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3박 4일 제주도 여행을 가기 전에 가장 고민이었던 것은 다름 아닌 강아지였다. 강아지를 여행에 데려갈 수 없으니, 누군가에게 혹은 어딘가에 강아지를 맡겨야 했다. 나는 비가 오지 않으면 강아지와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한다. 하지만 강아지를 전용 호텔에다 맡기더라도 산책은 안 해준다. 그 무엇보다도 산책을 좋아하는 강아지라, 내가 여행을 가면 며칠씩이나 산책을 나가지 못하게 만들어서 미안함이 크다. 물론 호텔에 맡기면 평소에는 오히려 자주 하지 못했던 다른 강아지와 마음껏 뛰어노는 시간이 있지만 말이다. 강아지와 함께 살 때까지만이라도 여행을 자주 가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부득이 여행을 가게 되면 강아지를 맡기는 것에 고민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강아지와 함께하는 여행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제주도뿐 아니라, 유럽이나 동남아 등 세계의 곳곳을 함께 여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아지가 비행기를 타려면 비행시간 내도록 케이지라는 철제로 제작된 공간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집 강아지는 케이지에 들어가 본 적도 없는 데다가, 수하물에 다른 짐들과 함께 보낸다고 하니 그것도 못 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진작에 포기했다. 수하물 적재 공간에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 했지만, 어두운 공간에서 몇 시간 동안 홀로 낑낑대며 울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 제주도를 가는지 모를 테니까 말이다. 강아지를 생각하니 수하물에 부치는 것은 도저히 선택할 수 없었다.
물론 강아지와 제주 여행을 가지 못했던 것은 함께하고자 하는 의지 부족이 원인 일 수도 있다. 사실 우리 집 강아지는 4.5Kg이라서 케이지에 얌전히만 있을 수 있다면, 기내에도 탑승이 가능하다. 꼭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으면, 케이지에 적응하는 연습을 해서라도 비행기 기내에 태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강아지와 함께 떠나는 제주도 여행에 있어 내 의지는 '함께 여행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나, '순간 이동이 가능하다면'이라는 헛된 소망이나, '한참 무더운 여름에 제주도를 산책 다니면 강아지도 힘들 거야'라는 정도의 감상에서 그쳤다. 그리고는 스스로 합리화했다. '제주도에 데려가더라도, 제주도 인지도 모를 텐데 굳이'.
아마 강아지와 함께하는 여행에 의지가 부족했던 것은 이제껏 다녀왔던 자동차 여행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집에서는 간식이나 산책보다도 선호의 순위가 떨어지는 나지만, 밖에서는 친구에게 잠시 맡기고 혼자 화장실 다녀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차에서 나를 찾으며 울부짖는다. 그때를 떠올리면 강아지와 함께하는 여행을 허락해 줬던 친구들에게도 미안함이 저절로 솟구친다. 제주도에 데려갈까 고민하지만, 그때의 기억을 떠 올리며 다시 합리화했다. '제주도에 함께 갔다 와도 강아지는 기억조차 하지 못할 거야'.
그런데 최근에 아는 사람이 강아지와 함께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내가 했던 합리화의 과정들을 되새김질해야 했다. 강아지와 함께하는 여행 준비의 전부를 전해 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무척이나 힘들었다며 경험담을 들었을 때는 오히려 안도했다. 그의 여행에서 어떤 활기찬 여행 과정들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고됨을 겪지 않았음에 흡족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고난의 만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제주도 여행을 다녀와서 아버지와 동생, 제수씨와 밥을 먹었다. 동생네 가족들은 새해 시작과 동시에 태어난 갓난아기랑 다녀왔던 KTX 기차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조카가 벌써 기차를 타봤다는 사실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강아지랑 제주도에 다녀오는 것과 아직은 첫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랑 서울에 다녀오는 것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공간의 변화만 있었을 뿐, 그 대상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같기에, '굳이'라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다.
밥을 먹고 동생이 아기 때의 자신과 조카를 비교해 본다며 꺼내두고 갔던 사진첩을 보게 되었다. 그 사진에서 제주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곳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진이 찍혀 있었다. 내가 너무 어렸을 때라 가족 여행을 다녔던 기억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사진에는 짙은 감정이 남아 있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집안의 표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진 속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경험을 하도록 곳곳을 다니며 사랑으로 나를 키웠던 부모님의 모습과 이렇게까지 가까웠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일상을 함께했던 친척들과의 친밀함,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던 친구들과의 감정들도 사진에 온전히 남아있었다. 단지 기억하지 못했을 뿐이다.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서 나는 뒤늦게서야 알았다. 여행을 함께함에 있어서 상대가 여행을 기억할 수 있는지 보다는 그 여행 속에서 상대와 상호작용하는 감정들이 소중하다. 감정의 상호작용이 하나씩 쌓여 내가 현재 느끼는 부모님이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나를 사랑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내 기억의 유무는 상대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무뚝뚝해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했을 때부터 부모님이 나를 일관되게 사랑했음을 통해 느꼈던 깊은 안정감처럼 말이다.
더군다나 상대가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상대와 함께했던 시간과 감정은 내 속에 자리 잡을 것이다. 여행을 함께한다는 생각에 상대에게만 초점을 맞췄던 듯하다. 감정은 상대와 상호작용 속에서 더욱 화려하게 피어날 수 있지만, 기억은 나 혼자만 가지고 있더라도 내 안에서 은은하게 피어날 수 있다. 강아지가 제주도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제주도임을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은 것이었다. 내가 모든 것을 기억하며 힘들 때도, 그리울 때도, 함께 있을 때도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다. 따라서 이제껏 해왔던 내 다짐과 합리화는 초라하고 겸연쩍어질 수밖에 없었다.
비록 제주도의 에메랄드 빛으로 보이는 해수욕장에는 가지 못했지만, 우리 집 강아지가 제일 좋아하는 다대포 해수욕장에 함께 갔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강아지는 해수욕장에만 가면 마구 뜀박질을 시작한다. 뜀박질을 하려는 강아지와 함께 낮에는 해수욕장에 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다대포 밤바다는 사람도, 강아지도 많이 없어서 함께 뛰어놀기가 좋다. 강아지와 감정의 상호작용을 하나 더 쌓으며, 바다 여행의 기억을 또 하나 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