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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Oct 12. 2023

도미노 피자를 먹는 여자와 트레이더스 피자를 먹는 남자

약속 시간 3시간 전,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한 그녀에게 카톡이 왔다. 추석 연휴를 맞아 서울에서 갑자기 친구가 내려왔는데, 오늘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했다. 혹시 약속을 미뤄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우리는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약속을 미루자고 말했다. 그녀는 미안했는지, 내게 피자를 사주겠다고 했다. 무려 도미노 피자를 말이다.


나는 브랜드 피자는 거의 먹어본 적이 없다. 특히나 내가 직접 돈 주고 사 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브랜드 피자가 저가형 피자보다 맛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게는 맛의 차이보다 양의 차이가 항상 크게 느껴졌었다. 내가 주로 먹었던 피자는 이마트나 트레이더스처럼 마트에서 파는 '특 대형' 사이즈의 피자였다. 간혹 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면 안주로 냉동 피자를 먹었다. 나는 그걸로도 충분했다.


심지어 나는 피자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한다. 피자는 토마토 맛이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특별한 재료가 없어도 케첩만 있으면 집에서 만들어먹기 쉽다. 특히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에 따라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진다. 감자나 닭 가슴살, 페퍼로니 살라미, 불고기, 칵테일 새우 등 메인으로 넣을 재료를 생각하고 어울릴 만한 것들을 함께 올리기만 하면 된다.

ⓒ Usman Yousaf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도우도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 토르티야가 있다면 프라이 팬에 살짝 구운 뒤, 준비한 각종 재료를 얹으면 끝이다. 집에 감자만 있어도 피자가 가능하다. 얇게 채 썬 감자를 감자채 전의 형태로 구운 뒤에 피자 토핑을 얹고, 케첩을 골고루 펴 발라서 치즈를 녹이면 피자가 된다. 심지어 케첩이 없어도 피자가 가능하다. 토르티야나 감자채 전 위에 마늘을 다져서 얹은 뒤 치즈를 듬뿍 올려준다. 전자레인지에 2분만 돌리면 치즈가 녹고, 고르곤졸라가 완성된다. 꿀을 찍어 먹으면 전문점에서 파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토르티야나 감자채 전은 도우가 얇아 더욱 그럴싸하다.


윙/봉이나 감자튀김 같은 완조리 식품을 에어프라이어에 돌려두면, 사이드 메뉴도 함께 먹을 수 있다. 집에서 피자를 만들어 먹거나 트레이더스 피자를 사 먹으면, 피자는 비싼 음식이 아니다. 냉동 피자는 심지어 5천 원 정도밖에 하지 않고, 트레이더스 피자도 보통 1만 5천 원이면 족히 먹을 수 있다. 트레이더스에서 파는 피자는 브랜드 피자의 패밀리 사이즈보다도 크면서 가격은 오히려 반 값이다.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충분히 1만 원 아래로 만들어서 먹을 수 있다.


그녀가 사준 도미노 피자는 L 사이즈(라지) 임에도 불구하고 4만 원이 훌쩍 넘었다. 나는 햄버거 단품을 4개나 먹을 수 있는 대식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더스 피자는 양이 많아서 한 판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반면에 도미노 피자의 L 사이즈는 3~4인 분 양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충분히 혼자서 한 판을 다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그러나 다 먹지 않고, 2조각 정도를 남겨 냉동실에 얼려뒀다. 왜냐하면 한 판에 4만 원짜리 피자를 혼자서 몽땅 먹어 치운다는 것이 내 기준에서 몹시 사치스럽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 Domino's PIZZA. All right reserved.

그녀는 도미노 피자를 자주 사 먹는 듯했다. 휴대폰 통신사 할인이 돼서 피자가 먹고 싶을 때면, 항상 도미노 피자를 먹는다고 했다. 하지만 통신사 할인을 떠나 그녀와 나의 결정적 차이는 음식을 대하는 기준에 있는 것 같았다. 내게 음식의 순위를 굳이 꼽자면 맛보다는 양이 우선한다.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배가 부르지 않으면 만족스럽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금방 배가 부르는 편이라 양보다는 맛이 우선한다.


대식가인 나는 소식가인 사람들과 양보다는 맛 위주의 요리를 먹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 식사 없이 이자까야 같은 곳에서 꼬치와 반주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식가인 상대는 충분히 배가 부르다며, 배를 두드리며 기분 좋게 가게를 나선다. 나도 어느 정도는 장단을 맞춰서 맛있게 잘 먹었다며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향한다. 결국 집에 가서 충분히 식사가 될 만큼 라면이라도 끓여 먹어야겠지만 말이다.


아마 이러한 음식의 기준 때문에 삶의 방식도 달라지는 듯하다. 나는 독립한 지가 5년 차에 접어들지만, 간혹 프라이드치킨을 시켜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배달 음식을 거의 시켜 먹지 않는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등의 중식부터, 연어회, 초밥, 각종 덮밥과 마제소바 등의 일식, 파스타나 스테이크 등의 양식도 집에서 해 먹는다. 그뿐 아니라 타코나 마라탕, 팟 크라파오 무쌉 등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물론 전문점의 맛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맛보다는 푸짐하게 해 먹는 것을 좋아한다.


요리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나에게 배달 음식은 비싸기만 할 뿐, 양이 너무 적다. 따라서 피자도 트레이더스 피자를 사 먹게 되는 것 같다. 도미노 피자와 트레이더스 피자, 집에서 만들어 먹는 피자 중 무엇이 정답이라 할 것은 없다. 사람마다 음식의 기준이 다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내 기준에서 봤을 때, 항상 도미노 피자를 먹는 그녀가 사치스럽다고 잠깐이나마 생각했었다. 하지만 소식가인 그녀에게는 트레이더스 피자는 선택지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면, 굳이 도미노 피자가 아닌 트레이더스 피자를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사치스러움은 사람에 따라,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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