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배려하지 않았던 것은 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by 김재용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 보면 무작정 내게로 돌진해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참 멀리서부터 손을 허공에 휘저으면서 저리 비키라는 수신호를 강압적으로 보내며 다가오기도 하고, 강아지가 대소변을 보고 있어 잠시 강아지 곁에 서 있으면 나를 손으로 밀치고 가는 경우도 있고, 내게 충분히 들릴 정도의 육성으로 육두문자를 내뱉고 가기도 한다. 나와 우리 강아지는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던 것일까. 그저 걷고, 조금 서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아마 나를 밀치고 가거나 욕하고 간 사람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라는 것은 화를 내는 사람도, 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도 둘 다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아주 약간만 몸을 돌려서 상대를 피해 걸어가면 서로가 기분 상하지 않을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물론 대부분은 내가 먼저 피해 가지만, 강아지가 그곳에 냄새를 꼭 맡겠다고 땅에 바짝 붙어 가는 포복 자세까지 취하면 정말이지 난감한 상황이 된다.

강아지근육.jpg 복슬복슬 털 속에 무시무시한 근육을 숨김

이를테면 억지로 목줄을 잡아당겨 상대를 피해 가면 누군가는 내가 강아지를 학대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우리 집 강아지는 하루에 두 번 규칙적인 산책으로 인해 힘도 좋은 편이다. 강아지가 마음먹고 가겠다 떼쓰는 상황에 상대가 다가오기라도 하면 내가 줄을 당겨 강아지를 못 살게 구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종종 내게 강아지 목줄을 억지로 당기냐고 꾸짖는 사람도 간혹 있다. 나는 혹시나 상대가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일까 봐 걱정해 상대를 배려한 것뿐인데 말이다.


반면에 강아지가 천방지축 활개 치도록 내버려 두면, 나는 우리 강아지만을 생각한 나머지 사람 간의 지켜야 할 매너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된다. 우리나라 인구 25% 이상은 동물과 함께 살 정도로 동물이 친숙한 존재가 되었지만, 바꿔 말하자면 아직 75%는 동물을 싫어하거나 무서워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런 상황에 강아지와 상대, 타인의 시선까지 신경 써야 한다.

BBSIMAGE_20221115013037_665d8643b7986a83515bf29b6ddc7861.png ⓒ 개는 훌륭하다 of KBS. All right reserved.

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나는 자주 직면한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대부분 상대를 피해 가거나 기다렸다 걸어간다. 나는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서 노력할 만큼 노력했다 생각하지만, 이 배려에도 불구하고 종종 내게 화내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상대방을 이해하기 힘이 들 때가 있다. 이때부터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내가 어려 보여서 내게 말과 행동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무조건 상대방에게 길을 터줬어야 했나, 그것도 아니라면 단지 내가 만만해 보였던 것일까.


오늘도 산책하다가 마주한 상대의 '화'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에 출근했다. 차가운 커피를 한 잔 벌컥벌컥 마시자 금방 소변이 마려웠다. 복지관 1층에는 노인주간보호센터가 있다. 따라서 1층 화장실은 어르신도 많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나는 1층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었는데, 밖에서부터 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변 칸을 볼 수 없는 구조에서 소변을 보고 있었지만, 생생한 소리로 대변 칸의 모든 상황들을 알 수 있었다.

giorgio-trovato-XatMS2NXIpo-unsplash.jpg ⓒ Giorgio Trovato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소리로 추측하건대 거동이 불편해서 보폭이 좁았고, 따라서 짧은 간격으로 '총총' 걸음의 실내화 끄는 소리가 났다. 실내화 소리가 멈추자 문이 천천히 열렸고, 다시 실내화 끄는 소리가 났다. 그 뒤에는 어르신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하... 아고고고고, 휴~". 이제야 착석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큰 한숨으로 미루어 보건대 자리에 착석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대변을 보는 중에도 신음과 한숨 섞인 목소리들이 반복해서 들려왔다. 나는 소변을 다 보고 손을 씻으며 생각했다.


내게 매 순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혹은 나이에 따라서는 쉽지 않은 일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대소변 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면, 나는 삶의 모든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했다. 나는 다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당장 걷는 것이 힘들다면, 내가 상대를 배려하는 걷기를 할 수 있을까. 그때 내게 멀리서부터 비키라면서 손을 휘젓던, 때로는 욕까지 하면서 지나갔던, 나를 밀치고 갔던 수많은 어르신들이 떠올랐다.


물론 모든 어르신들이 나를 밀쳤거나 욕하고 갔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그 기억을 잘 떠올려 보면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는 큰길이 아니라, 누구나 산책할 수 있는 공원에서 유독 이런 일들이 많았다. 어르신들이 많은 곳이다. 시간을 보내는 데 있어 돈이 들지 않고, 간단히 운동도 할 수 있는 데다, 사람 구경도 할 수 있고, 오래 머무른다고 해서 눈치 주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그곳은 실내에 설치되어 있는 안전 바 등의 보행 도구들 없이, 온전히 혼자 걸어내야 하는 공간이다.

bruno-martins--c9N9RgjOPU-unsplash.jpg ⓒ Bruno Martins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어르신들이 무료함을 달래러, 바깥바람을 쐬러, 또는 친구를 만나러 나와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동을 할 때, 내가 그곳을 막고 멈춰 서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몸을 돌려서 한 발자국만 비켜나가면 지나갈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상대를 배려하는 걷기가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신체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다. 가령 내가 축구하다 다리를 다쳐 절뚝이며 걸을 때, 내가 절뚝이는 것을 보고 상대가 배려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을 수 있다.


그저 걷고, 조금 서 있는 것이 내 기준이었음을 이제 안다. 내 기준이 아니라 상대 입장에서 이해하려 들수록, 배려의 정도와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 미루어보건대 배려는 상대를 위하는 마음보다 이해하는 것이 효과적인 듯하다. 내가 강아지와 산책에서 혹시나 상대가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사람일까 한 쪽으로 걷도록 했던 것은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상대가 불편함을 이해하고, 멈춰 선 곳을 막지 않고 강아지와 비켜주는 것이 이해를 바탕으로 상대를 깊이 배려하는 것일 수 있다. 모든 공간에 보행 약자를 위한 도구가 설치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때로는 배려를 나누도록 하는 것이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만드는 더 좋은 도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