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으로 준 추로스를 우리 집 강아지는 한참 지킵니다.

치킨 먹을 때, 닭다리를 가장 먼저 먹어야 합니다.

by 김재용

우리 집 강아지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슬프게도 보호자인 내가 아니라 산책하는 것이다. 산책 나갈 때 착용하는 가슴줄을 집어드는 그 순간부터 간식을 비롯한 어떠한 유혹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문 앞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장마가 시작되며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꼬박꼬박 하던 산책이, 하루에 한 번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졌다. 강아지로 살아본 적이 없어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추측컨대 강아지는 장마 기간 동안 무지막지하게 스트레스가 쌓일 것이다. 따라서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 오지 못한 상태로 출근할 때는, 평소에 놓고 가는 간식보다 조금 더 오래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주고 집을 나선다.

camara-negra-H7E7SyNqiiQ-unsplash.jpg ⓒ Camara Negra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그 간식의 식감은 바삭하면서도 쫄깃하고, 시나몬 향이 날 때쯤이면 입안에 단맛이 도는 추로스처럼 생겼다. 생긴 것은 추로스지만, 일종의 강아지 껌이다. 이것은 사람이 먹는 것과 다르게, 매우 딱딱해서 성인 남성의 손으로 반을 쪼갤 수 없다. 강아지는 무쇠 망치같이 단단한 강아지용 추로스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은 모양이라서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곳에 강아지 치약을 뿌려두면, 딱딱한 껌을 먹으면서 자동으로 치석도 제거가 되고 스트레스도 해소가 되는 여러모로 강아지에게 좋은 간식이다.


비가 와서 아침 산책을 해 주지 못해 쌓인 스트레스를, 강아지가 이 껌으로나마 해소하길 바라는 마음에 두고 나간다. 그런데 우리 집 강아지는 이 추로스를 주고 가면, 그때부터 추로스를 지키는 파수꾼이 된다. 나는 단 한 번도 먹을 것을 줬다가 뺏은 적이 없는데, 강아지는 나로부터 추로스를 지키는 보디가드가 된다. 심지어는 퇴근해서 돌아왔는데, 먹지 않은 경우도 왕왕 있다. 혼자 집에 있을 때도 이것을 지키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돌아와서 근처만 가도 날렵하게 추로스를 입에 물고 도망가는 것을 보면 이를 지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fatty-corgi-g-Dui8tCdrI-unsplash.jpg ⓒ Fatty Corgi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추로스를 지킬 때는, 강아지의 모든 신경이 곤두서 있다. 누워서 자다가도 내가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서기만 하면, 강아지는 후다닥 추로스에게 달려간다. 나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사람이 먹는 추로스조차도 먹을 생각이 없다. 가령 내가 추로스를 좋아한다고 할지라도 그 단단한 강아지용 추로스를 씹을 수 있는 강한 턱도 없고, 먹는 것을 줬다가 빼앗는 극악 무도한 사람이 될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내 마음을 전혀 모르는 것 같은 우리 집 강아지는 추로스 옆에서 잠들지언정, 그것을 소중히 지키고 있다.


내가 빼앗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강아지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그 추로스를 피해서 움직여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근처에 어쩔 수 없이 지나가게 되면, 입에 물고 도망가기까지 한다. 차라리 자기 방석 근처로 가져가 주기라도 하면 좋겠건만, 항상 지나다니는 길목에 추로스를 두고 지킨다. 도저히 무슨 심보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온 신경을 집중하라고 줬던 추로스가 아닐 텐데 스트레스 해소는 커녕, 이쯤 되자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때론 추로스를 지키는 강아지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나도 누가 뺏아먹을까 종일 음식들을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맛있는 것은 아껴두다가 마지막에 먹는 편이다. 이를테면 치킨에 닭다리를 마지막에 먹는다거나, 컵라면에 들어있는 흰색 어묵(나루토마끼)을 면은 다 먹고서 국물과 함께 먹는다거나,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꿈에도 먹어보지도 못했을 임금님 수라상과 같이 12첩 밥상 한정식이 나오는 가게에 가게 되더라도 가장 맛있다고 생각되는 반찬은 마지막을 위해 아껴둔다. 특히 사람에 따라 개수가 맞춰져서 나온다면, 안심하고 무조건 마지막에 먹는다. 혹시나 오해할까 미리 말해두지만, 맛있는 음식으로 디저트처럼 입가심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내가 이렇게 맛있는 것을 마지막에 먹었던 이유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의 교훈을 몸소 실현했던 듯하다. 그 보호자에 그 반려견이라,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같은 것일까. 퍽퍽한 닭 가슴살을 먼저 먹으면서 지금은 퍽퍽함에 괴롭지만, 당장은 배고픔으로 인해 맛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쉬이 삼켜낼 수 있다고 스스로 합리화한다. 나중에 배가 부른 상태에서는 퍽퍽한 고통을 감내해내지 못할 나를 생각하며, 야들하고 쫄깃한 그럼에도 육즙이 팡팡 터지는 닭다리살을 마지막에 먹으면서 느낄 행복을 상상하며 굳건하게 참아낸다. 나는 햄버거는 4개 정도 먹어치우는 대식가로서 효과적으로 더 많은 음식을 먹기 위해 맛있는 것은 늘 마지막으로 미뤄왔다.

강아지추로스.jpg 강아지용 츄러스를 먹는 "끈끈이"

강아지는 추로스를 지키다, 어느 순간 결심이 섰는지 먹기 시작한다. 추로스를 먹는 시간은 지켜왔던 시간에 비해 무척이나 짧았다. 추로스를 지키며 참았던 고통만큼, 아껴먹음으로 인해 얻게 되는 행복의 폭발이 과연 그에게도 있었을까. 나는 강아지를 보면서 솔직히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잘 먹으면 금세 또 줄텐데, 아껴먹을 이유가 없는데'. 강아지가 추로스를 아껴먹는 것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고 생각을 바꿔야 했다. 나는 추로스 파수꾼인 우리 집 강아지처럼 행동하면 안 되겠다고 말이다.


당장 먹어치워야 한다. 닭다리가 가장 맛있을 때는, 감히 추측컨대 180도에 방금 튀겨내서 뜨거운 닭의 발목 부분을 잡지도 못할 때가 아닐까 싶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을 때, 마치 만화 주인공처럼 닭다리를 '앙'하고 물어뜯는다면 쾌감이 상대적으로 더 클 것이다. 현재의 즐거움을 느끼기보다 미래를 위해 포기하고 준비하는 삶을 살았던 내가, 현재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미래로 의탁하지 말자며 삶의 태도를 바꾼 것이 닭다리를 먼저 먹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기 위해 나는 닭다리를, 또 맛있는 것을 뒤로 미뤄두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