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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Sep 14. 2023

꼰대도 철학이 있어야 될 수 있다.

나는 사회복지사로 삶을 지속한 지 어느덧 만으로 7년째다. 나이도 삼십 대 중반이 되어가다 보니까, 이제는 신규로 복지관에 들어오는 사회복지사 보다 중간 관리자 이상의 사회복지사와 대화가 더 잦다. 이들의 최대 화두는 '꼰대'다. 그들은 '요즘 이런 말 하면 꼰대라던데, 항상 조심해야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고, 또 노력한다. 그런데 나는 꼰대 그 자체가 나쁜 것만은 아니며, 꼰대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꼰대'의 정의는 '연령대와 상관없이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연장자 또는 윗사람'이다. 꼰대는 크게 두 가지로 범주화가 가능하다. 이미 꼰대가 되어버린 사람, 그리고 꼰대가 될까 걱정하는 사람이다. 다만 꼰대의 정의를 보았을 때, 꼰대가 될까 봐 걱정하는 사람은 이미 꼰대가 아니게 된다. 애초에 꼰대가 될까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권위주의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는, 권위주의에서 벗어나려 하는 성찰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꼰대가 화두였던 이유도 그들이 이미 꼰대여서 라기보다는, '자신은 인식도 하지 못한 채 꼰대가 되어버리면 어떻게 할까 걱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즉 스스로에 대한 점검을 꾸준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나는 그들에게 '혹여나 꼰대가 된다 해도 괜찮다.'라며 감히 이야기한다. 오히려 문제는 스스로가 꼰대인지 조차도 모르고 지내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권위주의적인 것 자체가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특출 난 능력의 리더와 권위주의적 환경의 결합은 오히려 목적한 바를 효과적으로 작동하도록 한다. 다만 인류의 수많은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특출 난 능력을 가진 리더는 많지 않았다. 따라서 개인의 능력보다 이를 견제하고 재차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활용해 사람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현재 사회인 듯하다. 미루어보건대 꼰대의 핵심은 권위주의적 성향 그 자체가 아니라 '연장자 또는 윗사람'이라는 대상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꼰대의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장자 또는 윗사람'과의 권력 불균형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이들은 가진 힘의 불균형을 활용해 상대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기 쉽다. 여기서 라떼가 등장한다. '이거는 내가 해봤는데 말이야.', '옛날 같았으면...'과 같은 본인 위주의 경험과 삶의 방식이 권위주의와 만나면, 상대에게 강요로 전달된다. "그냥 시키는 데로만 하세요". 내가 꼰대가 돼도 괜찮다 생각했던 것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점검하고, 오롯이 자신의 경험과 삶의 방식만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가치나 철학 없이 자신의 생각과 방식을 강요하기만 하는 것과 다르다.


모든 영역에서 그렇듯, 사회복지에서도 절대적으로 우선되어야 하는 가치들이 있다. 윗사람들의 경험과 삶의 방식보다도 주민들의 존엄성 보장, 사회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기회와 조건, 결과의 평등, 사회정의와 자기 결정권 보장 등이 그러하다. 때로는 경험의 차이로 인해서 하위 직급자가 보지 못하는 것을 관리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때도 있다. 따라서 이 가치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가령 꼰대가 된다 할지라도 동료 혹은 하위 직급자에게 피드백을 전달해야 한다. 경험을 기반으로 쌓은 철학을 권위 있게, 사회복지의 가치를 덧 붙여서 말이다.


이처럼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확고한 철학이 있어야 권위 있는 꼰대가 될 수 있다. 물론 가치 추구를 우선해야 하는 이유와 진정 우리의 가치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명확한 설명은 필요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당연히 상대가 알 것이라 추측하고 생략하다 보면, 어느샌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권위적이긴 하지만 권위라고 찾아볼 수 없는 꼰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권위주의적이기보다 권위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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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그저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왕처럼 보이는 거야". 최근에 봤던 미드 '베르사유'에서 루이 14세의 남동생인 필리프가 루이 14세에게 했던 말이다. 이미 왕의 자리에 올라있던 루이 14세지만, 왕으로 공식적인 임명을 받거나 스스로 왕이 되는 것 보다도 다른 사람들에게 왕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꼰대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내가 꼰대가 아님을 혼자 선언하거나 되뇌는 것보다 비록 꼰대가 될지언정 확고한 철학과 가치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사회복지적 권위 있음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복지적 권위 있음을 인정받은 꼰대는 스스로가 꼰대일 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나는 중간 관리자 이상의 사회복지사들에게 감히 이야기한다. "요즘 시대면 어때요? 사회복지의 철학과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 꼰대가 되는 것에 두려워하지 마세요". 권위 있는 '꼰대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추구해야 할 대상 일 것이다. 자신만의 철학 있는 꼰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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