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을 상대에게 전가하고 있지는 않을까?

by 김재용

강아지와 저녁 산책을 나섰다. 산책 중에는 핸드폰을 보지 않고, 전방을 주시하며 최대한 강아지와의 산책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강아지를 위해서, 다른 강아지나 사람을 위해서, 때로는 나를 위해서. 하지만 오늘만큼은 핸드폰을 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늦었고, 맡은 일에 대해 연락하기로 했던 터라 산책과 동시에 전화도 하고 핸드폰의 자료도 보며 산책했다.


화면의 자료를 보며 걷다 전봇대 앞에서 강아지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기에 대변을 봤다 생각했고, 아이폰을 주머니에 넣고 강아지를 봤다. 우리 집 강아지 앞에는 프렌치 불도그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목줄이 없는 채로. 둘은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고, 혹시 강아지끼리 싸우게 되면 상대 강아지인 불도그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안돼, 저리 가...


놀란 나머지 일단 목줄을 잡아당겨 거리를 벌리고, 우리 집 강아지를 품에 안았다. 괴상하고 웃긴 이야기지만, 사실 나는 강아지가 무섭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 지르는 것뿐이었다. 내 절박한 외침이 불도그의 보호자에게 닿은 듯했다. 보호자는 급히 나와서 불도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아마 슈퍼마켓 가게 안에서 풀어두고 키우는 강아지인 듯했다.


강아지를 안고서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있는데, 상대 보호자가 불도그를 혼내는 듯했다. 유추해 보자면 '왜 집 밖에 멋대로 나갔는지' 아니었을까? 물론 상대 보호자도 적잖게 놀랐을 것이다. 가게 앞의 인도는 협소하고, 왕복 2차선이긴 하지만 차량 통행도 많아 위험할 수 있다. 갑자기 사라진 강아지에 대한 걱정과 혹여 위험한 차도에 나가진 않았을까에 대한 불안, 다른 강아지와 싸움 끝에 사고가 생기진 않았을까 하는 염려 등 다양한 감정이 순간 상대 보호자에게 휘몰아쳤지 않을까?


상황을 목격하면서 '혼나야 될 대상은 불도그가 아닌 상대 보호자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반려견이 목줄 없이 돌아다닐 수 있도록 방치했거나 혼자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가게에서 풀어두고 키우는 강아지라면 가게 밖으로 혼자서 나올 수 없도록 펜스와 같은 것이라도 설치했어야 했다. 모든 사람이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무서워하는 사람도 많다. 자칫하면 자신의 반려견뿐 아니라 다른 사람, 다른 강아지의 안전에도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상대 보호자만 혼나면 되는 걸까? 나 또한 마찬가지다. 강아지와 산책하며 위험요소가 곳곳에 있음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업무 연락을 핑계 삼아 산책에 집중하지 않았다. 내가 산책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처음 불도그와 조우했을 때부터 대처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번 해프닝에 오롯이 피해자인 척할 수 없다. 나에게도 위험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우리는 대개 강아지를 일방적인 훈육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사람이 정한 규칙에 따르지 않으면? 체벌하거나 혼낸다. 규칙에 순응하면? 칭찬한다. 이는 강아지와 보호자 간의 위계 차이에서 비롯된 현상이라 생각한다. 보호자가 잘못해도 그 책임은 강아지에게 전가할 수 있는 구조다. 내 잘못임을 알고 잘못을 상대에게 넘기지 않을 때, 비로소 강아지를 훈육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사는 존재로서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일방적인 강아지의 보호자이기보다는 함께 사는 존재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