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강아지 '끈끈'이의 털을 밀었다. 강아지와 함께 살게 되면서 알레르기성 비염이 생겼기 때문인데, 한 계절에 한 번 정도는 털을 밀어준다. 털이 짧을 때는 전혀 빠지지 않지만, 털이 길어지고 계절이 바뀔 때면 털이 조금씩 온 집안에 날리기 때문에 바짝 털을 깎아준다. 자칫 시기를 놓쳐 미용실 예약이 늦어지게 되면, 비염을 넘어서 천식 증세로 이어져 며칠 정도는 잠에 들기 쉽지 않다.
끈끈이가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왜 털을 깎아야 하는지에 대해 앞에 앉혀놓고 한참을 설명한다. 물론 누워서 들어도 상관없지만, 코도 훌쩍여가며 혼신의 힘을 다해 설명해 본다. 끈끈이가 미용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지 않았음을 안다. 그렇다 해도 이러한 서로의 상호작용과 노력을 이해한다면 한 계절에 한 번 정도는 나를 위해 털 미는 것을 허락할 것 같다. 내가 끈끈이를 위해 코를 풀다 못해 헐도록 비염을 참아내듯이.
미용이 끈끈이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기에 최대한 미용의 횟수를 줄이려고 바짝 밀어주는 편인데, 사실 미용이나 이발이라기보다는 삭발에 가깝다. 이는 끈끈이와 함께 살기 위해서 서로가 최대한 양보한 결과다. 나는 끈끈이에게 미용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서 잠시 동안의 비염과 천식을 견디고, 끈끈이는 내 비염과 천식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마치 도비처럼 바싹 털을 깎는다.
도비가 된 끈끈이가 털을 깎고서 집에 돌아오면, 못 생겼다며 놀리기 바쁘다. '남자는 머리빨이고, 강아지는 털빨이었냐'며, 그토록 예쁜 모습은 다 어디 갔냐고 끈끈이에게 묻는다. 끈끈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사실 나도 끈끈이의 외모는 털이 있을 때가 훨씬 더 예쁘다고 생각한다. 못생겼다고 하더라도 사랑스럽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끈끈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예뻐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끈끈이의 나를 향한 적극적 스킨십과 나를 이해해 주는 듯한 눈빛, 서로가 신뢰하고 있다는 믿음, 갓난아기의 울음이 부모는 무엇 때문인지 그 목적을 알고 있듯이 척하면 척인 텔레파시, 내 생활을 존중해 주려는 마음과 배려 섞인 행동 등 끈끈이를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가 예쁜 외모 말고도 전부 기록할 수 없을 만큼 흘러 넘치기 때문이다. 전부 기록해야 한다 가정하면 오프라인에서는 종이 낭비, 온라인에서는 전기 낭비가 될 만큼, 수도 없이 그 매개체가 부족할 것이다.
아이고, 예쁘다~ (히히) 사랑해
못생겼음에도 어쩜 이렇게 예쁘냐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항상 끝맺음을 한다. 이 사랑의 말들은 언제 듣더라도 상대를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다. 강아지도 미용을 하고 나면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정확하게 스트레스 요인이 삭발로 옷을 벗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털이 사라짐에 따라 못생겨졌음으로부터 비롯한 수치심을 인지한 것이 아닐 수 있겠지만, 각종 스트레스 증상을 보이는 강아지가 많아 나도 더욱 끈끈이에게 사랑의 말들을 건네본다. 강아지도 우리와 같은 것을 느끼기에 정서적 회복도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시도해 보고자 한다. 이렇게 또 한 번의 미용이 끝이 났고, 나는 더욱 끈끈이를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