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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Feb 09. 2024

올해도 어김없이 내게 "장가 안 가냐"라고 물었다.

"재용아, 니는 장가 안 가나? 어데 만나는 처자는 없고?". 민족의 대 명절 설날이나 추석이던, 조카의 돌잔치던, 벌초하러 가서 할아버지 산소 앞이던, 장소는 상관없다. 친척 어른들은 내게 묻는다. 그들은 내 안위보다 민족의 혈통을 지키는 것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따라서 내 대답도 항상 같다. "없어요". 그제야 묻는다. "하는 일은 잘 되고? 아직도 사회복지사 하나?". "네, 뭐 늘 똑같죠".


더 이상 아무런 대화가 없다.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것은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이라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큰 집이 아닌 곳에서 나는 개구쟁이 내면을 자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까불다가도 큰 집에만 가면, 나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된다. 나의 무뚝뚝함에는 그들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을 듯하다.

ⓒ Hadija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친척 어른들은 내가 어렸을 때는 공부를 잘하는지 물었고, 대학을 졸업할 때는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면서 먹고살지를 물었고, 서른이 넘어가자 결혼을 물었다. 내가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사회생활을 하며 어려운 것은 없는지, 성인으로서 삶의 지향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물어보는 친척 어른들은 없었다. 아마도 내게 특별한 관심이 없으니, 그 나이에 맞는 과업을 물어본 것일 테다.


그 순간 나는 철저하게 인간성을 배제하고, 과업을 수행하는 기계로 전락한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고, 성인이 되면 돈을 벌어야 하고, 더 늦기 전에 아기를 낳아야 한다. 아마 내가 중년이 되면 아픈 데는 없는지 물을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과업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과업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함과 동시에 남들은 응당 수행하는 것에 실패한 패배자가 된다.


하지만 삶은 생애주기에 맞는 과업으로만 살지 않는다. 학생일 때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친구들과 다투고 화해하며 관계를 배운다. 사회생활에서 돈 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알아가고, 사랑뿐만이 아니라 여행과 독서 등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탐닉한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삶은 학업 성취도나 연봉 서열, 상승혼만을 추구하는 일관적인 삶이 아니라, 다양성 아래 나를 정의하며 차곡차곡 쌓은 삶이 된다.

ⓒ Marco Bianchetti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요즘 젊은 애들한테는 그런 것 물어보면 안 돼요". 이런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것으로 추정해 보건대 우리 집에만 있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들은 개인적인 질문이 실수인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개인적 질문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관심 없음이다. 진정으로 조카의 삶에, 소위 말하는 '젊은 애들'에게 관심 있는 어른들의 말이 내게도 실례일 이유가 없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그저 결과를 묻는 것이 아닌, 공감과 이해였다.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사회에서는 실적으로 항상 비교당하며 산다. 가족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마저도 결과를 평가당하고, 남들과 비교당하고, 이해받지 못한다면 가족이라고 남들과 다를 것이 없다. 혹시 조카에게 관심이 있는 데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면, 과정을 물어보거나 한 단계 다음의 질문을 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를테면 "사회복지사로서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상대해야 할 텐데, 어떤 게 힘드노?"와 같이 말이다.


어찌 보면 친척 어른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부장적 집안 분위기와 어른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옮음을 내세우는 환경 속에서 대화의 주도권은 내게 없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듯이 어른들도 노력하지 않았다. 일종의 쌍방과실 교통사고인 셈이다. 불평등한 권력 구조를 깨지 못한다면, 가족도 깨진 채로 방치하는 셈이다. 구조를 깨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른의 관심 어린 질문 하나가 그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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