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라면 MBTI 성격 유형 검사에서 F(감정)가 높을 것 같지만, 나는 T(이성)가 높은 T발놈이다. 나는 MBTI는 전혀 믿지 않는다. 사람 성격을 16가지 범주로 구분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상황에 따라서 선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 공감 능력이 타인에 비해 민감성이 덜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사회복지사로서 삶을 선택하면서부터 가진 나의 오랜 고민이기도 하다.
내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을 때, 후배는 나를 "김세모 씨"라고 불렀다. 내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해 간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항상 사실에 입각해 직접적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뱉은 말이 상대에게는 뾰족하게 갔을 테다. 나는 후배가 나를 김세모라 부르는 것조차도, 사실이라 생각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후배뿐만이 아닌 여자친구에게도 이성이 자주 앞섰다. 우리는 자주 싸웠고, 나는 자주 이겼고, 여자친구는 자주 울었다. 나는 T발놈이다.
T발놈이라고 했지만, T나 F 성향의 우열을 가릴 생각은 아니다. 그저 나와 같은 성향 사람을 표현하는 유행어를 쓴 것뿐이다. 다만 나는 "T발놈"이라는 표현에서 마냥 웃지 못한다.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흔히 떠올릴 이미지가 있는데, 내가 그 유형에 적합한 사람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상대 이야기에 해결책만을 말하는 것은 사회복지 실천의 근간에서도 어긋난다. 사회복지에서는 '자기 결정권'이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이를 위해서는 관계적인 맥락에서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다만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이 있다. 나는 T발놈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사로서 꽤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함께 변화를 고민하는 동료 사회복지사가 나에게 말한다. "팀장님 없으면 우리 지역은 와르르 무너질 거예요". 나는 사회복지사 한 명이 빠진다고 무너질 시스템이었다면 이미 없는 것과 다름없다며 손사래 친다. 나를 배려한 인사치레일 수 있지만, 내가 근무하면서 점점 더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결핍된, 타인의 감정에 우선하는 성향이 사회복지사로서 중요한 능력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나는 직접적인 실천 현장에서 근무하지 않았다. 입사를 지원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후원 물품을 주민에게 전하거나, 고민이 있는 주민이 찾아오면 깊이 상담한다거나, 마을 단위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등의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실천 현장은 나에게는 두려운 일에 가깝다.
반면 나는 사회복지사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든다. 쉽게 말해 우리 구에서 사회 서비스가 빈틈없이 제공될 수 있도록 큰 틀에서 전략을 짜고, 필요하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를 만들고, 단순하게 주고 끝나는 단편적 사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업이 되도록 숙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나의 일이다. F 성향이 없어도, 극에 치우친 T 성향인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나처럼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와 그 영역은 드물다. 추정하건대 나와 같은 유형의 사회복지사는 직접 실천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에 비해 5%도 채 안될 것이다. 단 T 성향이 짙다고 직접 실천 현장에서 근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F 성향이 짙은 사람도 나와 같이 중간지원조직에서 근무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사회복지 현장에는 다양한 영역들이 있고, 성향에 적합한 직군들이 있다.
나는 사회복지사지만, 사람과 관계 기반의 감정을 우선시하는 능력이 결여된 T발놈이다. 하지만 내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에 관심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회를 사랑하는 방식이 F 성향 사회복지사와는 다를 뿐이다. 나는 사실이나 이성적인 것에 기반해서 사회를 사랑을 한다. 나를 포함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사람이, 내가 시스템화하고 있는 지역 시민이, 전국을 넘어서 전 지구적으로 사회 문제에 노출되어 있음을 객관적으로 이해한다. 관계가 아닌 객관적 사실의 이해는 T발놈 사회복지사가 사회를 사랑하고 돌보는 다른 방식이다.