미용실에 가기 전, 항상 머리를 감고 미용실에 간다. 단 1분이라도 시간 허비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예약한 시간을 딱 맞춰서 미용실에 도착한다. 다만 이렇게 준비하다 보면 예약 시간보다 늦는 경우가 있는데, 혹여나 늦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머리는 감고 간다. 머리를 말리지 못하고 미용실에 갈 때도 있지만, 머리를 감지 않고 가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밥 먹고 이를 닦는 것이 상쾌함을 느끼도록 하는 행위지만, 어렸을 때 내게 양치는 불쾌함을 유발하는 행동이었다. 매일을, 그것도 하루에 세 번씩이나 해야 되는 이 닦기는 할 때마다 스트레스였다. 더 가관인 것은 따로 있었다. 학교 가기 전에 머리 감는 것은 고사하고, 세수조차 고양이 세수를 했다. 고양이 세수 목표는 누구나 그렇듯이, 눈곱 때는 정도와 세수를 했다는 인식 정도면 충분했다.

ⓒ 한사랑산악회 of 피식대학. All right reserved.

아빠가 세수할 때, 종종 내 속에 있던 장난꾸러기가 나왔다. 내가 아빠 옆에서 흉내 내며 '어푸어푸'하고 소리 내며 장난쳤던 것이, 아마도 혼자서 씻었던 것 중에는 가장 깨끗했을 때였다. 돌아보면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씻는 행위를 정말이지 싫어했다. 왜 싫어했는지, 또 언제부터 싫어했는지는 알 수 없다. 반대로 언제부터 씻는 행위를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도 전혀 모르겠다.


나는 근처 살던 이모 집에 놀러 가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엄마는 오죽했으면 이 사실을 이용해서 내가 스스로 씻게 만들 정도였다. 이모 집에는 또래의 사촌 형과 누나가 있었고, 그들은 나랑 잘 놀았다. 심지어 우리 집에 없는 컴퓨터 게임도 많았다. 따라서 이모 집에 놀러 가고 싶으면 나는 세수와 양치를 해서라도 엄마에게 내가 이모 집에 놀러 갈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만 했다. 만약 씻지 않는다면 엄마는 나를 이모 집에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귀여운 협박을 했다. 아마 내가 혼자서 씻지 않았다고 해도, 엄마는 나를 집에 혼자 두고 갈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있었기에 고작 하기싫음 따위에서 파생된 씻기로 이모집에 놀러가지 않을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은 하지 않았다.


평소에 세수도 고양이 세수를 했었으니, 양치도 당연히 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아마 칫솔을 몇 번 왔다 갔다 하고는 입을 헹궈 냈던 것 같다. 엄마는 양치를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이모 집에서 오래 놀다 올 거라고 나를 원격 조정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나는 억겁의 시간 동안 양치질을 해야만 했다. 이를 닦는 시간 동안은 이모 집에 가서 신나게 놀 생각에 설레는 마음과 무엇을 하고 놀게 될지 궁금한 호기심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 Ludemeula Fernandes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이처럼 씻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던 내게 나름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평소에는 엄마를 따라서 동네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갔다. 그런데 머리를 잘라야 하는 시점과 때를 밀어야 하는 시점이 겹치는 날이 있다. 그날은 목욕탕 안에 있는 작은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다. 목욕탕 이발소는 홀딱 벗은 채로 '미용 커트보'를 두른다. 이 경험도 꽤나 신선하지만, 내게 충격적인 일은 나체에 두르는 미용 커트보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그 작은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기 위해 모든 옷을 홀딱 벗었다. 그리고는 나체로 그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내게 이발을 하기 전에 목욕실에 들어가서 머리를 감고 나오라고 했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를 감고 와서 이발을 하면, 자르다가 떨어진 머리카락들이 목과 귀 안 곳곳에 숨어있어서 또다시 머리를 감아야만 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말했다. "재용아, 네가 하기 싫은 일은 남들도 하기 싫어. 감지 않은 남의 머리를 네가 만지기 싫듯, 이발사 아저씨도 감지 않은 네 머리를 만지기 싫어해." 나는 머리를 감고 와서, 이발을 했다. 그리고 다시 목욕을 했다.


그 순간은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할 만큼 내게 충격이 컸다. 내가 귀찮다고 생각하거나 하기 싫다고 미뤄놨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고민해야 했다. 내 귀찮음은 타인의 싫음에 우선될 수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내 행동의 목적이 다른 사람의 안녕을 바라는 이타적인 삶과는 다르다. 반대로 나만의 이익을 바라는 이기심과도 다르다. 나는 당연히 이기적이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안녕까지 충족할 필요는 없을 수 있다. 이 적당하고 애매한 것은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나는 그때 이후로 미용실 갈 때뿐 아니라, 항상 이 '적당하고 애매한 기준'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가령 복지관 행사로 얼마 전에 마을 축제를 했다.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가 도시락과 함께 버려져 있거나 분리되지 않은 채 방치된 쓰레기를 발견하면, 나는 음식물 처리나 분리배출과 같이 남들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이것은 나를 위한 이기심이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안녕을 위한 행동도 아니다. 그저 내가 하기 싫은 일들은 남들도 하기 싫어할 것이 분명해서,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오히려 주도적으로 나선다.

ⓒ Jesse Orrico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그러나 먼저 나서서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으면, 남들과 같은 시간을 고생하더라도 결국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내 고생을 격려하고,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이지만 선뜻 나서서 하는 내 모습에 오히려 리더십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했던 행동들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들도 하기 싫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혹시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하겠지.'라고 생각하면 나는 하기 싫은 것을 피해 도망 다녀야만 한다.


그러나 모두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 나는 하기 싫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내가 이제껏 지켜봐 온 아빠는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도 묵묵히 하는 사람이었다. 아마 아빠는 내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타인에게 누가 되지 않는 삶의 방식을,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이끌리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나도 하기 싫은 일일수록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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