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용 May 31. 2024

안전하지 않은 사회

나의 트라우마 해방일지.

조금 폭력적인 내용이 있으니, 감수성이 높은 사람은 아래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잠자려고 눈을 감았을 때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차라리 잊기를 바랐는데, 잊으려 할수록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 내가 그냥 버리자고 했잖아!".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남자는 바로 강아지에게 외친다. "일로 오라고 했다. 개새끼야!". 늦은 밤이라 고요했던 빌라촌이 떠들썩해졌다. 푸들로 보이는 강아지는 목줄이 풀린 채 보호자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러다 말겠지?'. 하지만 이렇게 추측한 내가 멍청했다. 욕과 언성이 높아지길 반복했다.


그러다 욕설과 깨갱거리는 소리가 동시에 났다. 놀라서 다시 밖을 쳐다봤을 때, 강아지는 이미 남자에게 붙잡힌 상태였다. 멀리서 봐도 건강해 보이는 그 남자가 한 손으로 강아지의 목덜미를 붙잡아 짓눌렀고, 다른 한 손으로 주먹을 쥐고 강아지를 내리쳤다. 나는 의도치 않게 강아지 학대 장면을 목격했다. 두려움에 심장이 뛰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무서워서 그저 벽에 기대 있었던 것이 5분 정도였다.


나는 진정이 안 된 상태로 고민했다. '창 밖을 향해서 그만 때리라고 소리 지를까? 신고부터 해야 하나? 아무리 무서워도 내려가서 직접 말려야 되는 걸까?'. 내가 직접 맞은 것이 아님에도 공포를 느끼고, 내가 폭력자로부터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조차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무기력하고, 밖에서도 저렇게 행동할 정도면 집 안에서의 폭력은 어떨지 상상하는 것조차 괴로울 정도다. 나와 함께 사는 강아지가 옆에 있으니, 더욱 복합적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 Marco Bianchetti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아무것도 하지 못한 5분이 지나고, 폭력 장면을 목격한 때보다 조금 진정이 됐다. 나는 반쯤은 울면서 신고했다. 내가 목격한 것을 최대한 상세히 말하려고 했지만, 두근거림에 횡설수설 신고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 진행 상황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신고를 하고 나서도 바로 잠들지 못했다. '그 강아지. 집에 가서 더 맞았겠지?'. 그 일이 있고 며칠은 산책할 때도 그들을 마주할까 무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기억은 희미해져 갔다. 그 일이 있고 일 년 반쯤 지났을 때였다.


12시가 넘으면 보통 자려고 눕는 편이다. 최근에 봄 날씨가 좋았던 터라 창문을 열어뒀다. 창문을 닫는 데, 문득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잊었던 기억의 꼬리를 상상의 꼬리가 물었다. 상상은 계속해서 안 좋은 쪽으로만 꼬리를 물었다. 몇 시간이나 흘렀는지도 모를 때쯤, 새벽에 겨우 잠이 든 것 같다. 잠을 자지 못해서 피곤한 몸과 쉬이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학대 장면, 지독하게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으로 맞이한 아침이었다. 트라우마였다.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트라우마'가 갖는 단어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알기에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그날 학대 장면은 일 년 반이 흘러서 문득 떠올랐다. 트라우마를 대체할 단어가 나에게는 없다. 나는 주변에 친한 정신건강사회복지사에게 물었다. "혹시 상담받아보는 것 어떨까요?".  몇몇에게 물어보았을 때, 최대한 빨리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트라우마는 최대한 초기에 개입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복지사임에도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받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었다. 평소에는 부정했던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톡톡히 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담을 받는 것도 처음이었기에 상담받으러 가는 것이 더 두려웠다. 하지만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그날의 기억이 반복해서 떠올라 확고한 트라우마가 되는 것이다. 내 삶을 앞으로 건강하게 살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자 상담실까지 갈 수 있는 용기가 되었다.


한 번의 상담으로는 극적인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신건강사회복지사의 마지막 이야기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맥락은 이랬다. "그날의 일이 선생님의 불안을 높였을 거예요. 신고를 했지만 그 이후 상황을 알 수 없는 데다, 이후에 그 강아지와 남녀를 본 적 없으니까요. 선생님은 완벽주의 성향이 있으신데, 이 사건은 선생님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선생님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어요. 경찰에 신고했잖아요. 내려가서 직접 말릴 수 있었을까요? 월등히 건장한 상대를 직접 마주하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안전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 스스로 내려놓아야 했던 것은 아픈 학대의 기억보다는 죄책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나는 그 상담 이후로 2주가 흘렀지만, 그날의 일이 떠올라서 잠들지 못한 적은 없다. 더 이상 그날 일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을 받아들이자 죄책감과 불안으로부터 조금은 해방되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가면 단번에 극적인 효과를 보인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애초에 정도가 심하지 않기도 했고, 내가 평소 가지고 있는 불안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고, 상담이나 정신 분석의 과정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사실 이번 트라우마 해방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고통받는 주체로서의 개인이 아닌 안전하지 않은 사회였다. 처음에는 강아지 학대 장면에서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이내 강아지에게 연민의 마음을 가졌고, 다음은 학대 장면을 목격한 내가 불행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정 불행한 것은 내가 아니라 안전하지 않은 사회였다. 내가 목격한 불행은 나만의 것이 아닐 테다.


너무도 고요한 밤이었기에 나 말고도 학대를 목격한 사람이 더 있었을지 모른다. 나의 불행은 우리의 불행일 수 있다. 더군다나 대상을 확대해 보면 폭력이나 학대는 매일 아침 뉴스에서 볼 수 있을 정도다. 이를 테면 직장 내 갑질, 군대 내 가혹행위, 아동/노인/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학대가 그렇다. 폭력의 개념을 확대해 보면, 이태원 참사나 세월호 참사 당사자뿐 아니라 그 유가족을 향한 언어적 폭력도 만연해있다. 나는 당장 건강할지 모르지만, 언제라도 정신 건강에 갑자기 위협 속에 살고 있다.


사회와 철저하게 분리되어 안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집 안에서 생생히 목격했다. 심지어 학대 장면은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다. 나는 과연 안전한 사회에 살고 있을까? 정신이 건강하다고, 물리적으로 안전한 곳에 살고 있다고, 어떻게 보면 운이 없을 뿐이라고, 나는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정신건강은 감기처럼 누구에게나 쉽게 찾아오기도 하지만, 감기처럼 가볍게 끝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 Marco Bianchetti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물리적인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안전한 사회를 정의하지 않는다. 폭력에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할 수 있고, 타인의 폭력을 목격하는 사회도 안전한 사회로 볼 수 없다. '네가 운이 없었을 뿐이야.'라고 선을 긋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도 개인이 오롯이 모든 고통을 감내하도록 한다. 어떠한 형태라도 폭력을 경험할 수 없도록 함께 성숙하고, 연결되고, 타인의 감정을 명확히 인지하는 그곳이 안전한 사회일 테다. 이것이 보다 안전한 사회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친아, 육각형 인간, 그다음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